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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world Jun 16. 2023

공부하는 엄마, 육아하는 엄마


 아가 웃었어?

방에서 뛰쳐나와 아기에게 달려간다. 다급한 목소리로 “웃었어? 몇 번 웃었어?” 하고 물으면, 신랑은 “한 번! 살짝 웃었어. 살짝.”하며 웃는다. “아가야, 어떡하냐. 니 엄마 오늘도 공부 못한다.” 우리 엄마의 농담섞인 이야기를 뒤로 하고 나는 터벅터벅 서재로 발길을 돌린다.



 공부를 시작한 건 임신이 되기 전, 난임 치료를 받던 때 부터이다.

10년 이상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족을 위해 일한답시고 정작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없이 붙들려있는 선배들을 참 많이 봐 왔다. 사실 전략이란 업무 자체가 본래 휴식도 주말도 없는 일이긴 하다. 윗사람이 찾으면 무조건 달려가야 하니까. 하지만 책상에서 김밥을 먹으며 일하다 전화부스로 달려가면서 ”아고아고 어떡하지, 아빠가 오늘도 좀 늦게 가겠는데. 엄마랑 놀고 있어요. 아빠는 주말이 놀아줄게요.“ 라고 속삭이는 선배의 모습은,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회사 밖 길을 찾아야 된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사실 공부를 계획하자마자 임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계속되는 시험관 시술 실패로 임신이란 남의 집 얘기인 줄만 알았으니까. 그렇게 낮엔 일, 밤엔 공부에 매진하며 반 포기 상태로 여섯 번째 시험관 시술을 했는데, 아기가 단번에 들어섰다. 정말이지 인생은 모르는 일이다.



 아기를 낳고도 내가 편히 공부할 수 있도록 육아를 맡아 하겠다는 남편과 틈틈이 아기를 돌봐주겠다는 엄마 덕분에, 나는 아기를 낳은 후 공부와 육아에 한 발씩 걸친 애매한 엄마가 됐다.



 오전 두 시간, 오후 세 시간. 하루에 다섯 시간을 서재에서 혼자 공부한다. 아니,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자고 있는 아기 옆을 까치발로 살금살금 지나쳐 세수를 하고 커피 한 잔 탄 다음 서재에 들어가면. 책을 두세장 정도 읽으면.. 곧이어 낑낑대는 아기 소리와 오야오야하는 신랑 목소리가 들린다. 꺄르륵거리는 소리, “아고 밤에 푹 자서 기분 좋아 우리 아가? 아빠 좋아? 빵긋빵긋 웃었어?” 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럴 때 왜 나는 바로 아기가 있는 방을 향해 뛰어갈까?

왜 나는 서재 문을 닫지 못할까?

왜 나는 이어폰을 끼지 못할까?

스터디카페에 가서 편히 공부하고 오라는 가족들이 있는데도, 왜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작은 소리에도 방을 뛰쳐나갈까?



안다. 공부할 땐 공부하고 아기볼 땐 아기보는 명확한 선긋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게 참 어렵다.

공부는 어쩔 수 없이 놓치지 않아야 하는 일이고, 아기를 보는 기쁨은 내가 절대 놓치기 싫은 일인걸. 입을 삐쭉거리면서 울려고 하다 갑자기 해실하게 웃고, 안아달라고 찡찡대고, 배고프다고 엉엉 우는 저 모습을 도무지 놓치고 싶지 않은걸.


아기가 크면 엄마 멋지다고, 잘했다고 할 거야.

시험 끝나고 아기랑 계속 같이 있어주면 되지.

우리는 평생 함께 할거잖아. 조급하게 생각하지마.


남편의 위로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는 아기 소리만 들리면 책이고 뭐고 아기방으로 뛰쳐간다.


엄마한테도 웃어줘,

엄마하고도 오야 가자, 하면서.

오늘 밤에는 엄마랑 꼭 끌어안고 자자! 하면서.


옆에서 재워주지 못해 미안해, 아가야. 오늘은 꼭 같이 안고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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