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orado - San Juan de Ortega
어쩐지 그 전날 너무 힘들더라니
무릎 통증을 호소했던 J는 점프를 하기로 했다. 그렇게 아프고 안 좋은 건 무리해서 걷는 건 아무리 순례라고 해도 아닌 거다. J는 어느 것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했는데, 20km를 넘게 걷는 건 무리라고 내가 만류했다. 오늘 걸으면 어차피 내일 아플 텐데, 그럼 내일도 못 걸을 거라고. 앞으로도 많이 남았는데 무릎 더 안 좋아지면 오히려 더 힘들다고.
결국 K와 길을 둘이 걷게 되었다. K가 합류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분명히 알던 사람인데 J가 떠나고 막상 덜렁 둘이 남게 되니 어색하고 머쓱한 느낌이었다. 날씨도 꾸물꾸물하고, 컨디션도 좋지 않아서 난항이 예상되었다. 언제나처럼 아침을 먹었고 길을 나섰다. 전날 무리해서 꾸역꾸역 걸은 바람에 힘들었던 것에 누적되어 통증이 배가되었다. 순례 시작하면서 안 그랬던 날이 어디 있겠냐마는.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하면서 동그란 무릎뼈 아랫부분이 묵직해지고 뻐근해왔다. 보폭이 점점 좁아지고 몸이 앞으로 기울면서 점점 쪼그라들었다.
올망졸망 리듬감 있는 동그란 빛
아플 때 유일하게 좋은 점은 쉬는 시간이 더 값지게 느껴진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으면서, 얼마 안 되는 나뭇잎 틈 사이로 올망졸망한 동그란 빛이 새어 들어오는 모습은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고마운데 부담스러웠던 배려
같이 순례한 기간 내내 K는 나를 많이 배려해줬다. 가벼운 자신의 가방에 내 짐 일부를 넣어 들어주기도 하고, 매번 뒤처지는 나를 기다려 일부러 천천히 걷기도 했다. K가 신경 쓰는 부분이 내가 힘들어하고 버거워하는 원인이 맞고, 신경 써주는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 배려가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웠다. 그 배려는 내가 생각했던 순례 - 스스로 해내는 것- 를 방해받는 느낌이라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생각한 목적과 초기의 바람처럼 이 길을 걸어나갈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나는 이 길에서 내가 나 자체로 설 수 있기를, 조금 더 나 스스로가 단단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는데. K가 일부러 신경 써주는 걸 알기에 미안함도 더해져서 더 부담스러웠다.
그때는 고마움보다는 불편함이 컸는데, 지금에 와서는 본인도 힘들 텐데 같이 가는 사람을 배려하고 신경 쓰는 그 마음이 고맙다는 생각이 조금 더 크게 든다. 이 마음이라면 그때 했던 거절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거절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다, 그때 그 당시로 돌아가면 또 모르겠다.
죽을 것 같다, 내 무릎 빠개질 것 같다, 내 노후가 걱정된다
힘든 걸 보여주려고 땡볕과 오르막길 사진을 찍고, 나중에 그 사진을 보면 너무 아름답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그 당시 난 '죽을 것 같다, 내 무릎 빠개질 것 같다, 늙어서는 어떻게 걸어 다니냐'를 느꼈는데 사진에는 그 감정이 담기지 않는다. 그냥 날씨가 좋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나중에는 기술이 발전되어 사진을 볼 때면, 사진을 찍은 상황과 감정이 Live Photo 이상으로 느껴지면 좋겠다. 사진을 보는 나도, 다른 사람들도 그 당시의 힘듦을 같이 느낄 수 있도록! 그러면 세상에서 발생하는 많은 사회문제도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어떤 일이건 자신의 일로 느끼면 그 일에 대한 대처가 달라지니까.
예쁜 돌화살표
걷다가 어떤 표식이 나타나면 반갑다. 어떤 기점을 넘어선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마라톤에서 반환점을 돌 때, 벌써 반이나 왔다는 희망과 아직도 많이 남았다는 탄식이 공존하는 것처럼 화살표도 복잡하면서도 기쁜 느낌을 준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돌 화살표를 보면 웃음이 난다. 화살표를 만들었을 그 어떤 한 사람을 상상하게 된다. 헷갈리는 길에서 어느 하나의 길을 갔다가 그다음 화살표를 보고 그 길에 대한 확신을 갖고. (다른 사람이 길을 못 찾을 것 같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와, 가방을 내려두고. 크고 작은 돌멩이들을 옷에 주워 담아 옮기고 쪼그려 앉아 화살표를 만들고. 그다음엔 일어서서 화살표가 가지런하게 정돈됐는지 다시 보았을 그 사람. 그러고는 다시 벗어두었던 묵직한 가방을 다시 메곤 자신이 만든 화살표를 보며 뿌듯해하며 길을 지나갈 그 사람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그 마음이 예뻐서.
길가에 가방을 베고 누워서 잔다,
는 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그럴 일도 없지만. 바닥에 누워서 잠드는 이상한 일이 이상하게 여기선 할 수 있다. 누가 허락할 일도 아니지만, 시선이 덜 신경 쓰인다. 지하철을 타고 멀리 갈 때 자리가 없어서, 다리가 아팠던 한 친구는 열리지 않는 출입구에 비켜서 앉았다. 맨바닥에 털썩. 사람들은 흘깃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그 내려다보는 시선은 그 높낮이 때문에 경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시선이 너무 신경 쓰였고 부끄러웠다. '얘가 어서 일어났으면 좋겠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일어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내가 있던 곳에선 할 수 없던 일을 여기서는 할 수 있다. 레깅스만 입고 다닐 수 있는 것도, 길가에 누워 얼굴을 모자로 가리고 잠드는 것도, 더러운 손으로 빵을 찢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것도 여기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이상해 보이지 않기 위해 내가 평소에 감내해야 했던 것들, 내가 원해서 스스로 결정한 게 아니라 외부의 관념에 따라 선택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다.
되게 의외인 건, 막상 해보면 그런 것들이 별 게 아니다. 그렇게 걱정할 게 아니었다. 지레 겁먹고 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어쩌면.
J가 버스로 지나간 이 도시에서 멈추기로 했다. 못 걸을 것 같아서, 이 작은 알베르게에 머무르게 되었다. Cizul Menor에서 만난 독일 친구를 만나고, 정리하고 일기 쓰고 빨래하고. 알베르게 입구에 앉아 자판기에서 산미구엘을 뽑아서 목을 축이고. 그러다 보니 저녁시간이 지났고 간단히 요기를 하고 잠들었다. 내일은 점프를 하기로 했다. 걷는 걸로 오기를 부리지 않는 게 좋겠다. 내일만 날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