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ability is a trap](스웨디시 아티스트 연재3-1)
무덤을 뒤집는다 쏟아진 문양을 삼킨다 부러진 수레국화
와 흩어지는 아열대기후 그해 여름과 두 개의 초승달 노르
트하우젠에서 멈춰버린 시계와 시간을 뭉치는 사람들
그들을 문지른다 바스러지는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것들 손
가락으로 누른 것이 당신이었는지 나였는지 알 필요가 없다
김희준 詩, 「하지만 그러므로」 中
소냐 닐손 Sonja Nilsson은 고고학자와 묘지 투어 가이드를 겸하는 듯 보인다. 닐손이 말한 것처럼 "개개인이 일으키는 시간의 거품을 걷어내고" 단명한 과거와 한 발 느린 현재와 어느 누구도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미래를 뭉쳐 우리 앞에 던져놓기 때문이다.
닐손을 따라 우리는 젊고 오래된, 토끼굴 같은 무덤들을 지날 것이다. 그녀가 무덤을 하나씩 뒤집을 때마다 무덤 속에선 이름들이 쏟아질 테고 우리는 바스러지는 이름들을 보면서도 그들의 살아있음을 믿을 것이다.
번역/자막 : 글로방전
「Point of no return」 등장인물(왼쪽부터)
*제이티 르로이 JT LeRoy(1980~)
2000년 출간된 소설 "사라 Sarah"를 쓴 미국의 작가. 소설은 단숨에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으며 구스 반 산트, 코트니 러브, 마돈나, 위노나 라이더, 아시아 아르젠토, 테이텀 오닐, 셜리 맨슨 등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2006년 뉴욕 타임스에 의해 JT의 정체가 로라 알버트 Laura Albert(당시 출판인, 아카 스피디 aka Speedy라고도 불렸다)라는 사실이 폭로되며,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실제 르로이의 얼굴이 된 사람은 알버트의 시누이 사바나 크눕 Savannah Knoop이었다.
로라 알버트는 다큐멘터리 <Author The JT LeRoy Story>에서 내면의 캐릭터였던 소년 르로이의 목소리로 자신이 여러 차례 성적 학대와 관련해 전화 상담을 받았으며, 르로이는 가짜가 아니라 정말로 살아있는 존재였다고 말한다. 언론 보도 이후, 대중들은 르로이가 단지 문학적 페르소나이며 거짓말일 뿐이라 비난했지만, 닐손의 작품에서 르로이는 자신이 왜 가짜가 되어야 하는지를 관객에게 되묻는다. 2018년, 로라 던과 크리스틴 스튜어트 주연의 영화 <JT르로이>가 제작되기도 했다.
* 빌리 팁튼 Billy Tipton (1914~1989)
미국의 재즈 뮤지션이자 밴드 리더.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18세 이후 남성으로 평생을 살았다. 그는 교통사고로 생식기를 다쳐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지어냈을 뿐, 남성으로 보이기 위해 호르몬 요법이나 시술을 받진 않았다. 다섯 명의 여성과 결혼했으며 첫 번째 부인만이 그가 여성으로 태어났던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 부인이었던 키티 Kitty와는 18년간 동거했으며 세 명의 아이를 입양해 키웠다. 그가 죽고 난 후, 막내아들 윌리엄 William이 의사의 검시 결과를 통해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된다.
*브랜든 티나 Brandon Teena(1972~1993)
여성으로 태어난 티나 브랜든은 남성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후, 자신의 성과 이름의 위치를 바꿔 브랜든 티나가 되었다. 여자 친구였던 라나 티스델 Lana Tisdel의 주변 인물 존 로터 John L. Lotter와 톰 니센 Tom Nissen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그가 남장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폭로된다. 브랜든은 이 일을 경찰에 신고하지만, 당시 경찰이었던 보안관 찰스 로 Charles. B. Laux는 오히려 브랜든의 트랜스 섹슈얼리티에 호기심을 갖고 가학적인 심문을 하며 브랜든의 피해 사실을 덮는다. 경찰 조사를 계기로 브랜든의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고, 브랜든은 자신을 성폭행했던 로터와 니센에게 발각되어 살해당한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Boys Don't cry)"로 만들어졌다.
*앤 밴더빌트 Anne Vanderbilt(1953~2013)
닥터 브이 Dr. V로 활동하며 골프채를 개발한 여성 발명가. 그간의 골프채가 모두 잘못 만들어진 것이라는 대담한 주장을 한 밴더빌트는 이후 캐일럽 하난 Caleb Hannan이란 저널리스트에 의해 신상이 밝혀진다. 하난은 당사자인 밴더빌트의 동의 없이, 그녀가 트랜스젠더이며 MIT 졸업과 NASA에서의 경력이 모두 거짓말이라는 내용을 담은 '앤 밴더빌트에 관한 에세이'라는 기사를 냈다. 이후 밴더빌트는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며, 당시 트위터에는 #JusticeforDrV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저널리스트의 비윤리적 행태와 트랜스젠더 포비아를 비판하는 메시지들이 공유되었다.
*모니카 르윈스키 Monica Lewinsky(1973~)
미국 전 대통령 빌 클린턴의 혼외 파트너. 22살 백악관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시절, 르윈스키는 스무 살 위의 동료 린다 트립 Linda Tripp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르윈스키에게 정서적 지지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 듯했던 트립은 그녀 몰래 전화 대화를 녹취하여 르윈스키의 사생활을 폭로했다.
(위/ 왼쪽부터) 1. 가운데 금발이 르로이로 분했던 사바나 크눕, 뒤편에 빨간 머리를 한 여성이 로라 알버트
2. 피아노를 치고 있는 사람이 빌리 팁튼 3. 브랜든 티나
4. 왼쪽 여성이 앤 밴더빌트 5. 린다 트립과 모니카 르윈스키
소수자의 권리라는 말이 입에 붙은지도 좀 됐다. 그래서인지 언뜻 봐선 닐손의 작업도 이른바 퀴어 아트나 주변부로 내몰린 소수 정체성의 권리 보장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작품 같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그 이야기들이 당대에 사회 정치적으로 상당히 의미 있는 화젯거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연결은 꽤나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에 앞서 마이너리티 정체성이나 다중 정체성 등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이미지와 언어를 소비하고 있는지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닐손의 작업은 기존의 이해를 두둔하거나 최신 경향을 선도하는 것에 큰 애착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수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위해 어떤 수단을 동원하고 있을까?
한동안 나는 패싱한 인물들의 몇몇 이야기를 일종의 승리나 성취 내러티브로 바라보았다. 예를 들어, 젠더 패씽은 정신과 육체에 일종의 균질화를 이뤄낸 스토리로 이해하면 모종의 의미를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최대 다수에게 적용할 수 있는 공동의 '문제'나 '원인' 같은 것을 찾고 싶기도 했다. 무엇이든 인과관계가 확실한 이야기로 완결시킨 후 '이해하고 지지합니다'라고 얼른 외칠 수 있게 되길 부질없이 바랐다.
주인공이 된 아웃사이더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못해 아름답고, 섹슈얼리티에 대한 개방성을 언급하는 우리 자신이 세련돼 보이기 그지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타인의 삶 위에서 문제를 발명해내고, 아주 자주 그 문제를 통해서만 타인을 이해하고 용납한다. 닐손의 작업은 이 지점을 관통한다. 관객들은 '이해했다'는 개인(혹은 집단)의 쾌몽이 타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목격하고, 삶의 본질을 둘러싼 시대적 지식의 변화가 집단적 경험의 두께에 미치는 힘을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저는 그들이 '패싱(passing)' 도중 특정 시간에 머물러 있었던 것처럼 작품 속 캐릭터를 묘사하려고 했습니다. 동시에 그들이 ‘폭로당한’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 그러니까 그들의 죽음과 오늘날까지의 모든 것을 알고 토론할 수 있기를 원했고요. 저에게 있어 정체성은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집단적 경험입니다. 그래서 캐릭터의 정신과 사고방식이 각자의 시간이 만들어내는 거품에 가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들은 오늘날의 빛에 비추어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일정 기간 동안 우리가 믿는 것이 필수라는 뜻입니다.
JT는 한 때는 젊은 젠더 플루이드 작가였고 마약 중독자에 트럭 휴게소에 사는 십 대 성매매 노동자였던 때도 있었죠. 그는 자신만의 주제를 가지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의 삶과 연관된 이야기 그 자체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게 그를 살아있게 만드는 거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정신과 육체가 서로 다른 두 사람을 만들었다는 오늘날의 지식은 JT 이야기를 아주 특별하게 만들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변화하는 건 오직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뿐이겠죠."
- 소냐 닐손, 2020년 12월 서면 인터뷰 내용 중에서(이하 생략)
*패싱 Passing (위키피디아 사전)
패싱은 자신과 다른 정체성 혹은 그 범주의 구성원으로 보이게 하는 능력으로, 인종과 민족, 카스트, 사회적 계급, 성적 지향, 성별, 종교, 연령 또는 장애 여부의 정체성이 여기에 포함된다. 패씽은 특권이나 보상 혹은 사회적 포용을 가져다줄 수 있고 사회적 낙인을 대처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닐손은 인물들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복기하거나 그들을 어떻게 볼 것이냐를 질문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를 묶고 있는 정체성이 무엇이며 존재와 현상을 해석하는 인간의 방식이 실체를 얼마나 잘 대변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가시성의 함정 Visibility is a Trap>은 개인이 선택한 삶과 그것을 해석하는 관찰자들의 인식 사이에 벌어진 간극에 대한 고찰로서, 시선의 속도가 갖는 근원적 결함과 그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있다.
"사람들 속엔, '더 진정한' 정체성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전환자 중 많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맞지 않는 성별의 몸에 갇혀 있다고 주장합니다. 브랜든과 빌리가 외출할 당시, 그런 생각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잘 정립된 사고방식이 아니었고 따라서 그들은 대개 남장 여성으로 여겨졌죠. 아마도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형태든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부여하려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그들 스스로 인정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레즈비언으로 생각할지 아니면 그들이 드러낼 없는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가졌다고 생각할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겐 이런 개념들 자체가 진정한 비극이며 "함정"이 무엇인지를 말해주죠."
정체성이란 결국 개인이 마주하는 경험의 시원始原과 그것을 영영 따라잡을 수 없는 시각 사이의 격차를 비추는 거울 아닐까. 그렇다면 정체성은 다분히 상황적이며 늘 어느 정도의 허기를 품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를테면 '그'와 '그녀'가 채우지 못하는 대명사의 허기 같은 것. 패싱은 변신을 통한 문제 해결이라기보단 허기에 대한 감각에 더 가까운 지도 모르겠다. 질문은 이어진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허기를 느끼고 있을까? 허기를 덜 느끼거나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공감할 수 있나? 대명사의 허기를 채우겠다는 표현은 과연 공감으로 풀이될 수 있을까? 닐손의 작업은 세상의 경계를 만드는 우리 자신의 앎과 허기에 단단히 연결돼 있는 듯하다.
앤 Anne:
내 역사를 다 드러내고 살아가야 했다면, 난 더 이상 여성이 아니었을 거예요.
공개하고 산다는 건, 세 번째 선택지가 되는 것을 뜻하죠.
다 공개했다면 난 여성으로 보이는 것뿐 아니라, 다른 유형, 즉 두 번째 계급으로 여겨졌을 거예요.
자신이 아주 개방적이며 포용적이라 말하는 사람들은 거리 두기를 쉽게 하죠.
자격 요건을 집어넣고 당신은 흑인 여성이네, 트랜스 여성이네, 무슨무슨 여성이네 부르면서 말이죠.
그게 '당신들은 나와 달라, 그러니까 내 정체성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아'라고 말하는 거랑 뭐가 다르죠?
포용적 개방성은 개뿔!
소냐 닐손,「행복은 인간의 권리 Happiness is a human right」에서
앤 Anne :
나는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방식에 대한 권리 주장의 요점을 이해 못하겠어요.
나를 기쁘게 하는 사람들에게서 내가 얻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그들이 올바른 대명사를 말하고 그 말이 진짜가 되기를 바랄 뿐이죠.
사람들이 느끼는 게 중요하겠죠.
소냐 닐손,「행복은 인간의 권리 Happiness is a human right」에서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약 8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에게 다다른 8분 전의 태양빛과 태양은 어떤 유사점을 갖고 있을까?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로 보이는' 파편들과 얼마나 가까울까. 우리는 얼마나 여성이고 얼마나 남성이며 얼마나 흑인이고 얼마나 온전할까?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은 8분 전의 일 때문일까, 8분 후의 깨달음 때문일까. 인간의 경험과 인식 사이엔 늘 8분 정도의 좁힐 수 없는 시차가 있는 것은 아닐까.
"제목은 (가시성의 함정 Visibility is a trap)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에서 따온 것으로 질서를 보장하는 감독관이나 통제관이 보이지 않을 때의 상태를 묘사한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에게 후퇴나 진실성이 허락되지 않고, 영구적인 가시성과 지속적인 감시 하에 있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처음엔 이것을 가시성이 만들어내는 프라이버시 상실의 예로 생각했습니다. 이후엔 또 다른 상실을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현실을 정의하기 전에 현실에 더 가까이 서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렇다면 현실은 지나오면서 살아온 인식일 것입니다. 이 통과(passing)를 가시화함으로써, 묘사가 현실이 될 테고요."
인터뷰에서 닐손은 우리의 실존과 그것을 이름 붙인 것 사이의 거리를 상실로 표현한다. 하지만 그녀는 지나가는 것들을 '묘사'함으로써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도 말한다. 믿음의 통제력과 그것으로 인한 상실을 얘기하면서도 닐손은 다시 믿음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듯 보인다. 내 믿음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에 더해 내가 경험한 것이 당신의 현실이 되고 당신의 경험이 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우리는 '보게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어떤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지금쯤 우리는 어디를 지나며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 때론 그저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 현실에서 '지나가고 있다'는 감각을 잃지 않는 건 우리에게 어떤 열매를 가져다줄 것인가.
묘사가 현실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는 고작 반나절을 위한 대명사를 만드는 상상을 해본다. 젊거나 오래된, ' 이름’의 무덤 속에 우리를 가두지 않고 한 번 더 지나가기 위해. 8분의 시차를 영영 극복할 수 없다면, 가능한 재빠르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문질러 바스러뜨리기 위해서.
앤 Anne :
릴리 엘베의 필체를 생각해봐요.
수술에서 깨어난 후 그녀의 필체가 더 여성스러워진 건 당연히 수술 때문이 아니에요.
그녀 마음이 그렇게 한 거죠.
소냐 닐손, 「돌이킬 수 없는 Point of no return」에서
스웨덴의 여성 아티스트. 헤슬레홀름 Hässleholm과 크리스티안스타드 예술학교 Kristianstad Art School에서 공부했다. 영화와 사진, 파인 아트 분야를 교육하는 예테보리 Gothenburg 대학교의 발란드 아카데미 Valand Academy에서 파인 아트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 스톡홀름 나탈리아 골딘 갤러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주로 스웨덴과 독일에서 그녀의 전시회가 열렸다. <가시성의 함정 Visibility is a trap> 올해 8월 베를린에서 오프닝을 했으며, 내년 1월 말 쾰른에서 전시를 할 예정이다.
닐손은 각각의 에피소드 전달을 위해 무대 장치를 만들고 그 안에 홀로그램으로 인물을 등장시킨다. 인물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다수에게 동시에 상영되는 것이 아니라 벽에 난 구멍에 다가가 몸을 구부리고 고개를 집어넣는 관객 한 명에게만 보인다. 관객을 작품의 일부가 되게 하고 싶었다는 닐손의 이러한 의도는 소수의 이야기가 존재하고 드러나는 방식을 은유한다.
"저는 항상 시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관객이 작품의 일부가 되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고요. 벽 안에 인물들을 배치하여 그들이 우리 공간의 일부로 존재했던 방식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원치 않았던 폭로(아웃팅, 커밍 아웃)'에 대한 은유로서, 공간을 잃고 벽 사이 빈 공간에 갇힌 그들을 보여줍니다.
비디오 프로젝션은 인물들을 홀로그램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물리적 존재감을 줍니다. 이따금 등장인물들은 우리에게 눈을 맞추고 그들의 대화는 시청자인 우리를 향하고 있고요. 이런 의미에서 벽에 난 구멍은 네 번째 벽이 되어 우리에게 그들의 상황과 입장을 상기시킵니다. "
전시장의 작품과 관객 외에 이번 작업에 포함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닐손이 쓴 동명의 책인데, 각각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물론 이번 작업에 영감을 준 다양한 인물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작품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를 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독립 출판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진짜가 된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인가?
소냐 닐손, 책 『가시성의 함정』서문의 첫 문장
닐손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작품은 두샨 마카베예프 Dusan Makavejev(1932~2019)의 문제작 <WR: 유기체의 신비 WR: Misteries of Organism, 1972>이다. 이 작품은 파격적인 성 묘사와 정치적 은유로 고국인 유고 슬라비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고 마카베예프를 공산당에서 축출시켰다. 마카베예프는 성에 대한 억압이 파시즘을 낳았다는 주장과 함께 성(性) 정치운동을 펼친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가 빌헬름 라이히 (Wilhelm Reich, 1897~1957, 저서 『 파시즘의 대중심리』 / 『오르가슴의 기능』 등)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 작품 또한 빌헬름 라이히의 선언을 담아낸 그릇이란 평가를 받는다. 영화 제목의 WR은 빌헬름 라이히와 세계 혁명의 이니셜이다.
"내러티브 구조는 감옥이다; 그것은 전통이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 두샨 마카베예프
"어떤 사람은 외계인으로 태어난다. 그들은 결국 모퉁이로 몰려나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 가치를 모르는 채 살아간다. 안타까운 일이다."
- 빌헬름 라이히
*아트렉처에 기고한 글입니다.
다음 회에는 지현아 시인과 함께 한 소냐 닐손의 인터뷰 전문과 시인의 시가 실릴 예정입니다.
*영상의 저작권은 아티스트 소냐 닐손에게 있습니다.
영상 번역에 오류가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참고 사이트
http://www.sonjanilsson.se/
https://vimeo.com/454100346
https://scotty-berlin.de/visibility-is-a-trap/
https://fargfabriken.se/en/archive/item/857-sonja-nilsson-exhibition
https://blog.naver.com/soundtrack87/221554656755
https://blog.naver.com/gisant/10024931114
http://bpigs.com/openings/artist-talk-between-sonja-nilsson-and-liz-rosenfeld
https://www.rogerebert.com/features/dusan-makavejev-1932-2019
http://www.cine21.com/db/person/info/?person_id=9826
제목 배경, 전시장 이미지 출처
소냐 닐손, 책 『 가시성의 함정 Visibiliry is a tr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