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히 머리를 빗어 올린 여자가 알몸으로 자전거를 타고 위트레흐트(Utrecht) 시내를 달린다. 뒷좌석에는 활 없는 바이올린이 한 대 놓여 있다. 질주는 아니다. 바퀴가 구르는 방향과 상관없이 좀 부자연스럽고 좀 느긋하게 기울어진 고개가 이 주행이 배회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바이올린 활을 찾고 있는 거라고, 모스만은 항상 얘기했어요." 욥 모스만의 전 부인은 이 그림에 대한 논란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네덜란드 제일의 초현실주의 화가로 불리는 욥 모스만(Johannes Hendrikus Moesman/ Jopie, Jaap, Joop Moesman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09 - 1988)이 1941년에 완성한 이 그림은 당시 부도덕하고 불쾌하다는 이유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두 번의 전시에서 제외되었다.
(현재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으며, 모스만 탄생 111주년에 대중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모스만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Utrecht)에서 태어났다. 인쇄소를 운영하며 다양한 방면에 호기심을 가졌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예술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아홉 살 무렵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커서는 40년 넘게 네덜란드 철도 회사에서 석판 제도사로 일했다.
1928년, 라이프 드로잉 수업을 받던 갤러리 겸 서점 노드(Nord)에서 이곳의 주인이자 화가였던 빌렘 바흐너(Willem Wagenaar, 1907-1999)를 만났고 이때 초현실주의 운동을 접한다. 네덜란드의 또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 헤어 드 프리스(Her de Vries, 1931~)의 소개로 프랑스 초현실주의 운동의 리더였던 앙드레 브레통(André Breton)의 눈에 띄게 되었고, 1961년 밀란에서 열린 초현실주의 작품 전시회에 초대받는다. 이때부터 그의 작품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지만 작품에 대한 외설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그의 작품이 여성과 섹스에 집착하고 있다는 평은 지금도 흔하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와 닿는 평을 찾지는 못했다. 팬티도 입지 않은 나체의 여성이 자전거 안장 위에 올라앉은 이미지나 이로 인해 전이되는 모든 종류의 촉감들, 뒷좌석에 실린 활 없는 바이올린에 의미를 부여해 잘 조립하면 모스만의 성적 욕망이라는 주제로 한마디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단정히 빗어 올린 머리카락과 여자의 삐딱한 고개에만 마음이 쓰였다. 심지어 처음엔 핸드폰의 작은 화면 탓이었는지, 한곳에 너무 집중했던 탓인지 며칠 동안이나 바이올린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단지, 흐트러짐 없는 머리 모양과는 별개로 딱히 갈 곳 없이 페달을 굴리는 듯한 뒷모습에 꾸준히 충격을 받았고 너무 점잖아서 좀 께름칙하기까지 했던 무력한 뒷모습이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다.
죽음이 다가가는 모습이 저럴지도 모른다. 주어진 모든 시간을 넉넉히 쓰고,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주위를 꼼꼼히 살피고 나서야 서서히 페달을 굴리기 시작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여전히 놀랍고 급한 모양이겠지만.
여인이 확인한 루머는 욕망이 어떻다에 관한 것이기보단 그 욕망이 무엇이든 그것을 바로 여기서 성취할 수 있을 거라는, 많은 이들이 꿈으로 치장하는 종류의 말들이었다. 소문은 참일까, 거짓일까? 여자는 오래도록 의심했다. 바이올린을 연주할 만족스러운 활을 과연 '여기서는' 찾을 수 있는 걸까? 바이올린을 켜는 게 내가 원하던 것인가? 간절히 바란다면 이곳에선 어떤 것도 가능하다는 그 소문은 대체 어떤 뜻일까? 어떤 것이라는 게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의미한다면, 무력한 현재도 일종의 성취나 가능으로 얘기될 수 있는 것일까?
여자가 질문하면 사람들은 똑같이 얘기했다. 믿으라고.
뭘?
뭐든 믿기로 작정했던 적도 있다. 의문은 다 뒤로하고 단지 쓰는 말이 다를 뿐 아니겠냐고 이해하려 애썼던 때가 그녀에게도 있었다. 구원이 죽음 이후에 오는 것이라 믿는 거짓 신앙인처럼, 여자도 나중을 위해 열심히 묻고 구했었다.
여자는 이제 가능이라는 루머를 믿지 않는다. 이 마을에선 오랜만의 불신이다. 출처가 불분명한 악기에도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대신 바퀴를 구르며 스스로에게 연신 물었다. 모든 것이 불가능하고 다만 적지 않은 것들에 만족할 수 있다면, 무엇에 대한 만족으로 이 벌거벗은 주행을 계속하겠냐고. 언젠가 만족도 또 다른 루머가 되면 그땐 어디로 가고 싶냐고.
*Anything is possible. Is everything possible은 모스만과 관련된 행사를 주관하는 Moesmánia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제목의 배경 이미지는 퍼 온 이미지입니다. 작가명은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