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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에 Dec 10. 2019

한 달 살기 부럽지 않은 푸껫타운 2박 3일

글 : 엉덩이로 글쓰기 5기 김정숙 

솔직히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 해도 할 수 없다, 여행지에서 ‘한 달씩 살아보기’라니!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설레고 달콤한 이야기인가? 테라스가 있는 작은 집도 얻고, 아침이면 천천히 커피를 내려 마시고,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가 국수 한 그릇 먹고 동네를 산책하는 그런 일상! 

잠시 눈을 감고 꿈결 속을 거닐어 보지만……. 오, 레드선! 

여전히 책상과 모니터 속에는 남아있는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부러움에 몸살이 날 지경이지만 대한민국의 직장인답게 차선에서 최선을 찾아야 한다. 남아 있는 휴가를 세고 현실과 타협한다. 꼭 한 달씩 살아봐야만 좋은가? 짧지만 강렬하게, ‘푸껫타운 2박 3일, 현지인처럼 여행하기’ 이번 여행의 콘셉트다. 어느새 마우스가 항공권 결제를 향해 스르르 움직이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숙소는 테라스가 있는 작은 집(방)을 얻었다. 퇴근 후 늦은 항공으로 출발해 아침 일찍 도착했지만 주인은 웃는 얼굴로 반기며 금세 방을 내주었다. 하루에 5~6만 원 정도면 묵을 수 있는 소박한 에어비앤비지만 수영장까지 딸려 있다. 걷는 여행이 제격인 이곳에서 위치도 안성맞춤이다. 

여행의 첫 단추가 든든하다. 

짐을 풀자마자 인근 마사지 숍에 몸을 맡긴다. 푹신한 의자를 뒤로 젖히고 은은한 음악과 함께 노곤한 몸이 녹아내린다. 그동안 친구였던 어깨의 곰 세 마리는 당분간 안녕이다. 

숙소로 돌아와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물놀이도 즐기고, 적당히 시원한 방에서 잠깐 잠을 청한다. 푸껫타운을 걸으며 탐방할 예정이기 때문에 체력을 비축해두어야 한다.


푸껫타운 내 핵심 거리는 일명 ‘올드타운’이라 불린다. 1800년대 주석광산의 일자리를 찾아 온 중국 사람들과 포르투갈 사람들이 주거하던 지역이다. 100년이 훌쩍 넘은 형형색색의 고택들과 그 벽면을 가득 채운 그라피티, 감성 돋는 카페들과 갤러리들은 마치 옛 거리를 재현한 영화 세트장 같다. 

숙소에서 나와 이 거리들을 마실 다니듯이 걸어서 돌아다녀 본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낡은 우체통도 정겹고, 이국적인 간판 앞에서도 발길이 자주 멈춘다. 손때가 타 윤이 반들반들한 찻잔에 나오는 차도 마시고, 갤러리도 들러 그림도 감상하고 예쁜 게스트하우스가 있으면 다음 여행을 위해 기꺼이 둘러보기도 한다. 갑자기 숨구멍이라도 커졌나? 발길에 신바람이 난 것을 감출 수가 없다.      

두 세 시간이면 될 줄 알았던 도보 여행은, 해가 다 떨어져서야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저녁식사는 숙소에서 지척인 이산((อีสาน) 식당이다. 태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지만 전 국토에서 사랑 받고 있는 태국 동북부(이산((อีสาน) 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남도 음식에 견줄 수 있다) 음식 전문점이다. 

시원한 맥주를 먼저 주문하고, ‘쏨땀(파파야 무침)’은 중간 매운 맛으로, 그 단짝인 ‘시콩무양(돼지갈비구이)’과 ‘카오니아오(찹쌀밥)’도 잊지 않는다. 역시, 맛 집은 푸껫타운이다. 지나가다 툭 건들기만 해도 기본은 하는 식당들이 지천이다. 저녁을 먹으면서 내일 아침은 뭐 먹을까? 궁리를 한다. 갈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디를 가야할지 너무 많아서 고민이 되기 때문이다. 

시원한 쌀국수로 해장을 할 생각을 하니 맥주가 술술 들어간다. 지금 이곳에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고 그저 지금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것이 여행의 미덕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은 일단 달려! 


알람 없이도 아침 일찍부터 눈이 떠진다. 여행이 아니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혹시라도 누가 시간을 채갈 까, 창을 열고 테라스로 나가본다. 아, 맞다! 원래 하늘은 ‘하늘색’ 이었지, 이런 미세 먼지 없는 하늘은 언제 보았던가, 새삼 반갑다. 기분 좋게 문을 열어두고 천천히 커피를 내리고 싶었지만, 여긴 캡슐 커피만 있다. 역시 차선에선 이것이 최선이다. 커피를 들고 음악 앱을 켜고 테라스로 나가 마시는 것을 천천히 하기로 한다. 

눈곱만 떼고 해장 겸 브런치로 ‘쌀국수’를 먹기 위해 슬리퍼에 발을 맞춰 본다. 

할머니, 어머니에 이어 3대째 영업을 하고 있는 국수집이다. 아침 일찍 열어 쌀국수 국물이 떨어지는 시간이 문 닫는 시간이다. 그저 맑은 국물에 얌전히 흰 국수를 담고 고수와 쪽파를 송송 썰어 올린 게 전부인 국수. 국물 한 모음 먼저 조심스레 입 속으로 넣으면 그 개운한 맛에 미소가 절로 번지고 단전에서부터 감탄사가 올라온다. 푸껫타운에는 이런 국수집들이 상당히 많아 하루 세끼 국수로만 먹어도 2박 3일은 거뜬하다. 미슐랭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장인의 국수집들. 국수 덕후인 내가 푸껫타운을 사랑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다.      

든든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재래시장에 들러 망고와 망고스틴을 잔뜩 사들고 또 이곳저곳 걸어 다닌다. 어제 미처 다 못했던 도보 여행을 보충한다. 걷다가 멈추면 그대로 포토 존이 되는 거리, 이렇게 어여쁜 컬러를 입은 마을이라니! 푸껫타운을 걷는 시간 동안 무채색이던 내 마음에도 균열이 가고 그 틈으로 밝은 컬러가 채워지는 느낌이다. 걸을수록 에너지가 충전되는 이상한 여행지. 일요일에만 열리는 ‘선데이마켓’은 그 에너지의 절정이다. 거리 하나가 일요일 밤이면 대규모 야시장으로 변모한다. 손수 만든 장신구, 기념품, 티셔츠 등의 다양한 물건들과 먹을거리 노점들이 한데 어울려 그야말로 축제의 장과도 같다. 현지인들을 위한, 현지인들에 의한, 현지인들의 리얼 야시장! 짧지만 강렬하게, ‘푸껫타운 2박 3일, 현지인처럼 여행하기’의 마무리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한 장면 한 장면, 조금이라도 그 장면을 담아두고 싶은 사람처럼 느릿하고 촘촘하게 야시장을 둘러보고, 맛보고, 차곡차곡 마음에 저장해둔다. 

오랜 시간 동안 이 거리를 지켜온 사람들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미는 그 느낌이 좋다. 설레면서도 동화되는 느낌. 바로 여행에서만 살아나는 그 기운과 감정 때문에 자꾸만 여행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으로 돌아가 마음이 또 무채색으로 변하게 되면, 어김없이 푸껫타운을 또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한 달씩 살아보기’는 못하더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푸껫타운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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