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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May 30. 2024

전남대에서 나체로 자전거 탔던 학생은 왜 죽었나

얼마 전 전남대의 한 외국인 유학생이 나체 상태로 자전거를 타고 캠퍼스를 돌아다닌 일이 있었다. 그는 사건 직후 출동한 경찰에 의해 공연음란죄로 입건됐고, 그의 행위는 불과 15분 만에 제지됐다. 그러나 어느 학생이 촬영한 사진이 전남대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올라왔다. 언론들은 자극적인 뉴스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전대 에타에 올라온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해 첨부한 후 나체 상태에서 자전거를 타고 캠퍼스를 돌아다닌 학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조회수를 위해서라면 윤리 따위는 고려하지도 않는 언론들에 의해 그날의 일은 널리 알려졌다.


학생은 경찰조사에서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이 같은 행동을 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그의 우울증 치료 전력이 드러났고, 그는 자신이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자 언론은 이 사실까지 포함해 새로운 기사를 쏟아냈다. "대낮에 나체로 자전거 탄 유학생, '황당' 해명", 이것은 중앙일보, 연합뉴스, 한국경제를 포함한 한국의 거대 언론들의 이 사건에 대한 일관적 논조였다.


나도 그날 뉴스를 통해 사건 발생 소식을 접했다. 처음에 든 생각은, '그 사람이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라는 질문에 있었다. 그가 사람들로 하여금 성적 불쾌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 같은 행동을 한 건 아닐까 싶었다. 언론만 보고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사건 현장에 있었다고 해도 비슷하게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러나 사건을 접한 시민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도, 언론은 그래선 안 됐다. 사건 다음날 그 학생은 전남대 기숙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언론은 해당 학생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언론의 관점은 충격적 행동을 한 학생이 자살했고,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정도였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도 모자이크된 그의 나체 사진을 사용한 악마 같은 언론도 있었다.


언론은 해당 학생에 대한 경찰의 공연음란 관련 수사가 학생 사망으로 종결될 상황에 놓였다고 했다. 사건 직후 전남대 기숙사 측은 그의 룸메이트들에게 문자를 보내 해당 학생의 질병을 공개했다. 이 학생이 조현병을 앓고 있으니 방을 바꾸고 싶은 사람은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개인의 의료정보를 그와 같은 방을 쓰는 이들에게 그렇게 가볍게 공개한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학교 측은 해당 학생이 학업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보고 그를 본국으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사이 전남대 학생들이 참여하는 익명 커뮤니티에는 해당 학생의 사진을 보고 싶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의 신체가 온전히 담긴 사진을 원한다는 어떤 글에는 "(해당 학생이 흑인이라) 밤에는 안 보임"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조현병이란 개연성이 없는 두 대상을 연결지어 사고한 후 이를 토대로 자신의 의심과 불신을 강화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형태로 발현되는 '질병'이다. 그러나 자극적인 뉴스를 쫓는 언론과, 그것을 함께 즐기는 사람들에게 이 같은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눈 앞에 펼쳐진 자극적인 그림만이 소비 대상이 됐다.


그렇게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머나 먼 타국인 아시아의 대한민국 광주로 유학 왔던 사람은 머나 먼 타국에서 삶을 마치고 불귀의 객이 됐다.


사건 직후 전남대의 유학생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에서 추모 집회를 열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들이 모여 있는 카카오톡 단체방에는 720여 명이 소속돼 있었고, 이들은 곧 집회 계획을 짰다. 나는 운 좋게 이 소식을 접했다. 보통의 추모 집회는 으레 언론에게 취재요청서를 발송한 후 진행되곤 하는데, 그분들이 그 같은 절차를 잘 몰랐던 관계로 이 집회를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추모 집회에 제대로 참석한 유일한 언론인이 됐다. 그들은 집회에 앞서 3장 짜리 웹자보를 만들어 돌렸고, 서명 운동 링크도 만들었다.



- 서명운동 링크(클릭)


이들은 비극적인 사건으로인해 영향 받은 모든 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전함을 밝힌 후 학교 및 관계기관을 향한 8가지 요구를 발표했다.


직후, 2024년 5월 27일 오전 11시 45분 경부터 전남대 공과대학 G&R HUB에서 학생들의 추모 집회가 있었다. 해당 집회를 취재해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기사를 냈다.


--- 기사 전문 ---


제목 : "견디기 어렵다고..." 그 유학생은 왜 목숨을 끊었나

'학업스트레스, 우울증' 광주광역시 외국인 유학생 A씨 사망... 학생들 "개별적인 사건 아냐"

사망한 유학생을 추모하기 위한 유학생 행진이 진행되고 있다.


광주광역시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나체 상태로 자전거를 타다 형사 입건돼 논란이 됐던 외국인 유학생 A씨가 사건 발생 이튿날인 지난 23일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 중 드러난 사실에 따르면 A씨는 우울증 치료를 받은 바 있었고, "최근 학업 관련 스트레스가 심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이 과정에서 학교 측은 A씨와 같은 방을 사용하던 룸메이트들에게 학생의 정신질환 증상을 알리면서 분리조치하겠다는 공지를 냈고, A씨가 정상적인 학업을 이어갈 수 없을 것이라 보고 본국으로 귀국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27일 사건이 발생한 대학에서 A씨에 대한 추모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해당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 200여 명은 주최 측이 마련한 '대학 내 정신건강 인식에 대한 구조적 변화 요구'라는 제목의 서명운동에 참여한 후, 학내에서 침묵 행진을 진행했다. 참석자들은 '우리가 사랑한 친구를 추모한다'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들고 A씨의 연구실을 향해 걸었으며, 모 공학관 앞에서 1분간 묵념을 올렸다.


"학생 정신건강 문제와 관련한 학교의 실질적 대응 부족해"


집회 참석자들은 "(이번 사건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유학생과 연구자들이 업무 전반에 걸쳐 직면하는 극심한 연구 압력과 가혹한 태도에 있다"면서 "많은 연구실들이 연속적으로 운영되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회의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주말에도 쉴 수 없다. 미래의 비극을 예방하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사건은 개별적인 사건이라 할 수 없다. 지난 2년 동안 학내에서 발생한 자살 건수가 실로 충격적이고 우려스럽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즉각적이고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투명한 조사와, 관계 기관들의 역할과 대응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날 집회를 주최한 B씨는 "지난 2년간 이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벌써 두 번째 죽음을 마주했다"며 "그러나 학생들의 정신건강 문제와 관련한 학교의 실질적 대응은 부족했다. 연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학생 700여 명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를 통해 이번 추모 집회를 준비하게 됐다"고 했다.


추모 발언에 나선 브라질에서 온 유학생 C씨는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아주 어렸고 학교나 이 나라에서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면서 "모든 개인에게는 저마다의 어려움이 있지만 그는 그것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에게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파키스탄에서 온 유학생 D씨는 "그는 무척이나 성실한 학생이었다"며 "그는 이 나라에서도, 그의 나라에서도 늘 성실했다. 그렇지만 어느 날부터 너무 힘들고, 더 이상의 압력을 견디기 어렵다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A씨와 같은 층에 위치한 연구실 소속인 유학생 E씨는 "그는 나와 같은 층에 있는 연구실을 썼는데, 어떤 날에 새벽 2시, 3시까지 일을 하고 연구실을 나왔음에도 그는 연구실에서 여전히 일하고 있었다"며 "그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어려움에 처한 학생 찾고, 개입할 방안 강구해야"


이날 집회 참석자들은 "학생들이 학생에 대한 차별, 괴롭힘, 과도한 업무 부여 및 인권침해 사건을 안전하게 신고할 수 있도록 신뢰할 수 있는 독립 업무 기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출신 국가 및 정치적 신념에 따른 차별을 방지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과도한 스트레스와 가혹한 대우를 가하는 교수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며, 그들이 다양한 배경, 업무 환경, 문화적 맥락을 지닌 학생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 관련 교육을 통해 어려움에 처한 학생을 더 잘 식별하고 지원할 수 있는 접근 가능한 위기 개입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했다.


A씨의 죽음 이후 지역사회에서는 지역의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정신과적 지원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광주자살예방센터 김도연 상임팀장은 사건 직후 KBS와의 인터뷰에서 "유학생들을 위한 정신과적 문제나 자살 관련 촘촘한 내부 매뉴얼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사실 내부 매뉴얼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끝.

사망한 유학생의 지인이 그의 사진을 들고 추모 집회에 참여했다.


기사를 작성한 직후부터 관련 반응을 체크했다. 가장 중점을 둔 곳은 당연히 전남대 내부였다.


이날 전남대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이 기사에 대한 내용이 올라왔다. 글은 2개였고, 둘 다 10명 이상의 학생들이 공감 버튼을 누른 관계로 핫게시판에 올라갔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첨부사진과 같다.


전남대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관련 글1


전남대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관련 글2


사건 초기에는 조롱이나 혐오의 내용이 담긴 게시글도 있었지만, 공론화 후에는 학교를 비판하는 주장이 많았고, 학내 문제에 대한 총학생회의 대응 부재를 지적하는 주장도 있었다. 어떤 학생이 '알빠노'라는 댓글을 달자 이에 대한 반론이 나왔고, 많은 학생들이 해당 반론에 공감했다. 여기까지가 이번 일에 대한 흐름이었다.


이후 향후 대응을 고심한 유학생 커뮤니티는 6월 4일 전남대학교 측에 그동안 모은 서명을 담은 청원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유학생 및 시민 276명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서명한 '외국 학생 청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전남대를 방문한 전남대 국제학생회 'CISA' 관계자 및 일부 유학생들은 고인이 재학 중이던 단과대학 측에 청원서를 전달했고, 이어 전남대 국제협력과에 방문해 청원서 수령을 요구했다.


그러나 전남대 국제협력과 측은 "이 문제에 대한 대응은 대외협력실에서 맡기로 했다. 그래서 우린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다"며 청원서 수령을 거절했다. 이후 유학생들은 전남대 대학원 관계자들에게 청원서를 전달한 후 청원서 전달식을 마쳤다.


이번 청원에 참여한 한 한국인 학생은 "한국 학생에게도 때로 대학이라는 공간은 억압적이고 우울하게 느껴지곤 한다"며 "국제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은 더 클 것 같다. 대학이 국제 학생을 포함한 모두에게 안전하고 즐거운 배움과 경험을 주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정신건강 보호와 차별 금지 관련 제도가 시급히 생겼으면 한다. 단 한 사람의 일이 아니었던 고인의 이야기가 시민들에게 알려져 인식을 바꿀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청원에 참여한 한 유학생 출신 외국인은 "여기에 교육은 없다"며 "여기 있는 건 노예 제도의 연장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전남대의 한 유학생은 "일부 대학원생은 정말 말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사실상의 노동을 부과받고 있다"며 "공장에서 일해도 이것보다는 더 벌텐데, 생계를 유지할 수도 없는 돈만 받고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이번 청원서 제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취재해 <오마이뉴스>를 통해 보도했다('보도' 글자를 클릭하면 기사로 연결된다.)


이후 6월 13일에는 녹색당 정책위원회, 국제위원회, 돌봄위원회가, 6월 14일에는 정의당 전남대학교학생위원회가 이 사건에 대한 성명을 냈다.


13일 녹색당 정책위원회, 국제위원회, 돌봄위원회는 "녹색당은 소수자와 이주민 곁의 정당으로서, 깊은 애도와 추모의 마음을 전한다"며 "이 일은 한국의 연구공동체가 대학원생에 가하는 부조리,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이 겪어야 하는 차별과 배제, 정신건강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가 교차하면서 일어난 일"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한국의 대학원생은 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따라서 학생으로서의 권리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제도의 부재를 개인 간 관계로 해결해야 하는 학계의 문화 속에서, 전반적인 지원체계의 부족은 유학생 개인의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녹색당은 "학생들의 정신건강 문제에는 학생을 각자도생 식으로 방치하는 학교와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어느 죽음이든 그가 살고 있는 공동체 및 사회와 무관할 수는 없다. (녹색당은) 더 이상의 비보가 우리 앞에 들려오지 않도록, 전남대학교 학생들의 곁에 서서 모두의 생명을 보살피는 사회로 걸어갈 것"이라고 했다.


14일 정의당 전남대학교 학생위원회는 "이번 사건은 정신질환을 앓던 한 개인이 목숨을 잃은 개별적인 사건이 아니다"라며 "많은 대학원생 및 유학생이 직면하는 열악한 연구 환경과 차별 및 괴롭힘으로부터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부재해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이어 "지난 2016년 10만 명이던 국내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은 코로나19가 확산하던 2020년과 2021년을 제외하곤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 20만 명을 돌파했다"며 "사회적 관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유학생에 대한 지원체계를 마련하고 앞으로도 꾸준히 강화해야 한다. 지역 대표 국립대학인 전남대는 이번 사건에 경각심을 갖고 재발 방지와 학내 구성원 권리 증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정의당 전남대 학생위원회는 "유학생들이 마련한 청원서 수령 및 대응을 국제협력과에서 하는지, 대외협력실에서 하는지를 놓고 언쟁하는 건 문제 해결의 본질이 아니다"라며 "지금이 과연 청원에 참여한 유학생이 정말 276명이었는지 따지고 있을 때가 맞는지 의문이다. '관할 싸움'하고 '숫자 놀음' 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 4일 전남대 국제협력과는 전남대 국제학생회 'CISA' 관계자 및 일부 유학생들의 청원서 수령을 거부하며 "이 문제에 대한 대응은 대외협력실에서 맡기로 했다. 그래서 우린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일부 유학생들의 요구가 이어지자 결국 같은 날 늦은 오후에 다시금 유학생들을 만나 청원서를 수령했다.


정의당 전남대 학생위원회는 "전남대는 안전하고 즐겁게 연구하고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며 "저희 정의당 전남대 학생위원회는 유학생을 비롯한 모든 전남대 구성원과 함께 학교 측의 의미 있는 조치가 이뤄질 때까지 사건에 끝까지 연대하고 관심 가지겠다"고 했다.


두 정당의 성명 역시 <오마이뉴스>를 통해 보도했다('보도' 글자를 클릭하면 기사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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