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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울리 Sep 12. 2024

오늘 와이프 생일이에요


“이거 예쁘네요. 이걸로 주세요”

누가 봐도 동네 마실 나온 복장으로 슬리퍼를 신고 팔자걸음으로 유유자적 걸어오시는 중년의 남자손님이다. 손님은 허허 웃으시며 순박한 미소로 덥석 유리돔을 집어 들었다가 다시 갸우뚱대며 고민한다.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물어보신다.

“빨간색이 나은가요, 파란색이 나은가요?”


‘아니 고객님 그게 뭔지나 알고 사시는 건가요’ 싶지만 고객님은 다시 해맑은 미소로 전혀 모르는 상품을 열심히 고르고 있다. 그런 고객님을 보면 이 상황이 너무 웃음이 나서 그냥 웃고 만다.

“빨간색이 낫지요~ 이거 미녀와 야수 아시죠?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장미꽃이에요”

“아~ 예~ 허허허허”

즐겁게 대답하시는 고객님을 보며 아, 모르시는구나를 직감한다. 나는 매장 안에 계시던 다른 여자 손님과 동시에 웃음이 터진다. 그 여자 손님도 느낀 것이다. 저 아저씨 모르시는구나!


이 장미꽃 프리저브드 상품은 미녀와 야수 이야기에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미녀와 야수 이야기에 보면, 야수는 마녀의 저주를 받아 야수의 모습으로 성에 갇힌다. 저주가 풀리는 유일한 방법은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것. 그런데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시간의 기한이 있었다. 그 기한은 장미의 마지막 꽃 잎이 떨어지기 전까지다. 그래서 그 소중한 장미를 유리돔에 보관하고 꽃 잎이 떨어지는 장미를 슬픈 눈으로 바라본다. 미녀 ‘벨’이 야수를 찾아와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했을 때 저주가 풀리며 동화가 끝난다. 진정한 사랑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상품이 이 장미 유리돔이다.



“이걸로 주세요”

고객님은 싱글벙글 웃으시며 빨간색 장미꽃 유리돔을 가져오신다.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신지 물어보자 쑥스럽게 대답한다.

“오늘 와이프 생일이에요”

    

아내의 생일에 장미꽃을 선물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진 남편분이다. 고객님은 생화보다 더 비싼 상품인 프리저브드 유리돔을 예쁘다고 덥석 집어 들고 나를 바라본다. 그 모습이 마치 조개를 소중히 껴안고 있는 해달 같다. 뿌듯한 표정으로 상품을 계산대에 올려두시고 결제할 카드를 건네주신다.

“이게 왜 비싸냐면요 고객님, 이게 조명이 붙어 있어요. 이거 조명을 켜시면 더 예뻐요”

유리돔 바닥에 붙어 있는 스위치를 켜서 조명을 켜서 보여드린다.

“오오오~~~”

그 고객님의 눈빛이 반짝였다가 더 기분이 좋아지신다.


그렇게 고객님은 미녀와 야수의 프리저브드 빨간 장미 유리돔과 행운의 네 잎클로버 하바리움을 같이 구매해 가셨다. 아내에게 선물해 줄 생각에 매장을 나가시는 고객님의 걸음이 팔락 팔락 하다.






꽃집에는 고백하러 오는 각자의 사연이 있다. 사랑해서, 고마워서, 미안해서, 축하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온다. 특이하다. 마음을 전하기 위해 쓸모없는 물건을 산다. 먹을 수도 없고 입을 수도 없다. 그래서 상징적으로 더 순수하게 마음을 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남편분들은 아내의 생일에 꽃을 사러 온다. 마음을 전하러. 어쩌면 그들의 생존전략일지도 모른다. 1년 치의 썩였던 속을 이번에 만회해야 한다. 가끔이지만 20년 치 썩였던 속을 만회하기 오는 분도 계시긴 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는 마음, 그것이 관계에서 필요한 진정한 쓸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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