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로울리 Sep 19. 2024

조화 같은 생화를 꿈꾸며

‘기스 없는 상품으로 주세요.’ 

배달 주문 요청사항에 메모가 들어왔다. 


요청했던 상품은 생화는 아니었고 프리저브드 유리볼 장식품이어서 기스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상품이긴 했다. 하지만 비슷한 말을 자주 들어왔다. 


기스는 일본어로 ‘흠’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흠’의 뜻을 찾아보자. 첫 번째에 나오는 뜻은 ‘어떤 물건의 이지러지거나 깨어지거나 상한 자국’이다. 어떻게 보면 상품의 탄생과 더불어 흠이라는 단어가 생겼을 수도 있다. 자연에서는 흠이 없다.



꽃은 특이한 상품군이다. 자연물인데 상품화된 자연물이다. 상품화된 자연물에는 농수산물도 있는데 농수산물은 보통 먹는 것이기에 구매자가 손질해서 보통 직접 먹는다. 못난이인 상품도 모아서 싸게 팔면 팔린다. 마트에서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들만 할인해서 팔면 또 팔린다. 


그런데 꽃은 의식주와 관련되어 있지 않다. 더군다나 구매자가 소비자가 아닌 경우가 많다. 구매자가 구매한 후 타인에게 선물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된다. 그래서 비싸더라도 싱싱하고 좋은 꽃을 사려고 하지 싸더라도 못생긴 꽃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조화 같은 생화를 찾는다. 그저 우리네 삶이다. 완벽한 스펙을 정해놓고 그런 사람을 찾는다. 생화는 조화가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없다. 노력할 수 있는 우리네들은 흠집 없는 조화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버둥버둥 치는 것만 같다. 사실 우리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데. 꽃들도 그렇다.







꽃을 사람이라고 보면 농장에서 태어난다. 온습도를 맞춰 땅의 영양분을 먹고 무럭무럭 다 자라다 꽃이 필 때가 되면 수확된다. 등급을 나눠 경매에서 판매된다. 경매권이 있는 도매에서 꽃들은 대량으로 팔린다. 그 꽃 도매시장을 통해 전국각지로 떠난다. 도매시장에 새벽부터 가서 만나는 자기를 마음에 들어 하는 꽃집 사장님에게 팔린다. 그 꽃집으로 와서 상품으로 제작되는 것. 이게 꽃의 인생여행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꽃이 이동하는 동안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손과 박스와 신문지와 다양한 환경을 거치게 된다. 수입 꽃의 경우는 국산 꽃보다 훨씬 더 멀고 긴 여행을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얇고 약한 꽃의 잎은 다치게 된다. 대표적으로 장미다. 박스에 넣으면서 장미 잎이 긁히거나 접히거나 눌릴 수 있다. 꽃잎의 입장에서는 박스와 신문지, 비닐을 너무 많이 만나게 된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대해도 현실적으로 많은 물량을 대하다 보면 거칠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들이 있다. 그러니 최종소비자와 만날 때는 장미 잎에 긁힘이 있거나 이동하면서 마찰이 되어 잎의 끝부분이 상처가 있는 경우가 많다. 꽃의 상품성이란 얼마나 연약한가. 이것을 알기에 화훼업계 계신 분들은 꽃의 얼굴을 보호하는 것을 아주 소중히 생각하시지만 농장에서 바로 수확해서 쓰는 꽃이 아닌 이상에야 유통과정에서 손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최종적으로 꽃 상품을 제작하는 플로리스트들은 최대한 상품성을 지키기 위해 꽃의 상태를 계속해서 체크한다. 그러면서 스크래치난 잎도 제거하고, 시든 꽃도 잘라낸다. 하지만 자연은 작은 것도 완벽하게 태어나게 만들었다. 우리가 잎을 제거해서 깨끗해 보일 수는 있으나 건강한 꽃에서 멀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흠 없는 꽃 한 송이를 찾겠다고 꽃 통을 마구 헤집으며 그 통 안에 있는 많은 꽃을 꺾고 스크래치를 낸 뒤에야 한 송이를 들고 유유히 들고 걸어오는 고객님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작은 것 하나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는 사람마다 굉장히 다르다. 단단한 줄기인 소국조차도 만질까 말까 고민하다가 ‘사장님 이거 주세요’ 조심스레 말씀하시며 다가오시는 고객님도 계시다. 







우리 눈에는 꽃잎 끝이 조금 갈라져있을 수도 있고, 한 줄기에 주렁주렁 여러 대의 꽃이 피는 경우는 어딘가에서 꽃이 지고 있을 수도 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몽우리일 수도 있고, 싱싱한데 시들어 보이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자세히 알면 다 예쁜데, 흠집 없는 상품을 찾으려고 보면 모두 다 흠이다. 


물론 실제로 팔 때는 최대한 상품성을 갖춰서 판매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는 흠 하나 없는 아주 깨끗한 조화 같은 완벽한 꽃을 선물하고 싶으니까. 다만 우리가 꽃을 바라볼 때는 조금 여유 있게 바라봐주었으면 한다. 꽃들은 다 살아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 와이프 생일이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