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활여행자 Sep 28. 2016

비포 선셋

연애 - 배꼽2

우리나라 추석이나 설날과 다를 바 없는 크리스마스 휴가철에 가족들과 지내는 대신 호스텔에서 머물며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는 이들이란 다른 의미에서 특별(?)했다. 내가 머물게 된 믹스 돔에서는 문을 열고 처음 들어섰을 때 마리화나 냄새가 진동을 했다. 미국에서 왔으며 스페인-미국을 잇는 마리화나 세일즈를 한다는 룸메이트 1은 담배보다 마리화나가 건강에 좋다는 것을 시작으로 마리화나 찬양을 내게 늘어놓았다. 호스텔에서 처음으로 내가 인사를 나눈 독일에서 왔다는 룸메이트 2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딘가 수상했는데 - 눈빛이라던지 어투에서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쌔함 - 어쩌다가 다음 날 워킹투어를 같이 하게 되었고, 걷는 와중에 내게 일본의 성문화에 관한 경이를 비롯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아시아 대부분이 그렇냐는 질문을 들으며 나는 그에게서 얼마간의 거리를 두기로 했다. 


그날 오후까지 찰떡처럼 붙어서 나를 따라다니던 룸메이트 2와 나는 호스텔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파스타를 먹기 위해 일찍 돌아갔다. 물론 빠질 수 없는 당시의 여행자 타입 - 크리스마스 휴가철에 가족들과 지내는 대신 호스텔에서 머물며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는 이들 - 에는 한국인 무리도 있었고, 얼마간 내게 친절했던 그들은 저녁 이후에 클럽에 가는 스케줄 잡혀있는데 함께 가느냐고 물었다.(우리가 머물렀던 호스텔은 무료 파스타, 무료 빠에야, 클럽 나잇, 펍 크롤 등 매일 다른 이벤트가 있었다.) 생각이 없다는 내게 어떤 여행 커뮤니티에서 만난 다른 한국인 친구들(?)이 이 호스텔로 모일 것이며 함께 클럽을 간다고 하기에, 알겠다는 시늉을 했다. 찰떡 룸메이트 2에게 신나게 떠들어 대던 나의 목소리가 어지간히도 컸는지 내 주변으로 건너편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들면서, 나중에는 독일에서 온 또 다른 수상쩍은 여행객, 아르헨티나 출신의 독일 대학원생, 스위스에서 온 앳된 청년 등으로 구성된 우리의 테이블만 남게 되었다. 지금도 나의 ‘그’가 기억하는 우리의 첫 대화는,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를 보여주기에 언어를 배우는 것이 재미있다는 이야기였다. 


클럽에 가자고 부추겼던 한국인은 내가 아르헨티나, 스위스 청년 둘을 대동하고 나타나자 계획이 바뀌었다는 얘기와 함께 자취를 감췄고, 결국 만난 지 네 시간도 되지 않았던 우리 셋은 추위가 포근하게까지 느껴졌던 크리스마스이브 밤, 단출하게 클럽으로 향했다. 


크리스마스를 함께 클럽에서 맞았다는 의리로 뭉쳐, 우리 셋은 한 팀이 되어 그다음 날부터 열흘 간 바르셀로나 이곳저곳을 함께 쏘다녔다. (참고로 찰떡 룸메이트 2에게는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했다.) 우리의 일정은 정오 기상, 로비에서 집합, 유명 관광지 수박 겉핥기 구경의 오후로 구성되었고, 해가 지고 나면 하이라이트를 맞았다. 모히또가 5유로밖에 하지 않는 빨간 벽으로 둘러싸인 싸구려 바는 우리의 아지트였고, 우리는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술을 마시고 새벽 네시쯤이 되어서야 호스텔에 돌아가 공짜로 제공되었던 따뜻한 차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해가 지지 않는 다음 날을 또 기약했다. 이미 바르셀로나에 친구들이 꽤 있었던 아르헨티나 청년은 다른 약속으로 바쁘기 일쑤였고, 스위스 청년과 나는 자주 둘 만 남겨졌으며 우리는 12월의 바르셀로나를 해가 질 때까지 걷고 또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그리고 마음을 나눴다. 관계에 관한, 삶에 관한, 세상에 관한 이야기들. 그 내용이야 지금은 세세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필요치 않은 때에는 과묵할 줄 알고, 속에서는 가장 순수한 본질에 가까운 자신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며, 정의롭지 못한 어떤 것들에 대해서 화를 낼 줄 아는 그에게 마음이 갔다. 시절의 특성이라, '어른'이 되면 달라질 것이라고 비꼬는 누군가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리고 생각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정작 아무것도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인지하고 있는, 그리고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순수에 가까운 그가 좋아졌다. 


2014년 겨울, 모히또에 취해서 졸음을 이길 수 없었던 내가 방석을 베개로 우리의 아지트에서 잠이 들었던 일화는 아직도 회자되는 우스운 이야기다. 그가 한국에, 내가 스위스에 오고 가기를 반복하면서 우리는 2년의 기념일을 앞두고 있다. 


바르셀로나 벼룩시장에서의 그
아르헨티나에서 온 Emo
매거진의 이전글 부산, 파리, 바르셀로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