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관한 고찰 1
먹다
이미 수많은 담론이 벌어지고 있는 작금에 이 행위에 대한 생각을 늘어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지만은,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주제들로 이야기를 나누자면 이건 절대 빼놓을 수가 없다.
식탐은 언제나 나의 적이었다.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하루에 반 끼를 먹어가면서 다이어트를 할 때에도, 내 것이 아닌 음식을 맛나게 먹는 이의 앞에서 태연한 척을 해야 하는 때에도, 식탐은 대개 내가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 벗어나기 일쑤였다.
식문화에 대해서, 푸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떠올려 보니 음식이라는 건 비단 다이어터의 고민을 더하는 적에 한하는 것이 아니다. 먹는다는 행위의 이면에는 무시할 수 없는 많은 생각들이 연결되어 있다. 배부름에 음식을 남기는 선진국의 아이들과 굶어가는 빈국의 아이들로부터 대변되는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에 대한 정치경제학적인 접근부터, 최근에 유행하는 소셜 다이닝이 정보통신과 개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사교의 양상이라는 사회학적 해석까지 ‘식(食)’에 관한 논의란 끝이 없다. 동일한 주제라는 이유만으로 이해와 지식이 얕은 분야에까지 손을 뻗을 욕심과 능력이 없는 나는, 우리나라와 (내게) 가깝고도 먼 스위스의 음식 문화 비교를 통해서 덜 유식하게 ‘식(食)’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스위스 VS 한국 식문화 본격 비교
출신이 한국이라고 말하는 내게 주변 국가 중국이나 일본의 사정을 (심한 경우에는 인도나 태국까지) 묻는 한국에 대해 무지한 소수의 외국인들(스위스인들)에게 다른 무엇보다도 자부심을 가지고 소개하는 것은 바로 음식. (실제로 한국 음식은 많은 소스들에서 맛있는 음식 세계 20위 안에 든다. 참고 1) 파스타나 피자, 그라탱, 각종 감자 요리야 특별식으로 이따금씩 먹으면 색다를지 몰라도 매일을 그네들의 이런 음식들로 채우고 나면 그들의 심플하고 단조로운 맛에 가슴까지 데워주는 따뜻한 국물 요리의 진하고 깊은 맛이, 밥과 반찬이 함께 만들어내는, 미묘한 여러 맛들이 한데 어우러진 그 복잡함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2011년 캐나다로 교환학생을 떠나기 전 기숙사 생활을 했을 때, 빠른 적응을 위함이라는 핑계로 베이글, 햄버거 같은 양식(洋食)으로 근 한 학기 동안의 전 끼니를 때운 적이 있었다. 머핀부터 시작해서 오트밀, 파스타, 피자 등 인스턴트 음식으로만 아침, 점심, 저녁을 해결했던 진짜 캐나다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이후 그제야 참기름에 갓 무쳐진 고사리, 고춧잎과 같은 제철 나물의 맛이 얼마나 신선하고 알찬지 나는 깨닫게 되었다. 그때를 기점으로 나는 음식 문화에 있어서 만큼은 애국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번에 스위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었을 때 가장 생각났던 것은 가족도 친구도 아닌 고향의 음식이었다(엄마 미안). 강하고 매운맛의 주꾸미 볶음이 그리웠고 조미료 맛에 개의치 않고 냄비 채로 비우던 사리곰탕 라면이 고팠다. 특히나 어떤 종류건 뜨끈한 국물이, 입안을 감싸고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깊은 곳까지 뜨겁게 데워내던 국물 요리가 너무나도 그리웠다. 5월에도 봄이랑은 동 떨어진 추위가 일으킨 식욕이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타지에서 느끼는 헛헛하고 쓸쓸함 같은 심리적인 이유로 더 생각이 났던 것 같다. (갑자기 생각난, 인터라켄에서 비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에 같은 기차를 기다리던 한국인 부부가 라면이 먹고 싶다고 했던 대화를 주워들으며 격하게 속으로 공감했던 기억..)
이런 나의 한국 음식에로의 편향성을 최대한 배제하기로 다짐하고 본론에 들어가서, 이번에 다루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외식’이다.
스위스를 찾는 한국 여행객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바로 ‘스위스에서는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 ‘살인적인 스위스 물가’ 같은 것들이다. 집세나 보험료, 세금과 같은 생활자의 부담인 영역은 차치하고서 개인적으로 동의는 살인적인 물가의 영역에는 교통비와 외식비가 있다.
6개의 역 미만의 짧은 구역을 가는데 버스비가 2.5프랑(한화 약 2,838원)이며 한 시간 거리의 기차 요금이 40프랑(한화 약 45,411원)인 교통비도 인상적이지만, 외식비 역시 이에 못지않게 가공할 수준이다. 친구들과 지난겨울에 찾은 퐁듀로 유명한 곰 공원 근처의 로젠가르텐 (Rosengarten, Alter Aargauerstalden 31b). 아무런 음료도, 전식도 디저트도 시키지 않고 그저 퐁듀(퐁듀 치즈+빵+피클)의 간단한 단일 메뉴에 우리는 1인당 40프랑을 지불했다. 물론 이곳은 분위기도 좋고 야경도 멋진 고급 레스토랑이라 가격이 비교적 높았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베른의 다른 레스토랑들을 살펴보면 그냥 평균적으로 식당에서 먹는 음식이란 다 비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예로 베른 구 시가지의 스위스 전통 음식 뤄슈티(Röschti)로 유명한 Anker를 들어보자. 뤄슈티의 가격은 메뉴에 따라 다르지만 25프랑(한화 약 28,382원)을 주변을 맴돈다. 물론 이는 단일 메뉴의 가격으로 음료, 사이드 메뉴나 애피타이저를 추가하면 높아지는 비용이란 짐작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또 착석하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나면 꼭 남겨주는 팁은 어떠한가. 이쯤 되면 레스토랑은 포기하고 맥도널드나 길거리 음식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스위스는 이마저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맥도널드 빅맥 버거와 카페라테의 스위스, 한국 간 가격 비교는 아래와 같다.
스위스 : 빅맥 버거 단품 6.50프랑 (약 7,379원)
한국 : 빅맥 버거 단품 4,400원
스위스 : 빅맥 버거 세트 11.70프랑 (약 13,283원)
한국 : 빅맥 버거 세트 5,500원 (런치 4,700원)
스위스 : 카페라테 3.6프랑 (약 4,087원)
한국 : 카페라테 M사이즈 2,400원 (S사이즈 1,900원)
아직 길거리 음식에 희망을 걸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잔인하지만 길거리 음식은 잘 볼 수 없을뿐더러 있다 해도 절대 5유로의 선을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는 진실을 말해주고 싶다. 지난 5월에 갔던 베른 길거리 음식 축제(Street Food Festival)에서 만두 하나의 가격은 5프랑(약 5,676원)이었고 10프랑(약 11,353원)을 내려가는 단품 메뉴를 눈을 씻고 보려야 볼 수가 없었다. 베른 구시가지에서 점심시간에 맞추어 파는 포장 음식들은 어떠랴. 어느 점심시간에 12프랑(13,623원)을 주고 카레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있다. 하나에 8프랑(9,082원)이었던 핫도그도 잊을 수가 없지. (5천 원에 망원시장에서 떡볶이와 튀김으로 배부르게 둘이서 한 끼를 해결했던 기억 따위는 마음이 아프니 접어두도록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정한 소득이 있는 (스위스의 일정함이란 우리의 기준에서 훨씬 높은 곳에 위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장인에게도 외식이란 특별한 것이고 수입이 없는 학생이나 적은 가구에서 외식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엇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해 먹는 것보다 싸게 외식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고 친구들과 1차 2차 3차에 이르는 거한 저녁을 먹던 내게 이 갑자기 외식이 사치가 되어버리면서 가져온 불편함이란 상상이 어렵지 않을 테다.
그런데 우스운 사실은 인간이란 적응의 동물이라는 것. 상황이야 마음에 들지 않지만 따르지 않고서야 하는 수가 없으니 장을 봐서 한 끼 식사를 매일 만들어내다 보니 무섭게도 이 새로운 습관에 또 익숙해졌다.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함이 수면 위에 오르지는 않아도 깊은 수심에서 배회하던 날들에 묵묵하게 양파를 썰고 마늘을 다지면서 내 나라의 맛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란 어쩐지 내게 위안을 주었다. 그렇게 음식을 만드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알아갔다. 슈퍼마켓에 가면 대문짝만 하게 적혀있는 원산지를 확인하고, 재료를 하나씩 고르고, 오랜 시간을 들여서 손질하고 그들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맛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의 기쁨. 그러고보면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식탁에 각 게스트의 플레이스 매트를 깔고, 냅킨을 준비하고, 전식부터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정성스레 준비하여 나누는 이곳 스위스의 문화를 보자면 마치 요리의 노동과 정성을 알고 있고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의점에서 라면을 사서 10분 만에 허기를 채우고 배달된 치킨에 기여하는 것이란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내게 이 일련의 과정을 경험하기란 마치 요리와 식사의 신성화와도 같았다.
한국 음식을 지인들에게 소개하여주기 위해 떡볶이와 김밥을 만들어보고 나서야 그 음식의 가치란 5천 원으로 환산되는 것이 아니라 쌀을 고르고 씻고 짓는 마음이며 김밥을 마는 시간, 그리고 떡볶이 국물의 농도를 조절하는 정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그릇에 참하게 담겨 나오는 음식의 근원을 찬찬히 타고 올라가다 보면, 만든 이의 마음과 성심은 물론 재료를 정성껏 가꾼 농부들의 고됨까지도 온전히 헤아리지는 못할 망정 상상은 해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간편하고 쉽게도 테이크 아웃하고 빠르게 먹어 삼켜졌던 무수한 음식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떡볶이를 위해 지불했던 3천 원의 돈이란 만드는 이의 수입이자, 점포를 유지하는 비용이자, 재료를 위해 지불된 가격이라는 생각은 나를 다만 아연실색하게 할 뿐만 아니라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들려서 부정해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한다. 상향 평준화된 스위스의 외식비란, 노동의 가치를 20프랑의 최저 시급을 통해서 인정하는 무언의 사회적 동의인 것이다.
그래서 5천 원짜리 푸짐한 된장찌개 정식이 그립지 않냐고 물으면 나는 그렇다고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비싼 외식비에도 레스토랑에서 즐기는 가끔의 식사가 지니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수요는 언제나 존재하며(다시 한번 말하지만 스위스의 일정함이란 참으로 높다), 그로 인해서 적당한 수준 이상을 버는 종업원들이 있고, 가게의 주인들은 합리적인 수준의 이윤을 남기며, 이들은 다시 시장에서 무엇을 구매할 수 있는 소비력을 지닌 구성원이 되어서 3천 원짜리 짜장면 배달 문화가 없어도 이 사회는 얼마간 행복하게 잘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비싼 외식비에 대한 불만은 스스로에게만 간직하기로 한다.
참고 1
https://yonderbound.com/blog/20-best-countries-world-food/
http://www.thetoptens.com/countries-with-the-best-f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