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귀신들' 서평
오빠는 치과의사 하지 않았으면 어떤 일 했을 것 같아?
침묵했다. 잘하는 다른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것이 공부밖에 없었다. 다시는 공부를 하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언젠가 키울 자녀들에게도 공부를 강요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였지만 공부 빼고는 아무 특기가 없음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미 ‘빼박’으로 공부계에 발을 깊게 들여놓은 지금 상황에서 나만의 방법론을 정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공부에 관련된 많은 서적들을 읽으면서 공부를 공부하고 있다. ‘공부 귀신들’은 공부 대상 중의 하나이다.
이 책은 30년 가까이 교사와 공부법 연구가로 활약했던 구맹회 씨가 저술했다. 그는 학력고사, 수능, 고시, 사시 그리고 여러 자격증 시험 등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둔 공부 귀신 2000여 분의 합격수기를 분석했다. 자신의 학습지도 경험과 노하우도 함께 버무려 놓았다. 공부 귀신은 아니지만 나쁜 머리를 가지고도 수능, 각종 영어시험. 고시(?)에서 적당한 수준의 성적을 냈던 내가 가지고 있던 공부비법과 비교하면서 흥미롭게 읽어 나갔다.
[동기], [암기], [이해], [반복], [핵심과목 공부], [시간관리],
[자기 주도], [시험 공략], [자기 관리], [의지]
책 내용은 위 8개의 키워드를 주제로 하여 서술되어 있다. 사실 공부와 거리가 먼 내 여동생도 제시할 수 있는 단어들이긴 하다. 공부 준(semi) 전문가인 내가 감히 3개의 핵심 단어를 골랐고 개념의 상하관계도 정리해 봤다. 저자는 학습한 애용과 개념을 나뭇가지처럼 연결을 지어 정리하는 마인드 맵 공부법의 중요성을 힘주어 말했었는데 바로 실천을 해 본 것이다.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병렬식으로 단순 나열되어 있던 주제들이 정갈하게 정돈된 듯한 느낌이다. 머릿속에도 오랜 기간 잘 남아있을 것 같다.
1. [암기]: [이해], [반복], [핵심과목 공부]
(Feat. 머릿속의 눈, 백지 공부법, 마인드 맵 공부법)
2. [자기 주도]: [동기], [의지]
(Feat. 요약정리&오답 노트 작성, 공부 실행/계획표 작성)
3. [시험 공략]: [시간관리], [자기 관리]
(Feat. 기출문제 반복, 과목 적정 배분, 반복, 멘털&체력 관리)
암기 없는 공부는 없다. 우수한 암기력은 공부의 필수 조건이다. 이해도 결국 암기의 수단일 뿐이다. 심지어 응용력이 필요한 수학조차도 암기력이 좋아야 잘할 수 있다. 글쓴이는 이 점을 전제하고 있는데, 매우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저자는 책의 첫머리부터 암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머릿속의 눈’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소개한다. 머릿속의 눈은 어떤 대상을 이미지로 그리고 떠올리는 가상의 눈이다. 특정 개념이 아무리 추상적이라 하더라도 가시화할 수 있는 구체적 대상으로 치환하면 오래 기억할 수 있다. 머릿속의 눈을 활용하는 방법으로서 백지 공부법이 제시되어 있다. 백지 공부법은 교과서나 참고서를 펴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시간 동안 공부한 내용을 백지에 옮겨 적는 과정을 습관화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 암기력을 극대화하면서 공부한 내용을 요약하는 효과를 덤으로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 또한 쉽고 단순해 보이는 이 방법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엄청난 양의 암기가 기본을 이루고 있는 치의학 커리큘럼을 우수한 성적으로 소화하는 동기들은 대부분 백지 공부법을 이용하여 기억중추 해마에 전기적 자극을 지속적으로 유발하고 있었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공부 귀신들의 비법을 소개하는 책이 초장부터 암기력을 강조하면 독자들은 크게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저자도 이 점을 걱정했는지 ‘암기력 우수 = 좋은 머리’ 등식을 철저히 경계한다. 그리고 한국 최고 인재의 83%는 평범한 머리를 가졌다는 주관적(?)인 통계를 제시하면서 ‘꾸준한 자기 주도’를 대안으로 언급하는데 꽤나 설득력이 있다. 나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공부 장기 레이스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의지’를 객관화하고 형체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렇게 해야만 자기 주도력의 상태를 점검하고 확인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다. 요약정리 노트 만들기, 오답 노트 만들기, 공부 계획 및 실행 표 작성하기는 무형의 영역을 가시화하는 좋은 도구이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공부하다 보면 자칫 좌표를 잃고 방황과 헛돌기를 반복하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급된 강력한 도구들을 사용하여 하루하루 무엇인가를 완성하는 기분을 들게끔 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중간중간 자신의 업적(?) 물을 확인한다면 포기하고자 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다시 의지를 불태울 수 있다. 신기하게도 책에는 평소 내가 가지고 있던 ‘자기 주도’에 대한 생각이 ‘복붙‘이라도 당한 듯 그래도 옮겨져 있다.
공부 자체는 즐겁지만 시험은 괴롭다.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재미는 분명히 있는데, 그러한 즐거움이 목표로 했던 결과로 변한다는 보장은 없다. 게다가 시험 자체는 순간이지만 결과는 영원하다. 시험은 늘 긴장되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긴장을 회피하고 자신만의 기쁨을 즐기는 데만 공부의 목표를 둔다면 공부 귀신은 될 수 없다. 영업 사원이 판매 실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뽐내 듯, 수험생은 결국 시험 결과로 노력의 성공 여부를 입증해야 한다. ‘시험을 잘 보려면 공부를 잘해야 하는 것’보다 ‘공부를 잘하려면 시험을 잘 봐야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작가도 역시 냉정한 공부계의 현실을 직시한 듯하다. 시험 전략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한다. 기출문제 반복 풀이, 공부할 과목들의 적정 시간 배분, 그리고 반복 학습을 만족스러운 시험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기본적인 전략 일고 말한다. 그는 시험을 위한 간접(?)적인 요소도 체계적으로 관리할 것을 요구한다. 자신감을 높일 수 있도록 자기 암시를 반복하는 멘털 훈련과 장시간 머리 회전을 시킬 수 있는 신체 환경을 조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체력 증진을 소홀하게 해서는 안 될 부분이라고 했다.
사실, 글쓴이가 소개해 준 방법들이 참신하다고는 할 수 없다. 공부법을 주제로 하는 다른 책들과 겹치는 부분도 있다. 여러 사람이 공통으로 추천하는 방법은 정도(正道)에 이를 수 있는 정석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다만 학습자들이 방법을 실천하면서 느낄 수 있는 어려움에 관한 고민은 덜 된 것 같아 아쉬운 기분이다. 2000명의 공부 귀신들이 말해준 방법들은 대신 전달하는 방식이어서 그런지 실용적인 ‘꿀팁’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기회가 된다면 책에 소개된 방법들의 많은 부분을 직접 적용해본 내가 직접 독자에게 이야기를 건네 듯 생생한 공부 이야기를 서술해 보고 싶다.
* 도서 [책인싸]의 일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