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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유 Nov 20. 2023

어른이라고 모두 어른은 아니다

“자두 사줘 자두~~~~우!”

“지금 자두가 없어. 그냥 집에 가면 안돼?”

“자두~자두~~~~~우!”

자두철이 지났는데 여전히 자두 타령이다. 인생 40개월차 시은이에겐 통하지 않는다.

“알았어. 일단 마트에 가보자.”

“야호!”

마트 가자는 소리만 나오면 살아있는 활어가 따로 없는 아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입구 한 가운데 자두가 한 가득 쌓여 있다. 아니나다를까 빨갛고 탐스러운 자두가 아닌 푸르스름지 하고 군데군데 상처가 있는 못난이 자두들 뿐이다. 발길을 돌리려던 찰나, ‘S.A.L.E’ 이라는 글자가 시선을 잡아당긴다. SALE은 꺼진 불도 다시 보게 만드는 마법의 글자이다. 마지못해 응해주는 척 발걸음을 매대에 묶어 두고 못난이 중에 덜 못난이를 골라 보기로 마음먹었다.

매의 눈으로 매대 안의 자두들을 스캔하고 있는데 어딘가 안절부절해 보이는 눈빛의 아저씨가 내 옆으로 다가와 반대쪽을 응시하며 서 있다. 자연스럽게 아저씨의 눈길을 따라갔고, 반대편에는 세상의 모든 짜증과 불만을 다 가지고 있는 듯한 표정의 할머니가 있다. 다소 큰 키에 깡 마른 할머니는 자두를 하나, 둘 골라 집어 돌멩이 던지는 아이처럼 자두더미에 튕겨낸다.

‘아무리 못난이 자두라지만 그래도 파는 상품인데 저렇게 함부로 해도 되나?’

불안한 마음에 자두 보다는 할머니의 행동이 계속 신경 쓰였다. 매대 주위를 돌며 자두를 고르고 던지길 반복하던 할머니는 어느 새 내 근처까지 왔다. 나를 가운데 두고 할머니와 아저씨가 양쪽에 서 있는 상태. 아이와 나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만 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머니는 자두 고르기에 여념이 없다. 보통 옆에 아이가 있으면 어른이 조심할 법도 한데 불도저 마냥 아이를 밀어내신다. 자두를 대하는 태도나 아이를 대하는 태도나 참 한결 같은 분이시다.


자두와 사투하던 할머니는 마침내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는지 비닐봉지 한 묶음을 들어 올리며 응시하던 남자에게 명령하듯 말한다.

“가자.”

가뜩이나 떨이 급 자두라 구매가 내키지 않았는데 할머니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아 버려진 자두를 주섬주섬 주어 담는 내가 떨이급이 된 것 같아 사고 싶은 마음이 홀라당 없어졌다.

“시은아, 지금은 자두가 맛이 없는 때야. 우리 다른 맛있는 과일 찾아보자.”

“시러~ 자두. 자두~~~우!”

“그럼 다른 마트에 맛있는 자두가 있는지 가볼까?”

“다른 마아트? 쪼아.”

시은이가 떼를 쓰기 시작할 때는 일단 빠르게 그곳을 벗어나야 한다. 최대한 다른 곳으로 시선과 주의를 분산시켜 떼쓰기를 조기에 차단한다는 내 나름의 노하우다.




빠르게 마트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시은이를 안고 엘리베이터로 뛰어갔는데, 아까 자두 매대에서 봤던 할머니와 남자가 거기에 또 있는 것이 아닌가. 남자는 복숭아 박스와 자두 봉지를 두 손 가득 들고 있었고, 할머니는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다.

“엘리베이터 왜 이렇게 안 내려 온다니? 하아..다 올라가 있네?”

할머니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익숙한 듯 남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나, 둘 올라타면서 엘리베이터는 금세 사람들로 가득 찼다. 뜻하지 않게 할머니와 친밀한 사이처럼 붙어 섰다.


“카트 가지고 타자니까 너는 굳이 무겁게 복숭아 박스를 안고 타니?”

닫혀진 엘리베이터 안에서 큰 소리로 남자를 타박하는 할머니.

“엄마, 카트 가지고 타면 사람들이 못 타잖아요. 안 그래도 엘리베이터 오래 기다리는데.”

“무슨 상관이야. 못 타면 자기들이 알아서 다른 거 타겠지.”

순간 ‘헉’ 하는 탄식소리가 올라오는데 다행히 마스크 쓰고 있어 입 모양과 표정을 숨길 수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 얼굴로 눈길이 가는 것은 막지 못했고, 한동안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한결같이 자기만 생각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여기가 마트인지, 유치원 앞 놀이터인지 헷갈렸다.

돌아오는 내내 할머니의 말, 행동, 표정이 어른거렸다. 난 어렸을 때, 내가 스물 살이 넘고, 서른 살이 되고 마흔이 되면 엄청 큰 어른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보다 먼저 나이 들어가는 이들이라면 공자, 맹자는 아니더라도 ‘현자’ 정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구나. 나이가 들었지만, 나이만 먹어버린 어른을 보고 돌아오는 길은 내내 좀 개운치 못했다. 나는 저 할머니만큼 나이가 든다면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마흔을 지나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시간 지난다고 당연하게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른이라고 해서 모두가 감정을 태도로 만들지 않는 성숙함을 가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꼰대’라는 말이 썩 유쾌하지 않지만 실로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말로 가르치면 꼰대이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어른의 모습일테다. 예전에는 행동하는 어른이 많이 보였고, 어린 나는 그들의 행동을 슬그머니 따라해보는 것으로 조금씩 어른의 모습을 갖춰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 내 믿음은 조금씩 흐려지고 있다. 애 같은 어른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어른이’라는 말이 국어사전에 올라가 있을 정도로 아이 같은 어른들이 많아지는 세상에서 진짜 어른으로 늙고 싶은 소망을 가져본다. 누군가가 땀 흘려 기르고 옮겼을 자두를 소중히 여기는 어른, 엘리베이터에 한 사람이라도 더 태워 출발할 만한 마음의 여유를 가진 어른, 아무리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라도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할 줄 아는 어른 말이다.


그런 어른이 되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

주변인을 보며 배운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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