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은이는 인생 40개월 차에 가장 큰 위기를 맞이했다. 본격적인 배변훈련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팬티 입고 변기에 쉬 싸는 연습을 할 거야.
쉬 마려우면 엄마한테 먼저 말해줘.
말투만 친절하지 통보나 다름없다. 갑자기 팬티를 입고 쉬가 마려우면 변기에 싸라니! 시은이는 세상 종말을 맞이한 표정과 불안한 눈빛으로 엄마의 눈을 응시한다.
“우리 시은이, 할 수 있어!”
다짜고짜 할 수 있다고 엄마가 말하니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오줌보가 마음대로 쉽게 조절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놀이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샌가 불쑥 오줌이 나와 몸을 적신다. 매우 당황스럽고 불쾌한 기분이 들었는지 지금 시은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울어 버리기’ 뿐이다. 평소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자신감 있게 말하던 아이인데 속절없이 나오는 오줌발에 점점 의기소침해져 간다.
인생의 좌절감을 제대로 맛본 첫날이 지나고 배변훈련 둘째 날이 밝았다. 시은이는 밤 새 결심이라도 한 듯, 어제의 오명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말한다.
“엄마! 쉬 마려워요.”
“세상에! 하루 만에 쉬가 마려운 느낌을 알아챘구나? 아구 기특해라 내 새끼.”
기대와는 달리 오줌은 세상 밖으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배변 욕구와 배변에 대한 의지만 있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호기롭게 변기에 앉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이내 시무룩해진다.
“엄마 쉬 안 나와요.”
시은이는 마냥 변기에 앉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벌떡 일어나 놀이방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변기에 일어나 달려가다 요도 근육이 풀렸나 보다. 방바닥에 오줌 폭포를 개방해 버린다. 놀라고 당황한 시은이는 여전히 우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그렇게 놀이방 입구에는 개방된 폭포수를 닦느라 애먼 수건만 쌓여갔다.
“시은아, 혹시. 변기가 혹시 무서워? 엄마가 안아줄게. 엄마랑 같이 해보자.”
엄마는 세상 끝나는 날의 마지막 포옹처럼 변기에 앉은 시은이를 꼭 안아준다. 평소 겁이 많은 아이라 변기가 무서울 수도 있겠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의 이완과 요도 근육의 이완은 별개의 문제였다. 변기 위에서는 근육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변기 위에서 욕구를 풀지 못한 시은이는 결국 자신이 가장 안전하고 편하게 생각하는 존재를 외친다.
“기저귀! 기저귀 어디 있어?”
인간이 태어나 처음으로 자기 조절 능력을 배우는 과정이 배변 훈련임을 시은이를 보며 알아간다. 배변 욕구를 인지하고 난 뒤 때와 장소에 맞게 해소하는 것은 고도의 조절 능력이다. 그리고 이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이라는 연습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서툰 엄마는 마음만 먹는다면 기저귀쯤이야 바로 뗄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지금 나의 배변 조절 능력도 어릴 적 여러 번의 실수와 연습 끝에 만들어진 것임을 잊고 지낸 것이다.
살아가면서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다. 그중 하나가 어른이 되면 감정은 당연히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었다.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배변을 조절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소변, 대변 두 가지 가리는 것도 이렇게 많은 시행착오와 연습이 필요한데 감정은 하물며 수십, 수백 가지이다.
특히 배변 훈련은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방법과 매우 비슷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오늘도 아이에게 화를 냈다.’며 자책과 반성이었다. 마치 시은이가 변기에 해소하지 못하고 옷에 그대로 배설물을 쏟아 냈을 때 느꼈던 괴로움과 같다. 배설물이 참는다고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부정적인 감정도 참는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시원하게 흘려보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매번 때와 장소가 적절해야 하지 않다는 점이다.
시은이가 배설 욕구를 참고 참다 해소하는 곳은 결국 가장 편하고 안전하게 여기는 기저귀였다. 아직 변기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익숙하다는 이유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과 아이에게 함부로 화를 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생 기저귀를 차고 살아갈 수 없듯이 언제까지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화를 낼 수 없는 노릇이다.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 배변도 감정 조절도 결국 스스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기저귀는 쓰레기 통에 버리면 그만이지만 아이와 가족은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존재이니까.
똥이랑 화는 참으면 병 된다. 참지 말고 적절한 시기와 장소에서 푸는 방법을 연습해야 깔끔하게 감정 기저귀와 작별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