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꽉 쥐어도 점차 흔적도 없이 빠져가나는 손바닥 속의 모래알처럼 여름이 흘러가고 있다. 아쉬운 마음에 여름의 끝을 한번 더 쥐어보고자 오게 된 제주에서 이번에는 새로운 공간에 찾아가 보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유리된 낯선 공간을 찾아가기에는 에너지가 부족할 때도 있는 법이라, 이런 공간은 이왕 여행온 김에 들리기에 딱 좋다! 모든 공간에는 그 공간을 만들어논 사람들의 기운이 존재하고, 그 공간 속에 들어서는 것 만으로도 여행의 재미을 더해주기도 하니까.
1) 바 현존
앞에 바가 붙기는 하는데 독서인들이 들릴 만한 곳이다. 제주 공항에서 가까운 도두봉 쪽에 위치한 작은 호텔 1층 바에서 저녁마다 북 큐레이션이 열린다. 저녁 7시면 바 앞 독서대에는 그날 참석한 사람들의 이름이 포스트잇이 붙여진 책들이 놓여져 있다. 신청할 때 간단하게 자신의 현재 고민과 추천받고 싶은 책의 종류에 대해서 적어 제출하는데, 이를 바탕으로 모두에게 맞는 책 처방이 내려진다.
책과 함께 바 현존에 입장하면 각 사람마다 자리가 있고, 적당히 분위기 있는 조도의 식사 공간이 등장한다. 이제부터 약 한시간 반 동안 순서대로 나오는 코스 요리를 곁들이며 독서를 하게 된다. 각 코스마다 맞춤 와인도 준비되어 있다. 추천받은 책마다 큐레이터가 그어놓은 밑줄이 한가득있고, 한 권을 다 읽어내기엔 부족한 시간이지만 추천의 이유를 찾아가기에는 충분하다. 나와 함께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 중에는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린 사람도 있었다.
큐래이션된 책에 대해 흥미를 찾아갈 때쯤 큐레이터의 진행이 시작된다. 각자 상황에 대한 설명, 해당 책을 추천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의 현재와 과거,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을 나누다 보면 즉석에서 큐레이션은 계속 된다. 끝나고 나면 한껏 부른 배와 함께 읽을 책도 한가득 쌓여가고, 몸도 마음도 충만해진 채로 나오게 된다.
2) 한주훈 요가원
이곳은 이미 너무 유명해진 하타 요기니들의 성지다. 평일에는 세 번, 주말에는 아침 9시면 요가 수련이 시작된다. 이효리가 제주도에서 매일 수련한 곳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곳에 올 때 매트는 가져올 필요가 없는데, 2층 요가원에 들어서면 온 바닥에 파란색 매트가 깔려 있다. 적당히 푹신하고, 밀리지 않아 요가 동작들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10분 전부터 공간의 문이 열리는데, 요가원을 향해 걸어가다 보면 각종 방향에서 요기니들이 삼삼오오 등장한다. 다들 재야의 고수같은 면모를 뽐내서 여전히 초심자 수준인 몸뚱아리로 들어서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선생님께서 각자의 수준에 따라 티칭을 해주신다. 고수, 숙련자, 중수, 초보 요기니 등 해당 동작이 안되면 어떤 동작을 하고 있으면 될지 알려주시니 가능한 만큼만 동작을 따라하면 된다.
이곳에서 티칭은 핸즈온 없이 진행되기에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면서, 주변 고수들의 동작을 눈여겨 보면 된다. 처음 수강한 날은 시작부터 냅다 머리서기 자세부터 부동 15분 가량 지속했다.(…) 팔과 뒤통수는 바닥에 고정된 상태에서 하체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다양한 변형 동작이 끝도 없이 지속된다.(…) 안될때는 그 전 동작으로 돌아가 무림고수들의 완벽한 자세를 감탄하며 지켜보면 된다.
사바아사나 20여분까지 약 3시간에 걸친 수련이 끝나면 종이봉투에 수련비용을 5만원씩 담아 전달드리고, (계좌이체 가능) 둥그렇게 모여 앉는다. 보이차와 함께 차담을 나누고 나면, 선생님께서 식사 자리를 마련하시거 함께 밥을 먹고 나오면 수련은 끝이 난다. 일요일 수업은 9시에 시작해 밥까지 먹고 나오니 오후 두시반 가량이었다.
모든 공간에는 그 공간을 만들어온 사람들의 기운이 존재한다. 가구의 배치에서 부터, 놓인 물건들의 질감과 컬러까지, 내 마음에 쏙 드는 공간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이제 새롭게 충전된 에너지로 일상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이제 이번 여름을 보내줄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