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살고 싶은 곳을 찾고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자의로 있고 싶은 곳에서 지냈던 적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부모님의 가족 계획 하에서 움직이거나 혹은 학교나 회사의 위치에 따라 생활반경이 바뀌다 보니 ‘있고 싶은 곳’에 있었다니 보다는 ‘있어야 하는 곳’에 있어 왔던 셈이다.
새롭게 거취를 정한다면 이번에는 진짜 좋아하는 곳에서 지내야 하지 않을까 하여 요새는 내가 어떤 곳에서 살고 싶은지 생각해보고 있다. 우선 동네에 걸어다닐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높은 언덕이든 평지이든 상관없지만 새벽이나 밤 늦게라도 잠깐 나와서 걷거나 뛸 때 무섭지 않은 안전한 산책로가 필요할 것 같다.
또 도서관과 요가원, 그리고 수영장이 걸어갈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 좋겠다. 3주에 한번은 들러서 읽고 싶은 책들을 잔뜩 빌려 품안에 품고 나오는 기쁨을 포기할 수 없다. 우연히 제목만 보고 이끌려 빌린 책이 보물일지 꽝일지 궁금해하며 읽어보는 과정을 반복하고 싶다. 그렇게 수백번 반복해서 우연히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맘껏 누리기 위해서는 도서관이 필요하다.
요가원이나 수영장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한시간 걸리는 거리의 유명한 요가원을 다닌 적이 있다. 해외에서도 유명한 요가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먼 거리를 불사하고 열심히 다녔는데 결국 지치고 말았다. 운동하고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터덜터덜 옮기며 걸어서 집으로 오다 또 쉬면서 붕어빵이나 떡볶이도 사먹는 일상을 위해서는 걸어다닐 수 있는 운동센터가 필요하다.
그리고 뾰족 솟은 빌딩이 넘 많기보다는 적당히 하늘이 잘 보이면 좋겠다. 너무 직주 근접이 아니어도 되고, 도심지가 아니어도 된다. 핫플로 유명한 거리가 근처에 없어도 된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 위해 좀 걸어야 해도 괜찮다. 걸어가면서 동네에 소소한 가게들을 구경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매일 걷는 길에 자주 마주치는 누군가가 있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