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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Aug 12. 2024

사람 싫다 근데 좋다

요새 날씨가 더우니 불쾌함을 쉽게 느낀다. 유독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면 서울에서는 사람들과 이렇게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구나 싶은 마음을 느낄 때가 많다. 내 몸이 처음 보는 사람들과 너무 붙어 있다. 민소매에 반바지 차림으로 옆사람과 맨살을 맞대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몸을 웅크리게 된다. 그런데 나의 웅크림 만큼 빈 공간을 느낀 옆사람이 몸을 펴내 다시금 살이 맞닿게 되면 그렇게 짜증이 난다. 아, 쫌!


회사에서도 시시때때로 참을 인을 마음에 새긴다. 아예 사람에 대한 기대를 없앨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게 잘 안된다. (점심을 맛있게 먹었거나, 누가 커피를 쏴 기분이 좋았거나 여하튼 내가 조정할 수 없는 어떤 변수에 의해) 기분이 좋은 직장 동료가 순간 내보인 호의와 친절에 마음을 열고 기대했다(역시 사람 좋다 우리 모두 노예 친구), 또다시 마음을 다칠 때면 생각한다. 아 역시, 이 사람 진짜 싫다!(친구는 무슨 친구) 오만 인간 군상이 모여 있는 회사에서는 유독 기대와 실망이 빠른 템포로 반복한다.


그럴 때면 역시나 사람이 없는 곳으로 잠깐 몸과 마음을 피신하는 일이 최고다. 그런데 요즘에는 어딜 가도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또 공원이나 야외로 나가기에는 너무너무 덥다. 고즈넉한 절에서 템플스테이라도 하며 경건하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지금 당장 할 마음을 달랠 즉효약은 될 수 없어 아쉽다. 빠르게 항상심을 회복하기에는 사실 운동이 최고인데, 아무리 명약이어도 복용을 남용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럴 때, 가장 빠르게 사람에게서 벗어나 마음을 달랠 나만의 처방전은 1) 도서관 종합자료실에 2) 대형 서점에 잠깐 피신해 가는 것이다. 이곳에도 물론 사람들은 많지만, 그럼에도 나의 주의가 사람에게서 벗어나 공간을 가득 채운 책으로 좀 분산될 수 있다. 사람의 밀도가 낮은 평일 낮의 동네 작은 도서관 종합자료실이 베스트인데, 인적이 드문 서가 사이를 돌아다닐 때면 마음이 좀 안정됨을 느낀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데(좋아 드디어 사람과 거리두기),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싶은 누군가의 말들로 가득하다.(떨어져 있지만 사람과 단절되고 싶지 않은, 마음 맞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 읽다가 성정이 안 맞는 책은 조심스레 내려놓고 또 다른 책으로 넘어간다. 이곳에는 내가 평생 읽어도 읽지 못할 수많은 책들로 가득하니까.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고 몇 권의 책을 장바구니에 추가하거나 직접 대여하고 나온다.


잠깐의 거리 두기를 끝내고 나오면 어느새 사람에 대한 실망감을 묘하게 해소된다. 그래 나에게 맞는 책이 따로 있는 것처럼 안 맞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법이지. 그리고 세상에는 책만큼 다양한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지금 내 품 안에는 내 마음과 똑 닮은 수많은 책들이 한가득 안겨 있으니 아주 든든하다. 책 속 사람들의 이야기에 빠져 있다 보면 생채기난 마음도 금방 단단해져서 또다시 누군가를 마주할 용기가 생긴다는 것을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으니 말이다. 역시 (책이랑 운동 그리고) 사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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