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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려놓기 Aug 04. 2016

죄수들의 땅

시드니 2015년 8월 30일

11척의 배로 호주에 도착한 천여 명의 사람들 중 3/4이 죄수였다.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민족들의 다른 문화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5만~6만 년 전에 아시아로부터 원주민인 애버리진이 호주에 건너왔다. 유럽인 중에서 처음 호주를 발견한 것은 영국이 아니라 네덜란드였다. 1606년 네덜란드인이 유럽인 최초로 호주 땅에 발을 디뎠고 1770년 제임스 쿡이 동해안 일부를 조사한 후 뉴사우스웨일스라고 불렀다. 하지만 호주가 이렇게 큰 땅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네덜란드인들은 자신의 땅으로 선포하지 않았다.


미국이 독립하자 죄수를 보낼 곳이 없어진 영국은 뉴사우스 웨일스를 떠올렸다. 독립전쟁이 끝나고 10년 후에 물자와 간수와 죄수들을 실은 11척의 배가 호주를 향해 출발했다. 호주가 이제 영국의 감옥이 된 것이다.  아무도 호주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곳은 도시도, 도로도, 배도 없는 곳이었다. 


11척의 배로 호주에 도착한 천여 명의 사람들 중 3/4이 죄수였다. 대부분의 죄수들은 도시 사람으로 가축을 기르거나 농작물을 경작하는 데는 문외한이었다. 그들은 집을 지을 나무도 베지 못했다. 그들이 만든 도구로는 호주의 두껍고 단단한 나무를 베지 못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나 그들은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죄수와 식량을 실은 영국 배가 다시 왔다. 그 배에 실린 씨앗으로 다시 농사를 시작했다. 늘 굶주린 채로 중노동을 해야 했지만 죄수들은 영국보다 살기 좋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조그만 땅 하나 없는 거지신세였지만 이 곳은 열심히 하면 자기 땅을 가질 수 있었다.


죄수들이 도착한 지 4년 후에는 이주민들이 오기 시작했다. 가난을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호주로 몰려왔다. 형기를 마친 죄수들 중에 그곳에서 땅을 개간하며 살기로 한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땅을 사지 않고 아무 데나 집을 짓고 그곳을 자기 땅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양모를 영국으로 수출하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후 80년 동안 16만 명의 죄수들과 수많은 자유 이주민들이 호주에 들어왔다. 이 것이 호주의 시작이다. 그러나 영국인들의 생활이 나아지는 동안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에서 밀려났다. 최초의 죄수들이 도착했을 때  30만 명이었던 애버리진이 영국이 호주가 자기 것이라고 선포했을 때에는 8만 명도 안 되는 원주민만이 남아있었다.


시드니 사람들은 스스로를 ‘시드니 사이더(Sydneysider)’라고 부른다. ‘뉴요커’나 ‘파리지앵’과는 어감이 다르다. ‘시드니 사이더’는 주류에서 소외됐다는 의미의 ‘아웃사이더’에서 빌려온 개념이다. 


1788년 시드니에 상륙한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죄수와 물먹은 관리, 실패한 장사꾼 같은 이른바 ‘언더독(underdog)’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국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열등감에서 ‘시드니 사이더’라는 별칭을 만들어 냈다. 


시드니로 유배된 죄수들 가운데는 노동운동가 부류도 많았다. 산업혁명이 시작됐던 영국에서 노동자 계층이 부상하며 자본가와 맞서고 있었다. 자본가들은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다’며 지배계급에 도전하는 이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정부와 자본가는 이런 노동운동가들에게 20년, 30년의 장기형을 선고해 호주로 송출했다.

 

그들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미지의 땅에 모든 인간이 평등한 노동자 천국을 만들자”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시드니에서 시작된 인류 평등주의(egalitarianism)는 그대로 호주의 건국이념이 되었고, 이 정신을 지금도 시드니 사이더들은 기억하고 있다.


영국 연방에 속하는 호주의 정식 명칭은 오스트레일리아 연방(Commonwealth of Australia)이다. 내륙 지역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거칠고 메마른 땅이거나 사막이어서 사람들 대부분은 해안가에 모여 산다. 국토의 5%에만 사람이 거주하고 나머지 95%는 아직 동물들의 땅이다. 한반도 78배의 영토에 2천6백만 인구가 사는 나라이다. 


사람이 귀하고 인건비가 비쌀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비싼 인건비 덕분인지 아니면 영국을 본뜬 복지 정책 때문인지 전 세계 어디에서든 흔히 보았던 걸인들이 시드니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오래 동안 지속되어온 백인 우월주의도 귀한 사람 가치 때문에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세계 3대 미항의 하나인 시드니항은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오세아니아 최대 도시이다. 공원으로 가득한 도심과 시드니항을 잇는 워킹 투어 코스를 걷노라면 자연스럽게 현대미술 박물관, 뉴사우스웨일스 미술관 등으로 향하게 된다. 페리를 타고 캥거루를 볼 수 있는 동물원과 부드러운 모래밭과 서핑을 즐기는 본다이 비치도 가 보야하고 남한 면적의 1/3인 블루 마운틴까지 가려면 일주일도 바쁜 일정이 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공원에서의 망중한을 즐기기는 것만으로도 자랑거리가 될만한 그런 곳이다. 시드니는 호주에서도 이주민의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이다. 시드니 인구의 1/3이 외국 출신이고 50만 명이 아시아 출생이다. 다양한 인간들이 아름다운 바다와 공원 속에서 부대끼며 더불어 살아가는 도시이다. 뉴욕이나 런던 같기도 하고, LA나 홍콩 같기도 하지만 세계 어느 도시와도 다를 색채를 갖고 있는 곳이다. 막연한 좋은 느낌으로 왔다가 좋은 기분으로 떠난다.


오페라하우스 - 죄수들이 처음 도착한 장소에 세워졌다.
하버 브릿지
서큘러 키
시드니 최고의 뷰라는 맥과이어 부인의 벤치에서 보는 풍경들


이런 공원들이 좋다. 보타닉 가든
하이드 파크
세인트메리 대성당
뉴사우스웨일스 미술관 - 무료로 개방되어 있다.
천문대에서의 석양
도심 한복판의 악사. 전자 바이올린 연주가 좋았다.
퀸 빅토리아 빌딩
퀸 빅토리아 빌딩은 쇼핑몰인데 주변의 건물들로 쇼핑몰들이 계속 지어져 있다.
타롱가 동물원 - 형 왔는데 인사도 안 하고 이 넘들 잔다.
코알라의 포즈가...
타롱가 동물원은 호주의 다양한 희귀 동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개구리에게 벌레 한 마리씩 입에 넣어 주는 정성
본다이 비치 - 부드러운 모래와 서핑을 즐기는 시드니 최고 인기의 해변이다.
갭팍 - 빠삐용이 뛰어 내렸던 절벽
왓슨스 베이
맨리 비치
블루 마운틴
남한 1/3 규모의 산이다.
세자매봉
블루마운틴 내 석회암 동굴 - 죄수들이 달아나 숨어 살던 곳이라는데 숨고 쫒고 하며 동굴 내부 탐험이 되었다 한다.
코리아 타운에는 모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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