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려놓기 Aug 14. 2016

빨간 셔츠, 노란 셔츠

치앙마이 2015년 10월 1일 

'북방의 장미'라는 화려한 별칭을 가진 곳

성곽을 경계로 과거의 문명과 현재가 구분된다.


다시 방콕을 거쳐 치앙마이에 왔다. 주변의 권유가 많아 오고 싶던 곳이지만 네팔을 빨리 가고 싶은 욕심에 그냥 지나쳤던 곳이다. 고도 300m 정도의 작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 지역이다. 방콕보다는 위쪽 지방이지만 한국보다는 한참 아래의 위도에 위치해서 이곳도 역시 덥다.  


란나타이 왕국에서 13세기에 건설한 여러 도시 가운데 하나로 치앙라이에 이어 란나타이의 2번째 수도가 되었다. 16세기까지 번창하였지만 치앙마이 분지의 풍부한 농업 생산력 때문에 17세기부터 타이와 미얀마의 분쟁의 불씨가 되었다. 19세기에 미얀마가 영국군에 패배한 후 타이의 땅이 되었다.  


치앙마이(Chiang Mai)의 지명은 '새로운 성곽 도시'라는 뜻이지만 '북방의 장미'라는 화려한 별칭을 가지고 있다. 옛 왕조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문화적 가치는 방콕의 화려함을 넘어선다. 사원이 가득한 구시가지는 아직도 성곽과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 사각형의 성곽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쁘라뚜'라는 5개의 문이 있다. 쁘라뚜와 해자가 과거의 문명과 현재를 구분하는 경계선을 만들고 있다. 


구시가 안은 크고 작은 사원들이 가득하다. 북부지방 최고 규모와 섬세함을 자랑하는 왓 프라싱과 높이 42m의 벽돌 불탑이 놓여있는 왓 체디루앙이 여행객의 눈길을 끈다. 하지만 구시가지는 걸어서 모두 돌아볼 수 있는 소담스러운 풍경들이 좋다. 그냥 꽃과 스님, 광주리 하나 머리에 이고 지나는 아낙들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성곽을 나서면 다른 세상이다. 구시가지 밖은 번화함이 곳곳에서 보인다. 태국어와 영어 간판이 뒤섞인 골목들은 여행객들이 넘쳐난다. 방콕의 카오산 로드와 비슷하지만 그곳보다는 조용한 분위기이다. 태국 제2의 도시지만 방콕에서 흔하던 버스나 택시도 드물다. 트럭을 개조한 썽테우와 툭툭이 이곳의 교통수단이다. 물론 현지인들의 주된 교통수단은 오토바이이다. 


태국을 오면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내가 태국인이라면 어떤 색의 셔츠를 입을까?'이다. 치앙마이는 태국 제2의 도시이자 탁신의 고향이다. 이 곳에 오니 조금은 생각을 해야 했다. 탁신 지지파의 빨간 셔츠는 좌파를 지향하는 색이 아니다. 그냥 노란색으로 대표되는 기존 권력과의 대비일 뿐이다.


레드셔츠는 탁신 전 총리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농민과 도시 빈민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2006년 탁신 총리의 실각 당시에 군부의  현실 정치 개입 반대한의 뜻으로 빨간색 셔츠를 입었다. 반면 옐로셔츠는 국왕을 지지하기 때문에 왕을 상징하는 노란색 셔츠를 입는다. 도시 중산층과 기존 엘리트 등 기득권층인데 탁신 전 총리의 부패 스캔들에 맞서 퇴진 운동을 벌였다.


탁신은 의료혜택 확대와 무상교육 같은 정책을 펼쳐 빈곤한 동북부를 중심으로 지지층을 형성했다. 하지만 오랜 집권세력인 군부와 방콕 중산층과는 대립했다. 친탁신과 반탁신 양 진영의 갈등은 지역감정, 계급갈등 등 복합적인 사회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지만 어쩌면 인기를 위한 정책이었다. 대부분의 정책은 신자유주의에 기반하고 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치앙마이의 경찰로 시작해 부패를 통해 재벌 총수가 되었고 그 돈을 이용해 권력을 잡은 인물이다. 집권 후에도 계속된 부패로 자신과 친인척의 재산을 늘려갔다.


하지만 제한적으로나마 민주주의를 경험하게 하고 포퓰리즘이라지만 가난한 이를 위한 정책을 실행한 건 탁신 뿐이었다. 탁신의 부패를 공격하는 기존 권력도 철저히 자신들만을 위한 정치를 하였다. 태국은 탁신파가 권력을 잡은 후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나고 민간 이양을 위한 선거를 하면 다시 탁신파가 권력을 잡는 반복이 십수 년째 계속되고 있다.


선거는 어쩌면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태국인이라 해도 레드셔츠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나 자신이 1%가 아닌 99%에 속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더 넓혀 10 vs 90, 20 vs 80으로 구분한다고 해도 내가 속하는 곳이 상류는 아닌 것 같다. 


정의와 부패가 공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 태국인의 선택은 제한되어 있다. 세상의 변화가 한순간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무작정 손을 놓고 기다리는 것도 옳은 방법은 아니다. 어떤 새로운 능력자가 나타나 모두를 구원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태국인들이 스스로의 인식을 바꾸며 세상을 바꾸어 나갈 것이다. 


신구 문명을 구분하는 성곽
무너지기 전에는 60m가 넘었다는 왓 체디루앙의 불탑
왓 체디루앙
사원의 처마들이 예쁘다
금칠을 줄였으면 더 좋았을 듯하다.
아침 공양 후 스님들
치망마이 전경
고산족 아이
치앙마이 대학
왓 프라싱
태국에서 가장 중요한 불상 - 송끄란 축제 대열의 가장 선두에 위치한다.
밀랍으로 만든 고승들의 등신불
치앙마이 산 커피도 유명하다,
6시 되니 국가가 울리고 모두가 멈춰 선다. 우리의 과거도 그러했다.
밤이 되면 구시가의 메인 도로 전체가 야시장이 된다.
꽃과 스님, 여자 - 이런 것이 동남아의 모습은 아닌지? 음식도...
스님의 권유로 새들의 아침 공양을 내가 대신했다.
국왕 사진이 걸린 문 - 국민들의 국왕에 대한 존경심은 높다
한국인들에 의해, 아니면 한국인 때문에 들여왔을 듯한 고급 술집도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커피는 누군가의 피를 기억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