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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음 Dec 15. 2022

라자뉴

상념의 레이어드

  프랑스에서 빠뜨라고 통칭하는 파스타 메뉴는 삶기만 하면 되는, 라면 같은 존재였다. 내겐.

  요리라고 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간편한 인스턴트와 제대로 각 잡고 만드는 요리 사이의 그 어디쯤에 파스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영향은 프랑스 친구들의 식생활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그들의 식사에 자주 등장하던 파스타는 눈대중으로 대충 가늠된 양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삶고 나서 그 위에 오일이나 버터, 치즈, 소금을 휘휘 뿌려 먹다가 남으면 통에 담아 냉동실로 들어가는, 만들기도 먹는데도 별 부담이 없는 재료였다.

  알단테라고 부르는 <익힘의 정도>를 가리키는 단어는 요리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단어였다. 

  그들은 취향에 맞게 대충 삶았다. 

  하긴 뭐, 알단테라는 기준으로 익혔다한들 그들의 식사 시간을 생각하면 먹을 즈음에는 푹 퍼진 파스타를 먹을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요리의 규칙과 방식에 대한 엄격함은 오히려 외부에서 더욱 강하게 주장하는 경향이 있는 걸 알지 않나.

 

  아무튼 파스타는 요리가 아니었다.

  요리가 아니므로 자주 즐기지도 않았다. 게다가 탄수화물을 극도로 조심하는 사람으로서 파스타는 제2의 경계대상이었다. 

  아침마다 줄 서서 사 오는 따끈따끈, 바삭하고, 쫀득한 바게트가 첫 번째 경계대상이었고.


  하지만 파스타 중에서 예외가 있었다.

  라자뉴 또는 라자냐라고 부르는 메뉴다.

  파스타 중에서 가장 넓은 표면적을 가지고 있는 라자뉴는 다른 파스타와는 달리 삶은 상태만으로는 결코 요리가 되지 못한다.

  건축에서 건물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재료이지만 다른 재료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형태를 만들 수 없는 존재와 비슷하다고 할까.

  라자뉴는 삶고 나서 완성된 메뉴를 위한 과정은 제대로 된 요리만큼이나 시간과 노동력을 요구한다.


  라자뉴를 만들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파스타 판매대를 기웃거릴 것이 아니라 정육코너로 먼저 가야 한다. 기름기 적고 질 좋은 파쇄육을 구입하는 것이 라자뉴를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순서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토마토와 토마토 페이스트를 구입한다. 토마토는 잘 익은 빨간 토마토를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양파, 당근, 셀러리를 구입한다. 모두 잘게 다져질 재료라 모양과 크기는 상관없다. 그러니 봉지를 들고 이리 보고 저리보고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그 후 에멘탈 또는 그뤼에르 같은 하드 계열의 프랑스 치즈를 구입한다. 역시나 그레이터로 갈아야 할 재료다. 

  마지막으로 파스타 코너에 들어서서 고민 없이 라자뉴라는 이름의 넓적한 녀석을 고르면 된다.


  장을 다 봤다면 재료들을 식탁 위에 올려놓자.

  제일 먼저 해야 할 메뉴는 볼로네제 소스다.  

  볼로네제 소스는 만들어 놓으면 사통팔달, 여기저기 필요한 아이템이다. 코티지 파이, 볼로네제 파스타, 미트볼 파스타, 라자뉴, 다양한 재료의 그라탕으로 활용 가능한 팔색조의 재료다. 일단 많이 만들어 놓고 냉동실에 소포장하면 언제든 특별한 식사 준비에 두렵지 않다.

  소스를 완성했다면 라자뉴 완성은 거의 다다른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넓적한 파스타를 삶는다. 단, 그 넓적한 파스타를 삶는 데에는 약간의 요령이 필요하다. 그들이 물속에서 달라붙기 시작하면 켜켜이 아름답게 퇴적된 라자뉴는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물에 소금과 오일을 넣고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떼어내며 익혀야 한다. 때로는 뜨거운 물에 불려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런 파스타는 포장 표면에 rapid라는 표현이 되어있다. 빠르고 간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라탕 그릇에 바닥에 버터나 오일을 깔고 소스, 파스타를 번갈아 세팅한다. 

  맨 위에 에멘탈 또는 그뤼에르, 꽁떼 같은 단단한 치즈를 곱지 않게 갈아 올린다.

  오븐에 구우면 완성된다.


  라자뉴 요리의 백미는 소스와 파스타의 레이어드를 감상하는 즐거움이다.

  접시에 놓인 단면은 만든 사람에게는 하나의 건축물을 성공시킨 듯한 만족감과 요리를 기다리던 사람에게는 입 안으로 넣기에는 조금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다.

  소스와 파스타의 반복되는 퇴적층이 만들어내는 맛의 조합은 일상의 상념과 한숨을 잠시 잊게 만든다. 담담하게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일상의 소소한 슬픔과 기쁨들이 번갈아가며 쌓여 하루의 일상을 만들어 내듯 그렇게 말이다.


<만드는 법>

1. 고기는 미리 후추와 소금, 레드와인을 넣어 숙성시킨다.

2. 팬에 버터나 오일을 두르고 고기를 볶는다. 

3. 다진 채소를 넣고 볶는다.

4.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어 볶는다. 

5. 레드와인, 소금, 후추, 부케드가흐니(허브묶음)를 넣고 끓인다.

6. 수분을 날려 없앤다.

 그 다음은 당신의 레이어드를 만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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