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를e Aug 16. 2024

슬기로운 병원생활 (feat, 간병의 기술 1)

다섯 번째 효도라면

내 특장점 중에 하나는 빠른 적응력이다.

이틀간 엄마를 간병하면서 직관적으로 파악한 게 있다.

 

1. 의사 선생님은 만나기 힘들다.

2. 간호사 선생님은 필요한 시간에만 맞춰오신다. (환자 입장에서는)

3. (병원생활의 대부분인) 간병은 사실상 환자 가족 혹은 간병인의 몫이다.

   그리고, 나는 간병에 크게 자질이 없어 보인다.


그때, 일반병실에 내려오자마자 들었던 간호사 선생님의 말이 다시 스쳐갔다.


간병인 있으셔야 해요! 가족이 못하실 텐데 (뇌질환 환자는)



병원에서 나눠준 간병인 협회에 전화를 했다.

말이 협회지 그냥 그 병원에 들어와 있는 간병인 회사? 에 연결을 해주는 곳 (혹은 사람).

문의를 드렸더니,

간병비는 하루 7~9만 원.(그나마도 당시 가격이고, 요즘은 12~13만 원)

간병인 식대는 간병인과 협의.(드려야 하는 거군)


네이버 카페 '뇌질환 환자모임'에서는 간병인에 대한 각종 글이 올라와 있었다.

간병비 시세. 대부분 조선족 간병인 분들이라는 것. 그리고, 아쉬운(욕;;) 후기들.

가족 입장에서는 간병인이 마뜩지 않다. 더구나, 비싼 간병비를 생각하면.


하지만,

나는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에 파악했다.

간병 이틀만 해보면 안다.

비싸지 않다.(물론, 보험이 되면 좋겠다.)

지금 필요한 건 (가능한) 최고를 모시는 것.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마침 간병인 분들이 모두 병실을 비우고, 보호자들만 남았다.

진실의 시간이 온 거다. 

간병인들과 함께 있을 때는 서로 선을 지키며 적당한 말만 한다.

하지만, 우리끼리(보호자끼리) 있을 때는 진실이 나온다.

병원 불만, 선생님들 뒷 담화 그리고 간병인 찐 후기


스스로 일어나 앉아 있을 수 있는 할머니의 남편분이 너털 웃음을 지으며

"(실세의 침상을 가리키며) 저분으로 해요. 박사야 박사."


뒤이어 오른팔만 자유롭게 움직이시는 할머니의 가족도

"진짜. 우리도 간병인 쓰면 저분으로 할 낀데."


살리려면, 최고가 필요했다.



그 뒤로 나는 실세를 조금 더 자세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1. 실세는 2시간 이상 자지 않는다.

    대형 병원은 (개인화되지 않은) 시스템이다. 시간마다, 주기적으로 할 일들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보호자는 길게 잘 수가 없다.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사람인데.

    실세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 같았다.

    잘 때 자고, 할 때 한다. 마치, 항상 깨어있는 것 같다.  

    

2. 한중 양국 간병인이 실세 앞에서는 꼬리를 내린다.

    이 병원에서는 크게 두 패로 간병인이 나뉜다.

    한국인 간병인 (대부분 60대 이상의 고령들) / 조선족 간병인 (상대적으로 젊다.)

    패가 나뉜다는 건 작용과 반작용이 존재한다는 것. 주로, 반작용.

    그런데, 실세 앞에서는 모두 순한 양이된다.

    한국인 간병인들은 실세를 '언니'로 통칭한다.

    조선족 간병인들도 따로 부르진 않지만 실세에게는 꼬박 인사를 한다. (과거 히스토리가 있으리라...)


3. 간호사 선생님들도 실세에게는 딱히 잔소리나 주문을 하지 않는다.

   간호사 선생님들은 주로 간병인에게 업무 지시기를 한다. 소변, 식사량, 투약사항 체크 등등

   일반적으로는 간호사들이 간병인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세는, 이미 다 되어있다. 아니, 앞서간다.

     "소변량은 00이고, 식사는 했고,  근데 약은 못 삼켜. 가루로 줘. 석션은 내일이면 그만해도 되겠어~"

     "네네, 그렇게 이야기드릴게요~'


4. 마지막으로, 가끔 의사 선생님들도 인사를 한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이 병원 외과 과장 인턴 때부터 간병을 했다는 소문이 있다.

    (찾은 것 같다! 최고!)



간병의 기술 1_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빌릴 수 있는 '힘'을 파악하는 것.



간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와 24시간을 보낼 (진짜) 보호자 역할이다.

(막상 해보니 나는 아직 능력이 모자랐고, 진짜 힘이 필요했다.)

다행스럽게도. 최고가 눈앞에 있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나는 실세를 따라다녔다.

눈치를 보다가 슬쩍 이야기를 건넸다.


"저, 저기 혹시, 저희 어머니 간병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 안 그래도 지금 보는 환자가 이틀 뒤면 전원이라 잠깐 쉬려고는 했는데..."


"그럼,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간병비는 어느 정도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속으로는, 제가 업계 최고 비용으로 모시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선배님, 아니 선생님 제발!!! 우리 엄마 좀!)"


"그래요. 안 그래도 아들이 잠도 안 자고 엄마 간병하는 게 딱하기도 하고, 그래서, 아이고 아들을 잘 키웠어 엄마가. 요즘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없어."


아, 내가 관찰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했지만,

나도 실세에게 관찰당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그의 기준에 합격ㅠ


그렇다. 간병인도 환자를 본다. 가족을 본다.

내가 있는 환자인지. 가족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특히나 업계 최고 ( 최고령_엄마보다 나이가 많으셨다. 70대 중반 / 최고 기술자 )는 더더욱 그렇겠다.



오동통한 내 너구리. 오늘은 너다!


엄마는 대부분 시간 잠을 잔다.

2달의 중환자실 생활동안 뼈만 앙상하게 남았으니

그냥 누워서 독한 약들을 견디는 것 만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엄마가 아주 미세한 회복을 하는 동안

나도 여전히 실세에 (관찰과) 교육아래 하루를 보내며 미세하게 성장했다.  

물론, 가장 큰 수확은 '실세'(간병인)을 모신 것.


오늘은 큰 수확에 맞게

'오동통한 내 너구리!'가 떠오르는 라면을 먹어야겠다.

다시마가 2개 들어있으려나!






작가의 이전글 패잔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