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메인스트림의 감독은 아니지만, 전작들의 인상이 너무나 강렬해서 잊을 수 없는 감독이 있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그리고 <세일즈 맨>은 내가 그 해 본 영화 중 한 손에 꼽을 정도의 수작이었다. 파라디 감독의 저 두 작품은, 영화의 서사가 겉으로 보여주는 것과는 따로 또 같이 같은 느낌의 무언가가 항상 흐르고 있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영화 저변에 깔려있는 '인간 심리'에 대한 치밀함이 돋보이는 작품들이었다. 서아시아 영화가 전혀 익숙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동안 자연스럽게 영화에 스며들고 따라가게 되었다. 이 감독은 어떤 두 가지의 서사, 혹은 어떤 두 가지의 흐름을 멀티로 다룰 줄 아는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아는 비밀>은 이처럼 파라디 감독에 대한 기대가 이미 충만한 상태에서 접하게 되었다. 이전보다 더 스릴 넘치는 상황이 준비되었고, 출연하는 배우들 역시도 이런 기대에 벌써 충족될만한 라인업이었다. 시놉시스 역시도 이전 작품들에 비하여 좀 더 문턱이 낮은(?) 느낌이었다. 이전보다 더 대중적으로는 잘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여러모로 보였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난 이후에 감상 역시도 이러한 예상에는 빗나가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누구나 아는 비밀>은 이전의 파라디 감독의 구조적인 특징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좀 더 대중적인 느낌이 가미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건 장점이자 단점이라 할 수 있는데, 영화가 결국 대중예술인 것과 어떤 차원이든지 간에 공감이 영화에 있어 아주 중요한 요소가 맞다면 나는 파라디의 이번 연출 역시도 굳이 퇴보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화의 특성상 줄거리를 많이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줄거리는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납치가 나오고 출생의 비밀이 나오며 돈 문제가 나온다. 그래서인지 혹자들은 약간 '막장 드라마'와 다를 바 없다고도 했다. 그런데 사실 이건 한국이라는 대중문화 속에서 워낙 익숙한 소재이다 보니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파라디 감독은 이렇게 '막장'으로 치달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바로 그 뾰족하디 뾰족한 막장의 지점에 사실 큰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비밀과 은밀함, 그리고 그 은밀함이 풀리는 시간 속 비애 같은 것이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파라디 감독의 방식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이전 작품들에 비하면 조금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것은 이전 영화들은 지금 이 순간 이후의 전개를 전혀 예상할 수 없던 수준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그보다는 더 긴장이 완화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왠지 그래도 파라디 감독의 영화는 항상 기대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