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큰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까지 정확히 2주일이 남았다. 우리는 태국으로 가는 항공권을 끊었다. 도착지인 방콕에서 묵을 숙소와 다음 목적지인 피피 섬의 숙소만 미리 예약해두었다. 둘 다 수영장이 딸린, 저렴하지만 괜찮은 숙소다(물론 내 기준에서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두 가지뿐이었다. 하루 종일 함께 있기. 할 수 있다면 매일 수영하기. 아이들의 물놀이용품만으로도 캐리어가 터질 것 같았다.
아침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해도 뜨기 전에 일어나서 공항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집을 나서면서부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권을 두고 왔나? 가방을 뒤졌더니 네 개의 여권이 빠짐없이 들어 있다. 여권에 발이 달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지 않도록 가방 깊숙이 밀어 넣었다. 마스터카드도 지갑 속에 있다. 환전은 어차피 인터넷뱅킹으로 해두었으니 공항에서 찾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뭔가 빠진 것 같아.”
“뭐가?”
남편이 물었다.
“불안한데…….”
“휴대폰?”
“챙겼어.”
“노트북?”
“챙겼지.”
“그럼 됐네 뭐.”
그러나 불안감은 여전하다.
“아니야. 뭔가 잊은 게 있어.”
“카메라?”
“여기 있는데?”
“그럼 뭐야?”
“불을 켜고 왔나?”
“불은 내가 껐어.”
“보일러는?”
“보일러도 외출로 돌려뒀지.”
“확실해?”
“확실해.”
“가스는?”
“잠갔어.”
남편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하지만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분명히 무언가를 두고 왔다. 무언가를 잊었다. 분명하다. 무언가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다. 그리고 섬광 같은 깨달음.
“전기장판!”
“뭐?”
“전기장판 껐어?”
내 물음에 남편이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당신이 끄지 않았나?”
“잘 모르겠는데.”
“아냐. 당신이 껐어.”
“아닐지도 몰라.”
“아까 끄는 것 봤어.”
“언제?”
“본 것 같은데…….”
남편이 말끝을 흐린다. 나는 그를 믿지 못한다. 두 번이나 실직을 당한 남자를 믿지 못한다. 아니, 사실 나는 세상 누구도 믿지 못한다.
“안 껐어. 안 끈 게 분명해.”
“아니야. 껐어. 껐을 거야.”
남편도 오기가 생기는 모양이다.
“증거 있어?”
“껐다니까!”
“증거를 대.”
“그럼 다시 돌아가든가!”
남편이 화를 냈다. 나는 갑자기 수그러든다.
“아니야. 껐을 거야.”
우리의 싸움은 늘 이런 패턴이다. 내가 히스테리를 부린다. 남편이 불안해하며 그런 나를 진정시키려 애쓴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지금 히스테리를 부리고 싶어서 부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남편의 무마는 거의 추임새, 백댄스, 장구소리, 휘발유에 가깝다. 나의 히스테리는 점점 고조된다. 급기야 남편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낸다. 그제야 나는 물바가지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을 차린다.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전기장판을 켜놓고 외출한 적이 없다. 그런데 하필 2주 동안 집을 비우는 오늘, 외국으로 떠나는 오늘, 전기장판이 나를 괴롭힌다. 껐는지 안 껐는지 아무리 더듬어 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칠 것 같다. 이미 고속도로를 탔는데 다시 돌아가자니 진짜로 미친 것 같아 보일까 걱정이 된다. 손톱만큼 남은 내 이성은 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나를 붙잡는다. 하지만 나의 감성은 폭주기관차라도 탄 듯하다. 전기장판이 과열된다. 이불이 타다가 불이 붙는다. 불은 싸구려 장판과 벽지와 커튼을 태우고 집을 집어삼킨다. 우리는 이제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될 것이다. 실직도 했는데.
두 아이를 데리고 태국으로 간다. 이건 3박 4일 정도의 홍콩 여행과는 급이 다른 것이다. 불안하다. 불안하고 또 불안하다. 나는 태국이 어디보다 안전한 나라이면서 또 어떤 면에서는 불안한 나라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어딜 가나 흥정은 기본이다. 나는 흥정이 싫다. 사기를 당한 적도 있다. (보석 사기!) 전에 아들과 함께 여행하던 유럽 여자의 실종 전단이 카오산로드의 경찰서 앞에 붙어 있던 걸 봤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일정도, 숙소도, 제대로 정해두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그저 이 여행에 대한 내 불안감을 해소할 창구가 필요한 것이다. 그걸 애꿎은 전기장판에 투사한 것일 뿐이다.
공항에 가서 티켓을 발권하고 짐을 부치고 출입국 심사를 마치고 비행기에 올라서야 불안감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전기장판은 꺼져 있을 것이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낙관적인 전망을 갖자.
다행히 아이들은 인천에서 방콕까지의 꽤 긴 비행시간을 잘 견뎌냈다. 예전에 홍콩행 비행기에서 갓 돌이 지난 아들이 귀가 아팠던지 내내 악을 쓰며 울어 승객 모두가 이를 갈게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잠도 잘 자고 기내식도 잘 먹고 모니터로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면서 잘 갔다.
방콕의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변신이라도 하듯 화장실로 달려가 여름옷으로 갈아입었다. 한국을 떠날 때는 오리털 코트를 입어야 했는데 여기서는 소매가 없는 옷을 입고 슬리퍼를 신어도 된다. 겨울을 벗어버리고 여름을 입는 것이다. 추위에 두꺼운 옷을 잔뜩 껴입고 어깨를 움츠린 채로 종종걸음을 칠 때의 우리와, 더위에 늘어져서 세월아 네월아 슬리퍼를 질질 끌으며 걷는 우리는 같지만 다른 사람들일 것이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삼복더위에는 실연을 해도 그럭저럭 잊어버리고 살게 돼. 더워 죽겠는데 울고 불며 곱씹을 여력이 어딨어.”
그렇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운 나라에서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잘 나오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울고불고 곱씹고 치를 떨고 저주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도 날씨가 받쳐줘야 가능한 것이다. 춥고 스산하기로 유명한 나라 출신 작가들의, 세상 근심을 다 끌어안은 얼굴을 떠올려 보시라.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약간 긴장했지만 의외로 간단했다. 숙소가 있는 거리의 이름인 ‘프라 아팃’을 말하고 고속도로 톨게이트 비용을 포함한 적정 금액을 흥정하자, 택시는 문제없이 우리를 프라 아팃으로 데려다 주었다. 많은 것들이 눈에 익다. 나는 이 거리를 잘 안다. 익숙한 골목들, 익숙한 가게들, 익숙한 건물들, 익숙한 분위기와 냄새.
일단 숙소에 짐을 풀고 챙겨오지 않은 딸의 수영복을 사러 나섰다. 계단을 내려오며 남편이 즐거운 듯 소리친다.
“아, 외국에 도착한 첫날 맡는 이 낯선 냄새! 정말 좋아.”
내 남편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남자다. 나는 이 낯선 냄새가 싫다. 낯선 공기와 낯선 소리와 낯선 냄새가 나를 불안하고 울적하게 만든다. 이 순간 나는 달아나고 싶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내가 여길 왜 온 거지. 구역질이 날 것 같다. 나는 서른이 훌쩍 넘어 마흔이 가까운 나이고, 남편도 있고, 애도 둘이나 낳았고(말했다시피 둘 다 자연분만으로!), 2종 수동 운전면허도 있는데, 심지어 여기까지 이 모두를 끌고 온 건 나인데, 그런데도 구역질이 날 것 같다. 정말 바보 같다.
수영복을 사서 돌아와 가족들은 모두 수영장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그런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대신 나는 수영장 옆 식당의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수영하는 가족들을 지켜보았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이 후덥지근한 공기와 숯불과 생선젓국과 매연과 팍치와 파인애플이 뒤섞인 달짝지근한 냄새와 낯선 언어들과 새소리들이 ‘이질적인 것’에서 ‘이국적인 것’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전자는 두렵지만, 후자는 견딜만하다. 그리고 내게는 전자에서 후자까지 가는 거리가 인천에서 방콕까지의 거리만큼이나 멀다.
그나저나 내가 수영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방콕에 도착하자마자 생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오늘 나의 불안과 히스테리와 울적함은 모두, 호르몬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여행을 시작하고 이틀 후에 볼일이 있어 엄마가 안양의 우리 집에 들렀다. 나는 태국 남부의 소도시, 끄라비의 바다 앞에 서서 엄마가 보낸 문자를 받았다.
‘전기장판 꺼져 있음.’
그 소식을 듣고 나니 바다가 2퍼센트 더 아름다워 보였다.
이 여행과 여행 중인 우리가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행운아이고, 지금의 시련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게다가 집도 불타지 않았다. 우리에겐 돌아갈 곳이 있다. 그러고 보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어쩌면 그게 여행의 가장 멋진 점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