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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희 Jul 19. 2017

내가 여행에서 배운 전부[1]

태국 중부 지방의 작은 도시 깐짜나부리에는 졸리 프로그Jolly Frog라는 귀여운 이름의 식당이 있다. 실은 식당 겸 게스트하우스다. 나는 동물 이름이 들어간 가게를 좋아한다. 코끼리 식당이나 두꺼비집, 거북당, 개미집 같은 간판을 단 가게가 보이면 언제나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


프랑스가 배경인 책들을 읽다 보면 동물 이름을 붙인 가게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름은 개미fourmi다.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 근처를 돌아다닐 때 La Fourmi인지 Les Fourmis인지 하는 이름의 술집 간판을 발견하고는 남몰래 반가워했다. 퇴근 후 한잔 걸치기 위해 들른 듯한 동네 사람들로 가득한 술집이었다. 클럽을 찾으러 다니던 중이라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후회가 된다. 

프랑스 사람들은 달팽이도 먹고 토끼도 먹고 비둘기도 먹고 개구리도 먹고 사슴도 먹고 아무튼 웬만한 것은 다 먹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식재료에 대한 원초적인 상상력이 풍부한 느낌이다. 야성적이라고 해야 하나, 관대하다고 해야 하나, 게걸스럽다고 해야 하나. 먹을 것을 파는 가게에 동물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런 느낌이다. 소박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야성적인 느낌.


한국의 오래된 식당 이름 중에는 희망을 담은 것들이 많은 것 같다. 대성이라든지, 부흥이라든지, 만복이라든지. 그런 이름도 나쁘지 않지만 나는 고향의 이름을 간판에 새긴 집들이 더 마음에 든다. 타지에 와서 고생하며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뭉클해진다. 나도 타지에 와서 고생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닌 것이 내 친구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의 이름은 통영식당인데, 친구의 가족은 전라남도 진도에서 왔다. 통영과는 아무 연고가 없다. 심지어 통영에 한 번이라도 가본 적은 있으신지 의심스럽다. 단지 통영산 굴로 굴밥과 굴보쌈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하지만 음식은 정말 맛있다. 전라도의 손맛은 역시 놀랍다. 가격도 싸다. 동인천에 갈 일이 있으신 분들은 방문해보시길.

졸리 프로그의 이름은 왜 졸리 프로그인지 모르겠는데, 당시(1999년)만 해도 깐짜나부리의 꽤 ‘핫’한 장소였다. 그 이유는 첫째로, 콰이 강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콰이 강은 <콰이 강의 다리>라는 옛날 영화 속의 그 강을 말한다. 본 적은 없지만 꽤 유명한 영화라서 제목은 나도 알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 지역을 점령한 일본군은 군수물자 운반을 위한 철도 건설 작업에 태국인들은 물론이고 포로로 잡힌 연합군 병사들까지 노역으로 동원했다. 주로 영국과 호주, 네덜란드 병사들이었다고 한다. 


곡괭이와 삽만 들고 맨손으로 밀림을 헤치고 절벽을 깎아내 건설한 철도라 그 과정에서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415킬로미터 길이의 철로를 14개월 만에 만들어냈다고 한다. 곡괭이질과 삽질이라고는 5평짜리 텃밭에서밖에는 해본 적이 없는 나는 그게 어느 정도의 속도인지는 잘 가늠이 되지 않지만, 아무튼 엄청난 속도였다. 고된 노동뿐만 아니라 열악한 수용소 생활과 구타, 고문 등으로 죽은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영화는 연합군이 이 철도와 콰이 강 위의 다리를 폭파한다는 내용이다.


깐짜나부리의 인기 투어 코스는 열차를 타고 이때 건설된 ‘죽음의 철도’ 위를 달리는 것이다. 기차를 타고 시골길을 한참 달리다 보면 고작해야 기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폭이 좁은 철로가 나타나는데, 양 옆으로 벽처럼 높이 늘어선 절벽은 모두 당시의 포로들이 맨손으로 깎아낸 것이다. 이곳은 ‘헬 파이어 패스Hell fire pass’라고 불린다. 밤낮 없이 철로를 건설하느라 켜놓은 횃불이 멀리서 보면 지옥불처럼 보였기 때문이란다. 


무시무시하다. 반세기 전에 이 철도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고 생각하면 더 무시무시하고, 그럼에도 소풍이라도 나온 듯한 표정으로 감탄사를 내뱉으며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을 보면 더더욱 무시무시하다.


깐짜나부리에는 이때 죽은 연합군의 묘지가 있다. 기차를 타고 지나치면서 보았는데 나무 십자가가 무덤마다 꽂힌 작고 아름다운 묘지였다. 이 사람들은 죽어서 이런 데 묻힐 줄 알았을까. 고향에서는 이름조차 들어본 일 없었을 뜨거운 나라의 시골 마을 묘지에.


역사란 결국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 포로들 중에는 정말로 훌륭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착한 사람도, 좋은 사람도, 낯선 나라에서 포로로 잡혀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다가 죽지 않아도 좋았을, 살아 있었더라면 인류의 번영과 세계의 평화에 이바지했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훌륭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서 그런 데서 고생하다 죽어도 싸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하늘이 이런 사람을 버릴 리 없을 것이라 남들도 믿고 그 자신도 내심 믿었을 사람도 죽었을 것이다. 사악한 목적을 위해서 별 의미도 없는 일을 하다가 어이없이 죽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일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무섭다. 죽어 마땅한 사람들은 버젓이 살아 있고, 죽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 정말 무서운 일이다.


다시 귀여운 졸리 프로그 이야기로 돌아가자. 졸리 프로그의 첫 번째 매력은 바로 콰이 강이다. 강물은 한국의 강물처럼 맑지 않고 거의 흙탕물에 가깝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강 주변으로는 열대의 숲이 무성하다. 그러나 한국의 강이 차갑고 날카롭고 단호한 느낌을 풍긴다면, 콰이 강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풍만한 느낌이다. 태국의 산이 한국의 산과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의 산은 경외감이 들 정도로 웅장한 데 반해, 태국의 산은 둥글둥글하고 아기자기하다. 동그란 얼굴에 늘 웃음이 걸려 있는 이빨 빠진 할아버지 같다.

졸리 프로그의 두 번째 매력은 첫 번째 매력과 연관이 있는데, 숙소 건물을 둘러싸고 잘 가꿔진 잔디 정원이 있다는 것이다. 정원 한가운데는 커다란 코코넛 나무가 있어 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가려준다. 그리고 바로 앞의 콰이 강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말도 못하게 시원한 강바람이다. 잔디밭에는 데크체어가 놓여 있어 하루 종일 누워 있어도 좋다. 실제로 하루 종일 누워 있는 여행객들을 많이 보았다.


처음에는 그 모습을 보고는 당황했다. 우리는 언제나 유명 관광지를 찍고 순회하는 식의 여행을 여행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여길 어떻게 왔는데!’ ‘본전을 뽑아야 하는데!’라는 한국인의 본능이 채찍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딜 가나 긴장해 있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 본전을 뽑아야 하니까. 3천 원짜리 콩나물국밥집에서도, 7천 원짜리 목욕탕에서도, 백화점에서도, 술집에서도, 비행기를 타도, 산에 가도, 바다에 가도 본전부터 뽑아야 한다. 본전을 뽑고 나면 뜨끈한 국밥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운 것처럼 만족감이 밀려온다. 그래야 발 뻗고 잘 수가 있다.


그런데 다른 여행객들은, 특히 서양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늘 누워 있었다. 전생에 나무늘보였나 싶을 정도로 누워만 있었다. 해변에서도 누워 있고 잔디밭에서도 누워 있고 배 위에서도, 기차 위에서도 누워 있었다. 나도 서양인들의 흉내를 내어 누워 보았다. 10분 정도는 좋았는데 10분이 지나자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누워 있는 이들을 게으름뱅이라 부른다. 게으름뱅이는 경제 발전의 적이다. 일어나서 뭐라도 해야 한다. 나도 잘 눕지 않는 성격이다. 잘 때를 빼고는 하루 중 누워 있을 때가 거의 없다. 결혼 전에는 그래도 종종 누워 있었다. 할 일이 없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 몸이 지상에 붙어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고 싶을 때, 직립하고 있다는 것이, 겨우 발바닥 두 개만 땅에 붙어 있다는 것이 불안할 때 나는 누웠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 낳고 나니 하루 종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다. 할 일이 끝이 없다. 해도 해도 티가 안 나는 생활의 일들. 잠잘 때야 겨우 몸을 뉘일 수 있다. 이제 겨우 누울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하지만 여행을 할 때 나는 거의 누워 있다. 어딜 잘 가지도 않고 뭘 잘 하지도 않는다. 그저 적당한 장소를 찾아 눕거나 널브러져 있다. 누워서 맥주를 홀짝거리면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한다. 한번 누우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게 내가 여행에서 배운 전부인지도 모른다. 누울 줄 아는 것. 누워 있는 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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