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멋지게 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멋진 삶의 기준은 제각각이라지만,
암묵적으로 지금의 트랜드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삶을
미디어에서는 멋지다고 입소문을 퍼뜨린다.
지금 유행하는 브런치를 즐기고,
문화 공연을 접하고,
렘 쿨하스의 건축물을 이해하며,
카림 라시드의 산업디자인 제품을 한 두 개는 집에 들여 놓고,
인기 있는 아웃도어 지역에 여행을 다니고,
좋은 차를 보는 안목을 키우고,
핫 플레이스 열 개 정도는 기본으로 누군가에게 소개할 수 있고,
패션에 있어서도 일가견이 있고,
인기 있는 방송은 놓치지 않고 챙겨보며 대화를 참여할 수 있고,
페북이나 인스타그램 한 두개는 운영하며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암묵적 다수에게 알릴 감각과 노력이 수반되는,,
뭐, 그런 것들.
가만히 전체의 그림을 들여다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일단 돈을 소비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것.
소비할 대상을 미디어와 맞물려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 것.
그리고 소비한 결과물을 다시 미디어에 반대방향으로 알릴 것.
자본주의 시대에선 점점 더 자본이 강조되는 사회가 되어 간다.
그리고 그 자본은 미디어와 맞물려 강력한 파도를 만들어 간다.
형태와 흐름을 주도한 미디어는 신이 난듯 정답이 아니라도 좋으니
소비하는 행위 자체가 정답을 새롭게 만들어낸다고 설파한다.
자본, 소비, 미디어의 트랜드 형성을 위한 무언의 담합.
트랜드를 쫓아가선 결국 트랜드라는 파도를 탈 순 있지만,
누구도 그 속에서 내 힘으로 노를 저으려는 방법을 배우긴 어렵다.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삶의 양식이나 직종이라도 말이다.
그래서 우린 '마음 속 깊은 생각을 세상 밖으로' 꺼내어 놓을 줄 알아야 한다.
조금은 유치하거나,
편협해 보이거나,
세상의 흐름에서 한 발치 멀리 있거나,
아직 정제되지 않은 형태의 그 무엇이라 할 지라도,
그러한 어설픈 속성 덕분에 결국,
모든 것이 변화한다.
조금도 움추려 들 필요가 없다.
세상의 발걸음에 보조를 어느 정도는 맞추어야 하지만,
결국 갖고 있는 유니크한 그 무엇을,
조용히 꺼내어 놓아야 한다.
그것이 세상이 주도하는 소비의 흐름에,
자본주의적 유행에,
미디어의 굵직한 파이프라인에,
조금,, 아니 꽤나 벗어나 있다 할 지라도,,
결국 '우리 삶'을 살아야 한다.
미디어와 소비와 자본이 그것을 대체할 수 없다.
내 몸뚱아리 하나로만으로도,
세상에서 자신있게 활보할 만한 그것,,
그것은 돈을 번다고 해결되지도,
무리해서 소비한다고 해서 누군가 계속 알아주지도,
기껏해야 유튜브 영상 하나 올린다고 한들,
결국 내 흐름이, 내 인생이 되지 않는다.
우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내 마음을 꺼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마음을 꺼내야,
나만의 생각과 사고방식과 행동을,
그 소중함을 세상 앞에 꺼내들어야,
내 호흡으로, 보폭으로 살아갈 수 있다.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조심스레, 하지만 자신있게,
우리의 그 무언가를 꺼내들 수 있기를,,
우리 모두,,
그렇게 살면서 힘내자는 이야기다.
조용히, 하지만 거침없이.
그리고,,,
바로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