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단순한 고민이었다-
"그래프, 차트를 어떻게 넣지?"
AI를 활용한 문서 자동화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텍스트는 문제없는데, 중요한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부분이 난제였다.
처음엔 표 형태로 만들었다. 뭔가 허전했다. "그래프 포기하면 안 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런데 포기하기 싫었다. 전문적으로 보이려면 시각화가 필요했다.
문제를 끝까지 붙잡다
"서버에서 이미지를 만들어볼까?"
직접 해보려니 생각보다 복잡했다. 한글 폰트 문제, 환경 설정, OS마다 다른 동작... 머리가 아팠다.
"좀 더 간단한 방법이 없을까?"
순간 번뜩였다. 굳이 서버에서 복잡하게 그릴 필요가 있나? 웹 환경을 활용하면 훨씬 쉽지 않을까?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AI가 문서와 데이터 생성
클라이언트에서 시각화 렌더링
이미지로 변환해서 최종 문서에 삽입
깔끔했다. 각자 잘하는 것만 하게 만든 구조였다.
그리고 알게 된 진실
며칠 뒤, 누군가 말했다.
"이거 요즘 문서 자동화 서비스들이 다 쓰는 방식이네요."
뭐?
찾아보니 충격적이었다. 주요 AI 문서 서비스들이 거의 비슷한 접근 방식을 쓰고 있었다.
"우리가 만든 게... 업계 표준이었어?"
� 수렴 진화라는 것
생물학에 "수렴 진화(Convergent Evolution)"라는 개념이 있다.
박쥐와 새는 전혀 다른 조상에서 왔지만, 하늘을 날기 위해 둘 다 날개를 가지게 됐다. 고래와 상어는 종이 다르지만, 물속에서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둘 다 유선형의 몸을 가지게 되었다.
같은 환경 → 같은 제약 → 같은 형태
기술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우리의 경우 :
문제 : AI로 시각화 포함된 문서 자동 생성
제약 : AI는 이미지 직접 생성 못함, 서버 렌더링은 복잡함, 클라이언트는 시각화 도구 풍부
결론 : 역할 분리 → 클라이언트 렌더링 → 문서 변환
글로벌 기업들도 같은 논리적 경로를 밟았다. 우리도 같은 경로를 밟았다.
서로를 보지 않았는데 같은 곳에 도착했다.
우연이 아니라 필연
이게 우연일까? 아니다.
문제를 끝까지 붙잡고 있으면, 제약을 현실적으로 파악하면, 각 도구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면...
자연스럽게 최적해로 수렴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막대한 투자로 이 구조를 찾았다.
우리는 삽질하다가 이 구조를 찾았다.
하지만 도착한 곳은 같았다.
이건 "올바른 문제 해결"의 결과다.
그런데 잠깐, 이제는 다른 질문을 해야 할 때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우리가 "표준"에 도달했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기술자들은 본능적으로 "검증된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 안전하고, 예측 가능하고, 설명하기 쉬운 방법을. 그래서 수렴 진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어떻게 표준대로 잘 만들까?"가 아니라
"어떻게 표준을 뛰어넘을까?"가 중요한 시대다.
ChatGPT 이전에도 언어 모델은 있었다. 하지만 OpenAI는 "대화"라는 전혀 다른 접근으로 세상을 바꿨다.
아이폰 이전에도 스마트폰은 있었다. 하지만 애플은 "모든 버튼을 없앤다"는 창의적 결단으로 시장을 재정의했다.
표준에 도달하는 건 시작점이다.
진짜 승부는 그 다음부터다.
� 에필로그
지금 뭔가를 만들고 있다면.
"이게 맞나?" 싶을 때가 있다.
"남들은 어떻게 하지?" 궁금할 때가 있다.
"혹시 나만 이상하게 하는 거 아닐까?" 불안할 때가 있다.
괜찮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제약을 현실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면, 각 도구의 특성을 잘 활용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올바른 길 위에 있다.
나중에 보면 그게 "업계 표준"이었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마라.
표준은 출발선이다. 이제 그 위에서 뭔가 다른 걸 만들어야 한다. 모두가 오른쪽으로 갈 때 당신은 왼쪽을 봐야 한다.
수렴 진화로 같은 곳에 도착했다면, 이제는 발산 진화로 다른 길을 만들 차례다.
"우리는 표준을 찾아간 게 아니라, 문제를 놓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정답이었다. 하지만 다음 세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정답을 다시 바꾸는 게 우리의 일이다.
# 우리가 만든 게 알고 보니 글로벌 표준이었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