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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 Jun 22. 2016

11. 대전

스무 살 꼬질꼬질 자전거 여행기  vol. 11

대전

대전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나와 진수와 함께 친하게 지냈던 친구 B군이 있기 때문에, 대전까지만 가면 뭔가 파라다이스가 펼쳐질 것 같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


B는 우리가 고등학교 2학년 때 OO과학고를 졸업하고, 우리가 고3이 되었을 때는 이미 수능 시험을 보고 대전에 있는 카이스트에 진학했고, 그 후로는 계속 카이스트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과외 알바로 한 달에 몇백만 원씩 돈을 벌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길에서 먹고 자고 자전거 타고 그러고 있는데...


진수는 'B를 만나면 짜장면 사달라고 해야지~' 라며 벌써부터 즐거워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타지에서,

우리보다 먼저 사회에 나간 친구를 만나 극적인 상봉을 하고,

짜장면을 얻어먹는...

이 정도 기대를 하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 대전시에 진입하기 전 표지판 앞에서. 이때만 해도 저녁을 뭘 먹으면 좋을까, 뭘 사달라고 할까, 한창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늦은 오후가 되어 우리는 대전시 경계인 금강을 넘는 현도교를 건넜다.
현도교 옆에는 금강철교가 있었는데 지고 있는 태양과 노을빛에 녹슨 철골구조물은 더욱 고풍스럽게 보였다. 왠지 영화에 나오는 콰이강의 다리를 생각나게 했다.


다리를 건너 어느 구멍가게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가게 앞 공중전화로 B군에게 전화를 했다.
B군은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서울에서 출발하여 진짜로 대전에 와있다는 말에 좀 놀란 것 같았다.

"정말 대전에 왔어?? 거기 어디야?"
"여기...? 어딘지 모르겠어. 어떤 다리를 건넜는데..."

"?..."

"옆에 기찻길이 있어..."

B군은 어딘지 모르겠다고 우리에게 자기네 학교 앞으로 오라고 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카이스트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아냔 말이다!!!! 대전도 처음 와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처음 와본 건 아니었다. 중학교 때 학교에서 단체로 대전엑스포 구경하러 한번 와봤으니 두 번째 온 거네. GPS 내비게이션이라도 있었으면 카이스트 금방 찾아갔지. 뭐 그전에 우리가 어디 있다는 것도 얘기할 수 있었겠지.


결국 B군을 만나서 짜장면을 얻어먹는 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기대가 허물어지며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돌아보게 되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고 우린 저녁도 먹지 않은 상태였고 아직 잘 곳도 정하지 못했다.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서 운동장이 굉장히 큰 초등학교 하나를 찾았다.

역시 박진수가 숙직실을 찾아서 허락을 맡으러 갔다. 교직원 같은 분이 나오시더니 우리를 보고 자고 가는 건 괜찮은데 아침 일찍 떠날 것을 당부하셨다. 방학이지만 내일은 학생들이 학교에 오는 날이고, 다른 선생님도 출근을 하는데 이런 걸 다른 선생님들이 알게 되면 본인이 곤란하다고 하셨다. 우리는 계속 알겠다고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했다.

사실 여기서 쫓겨나면 다른 초등학교를 찾아갈 힘도 없었다.

텐트를 세우고 저녁이 만들어지고...
항상 그렇듯 신해철의 노래가 운동장에 흐르며 대전의 밤도 깊어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사라져주기로 한 우리는 약속도 잊고 계속 잠을 잤고, 웅성 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 텐트 밖을 보니 어느샌가 학생들 수십 명이 모여들어 텐트를 삥~ 둘러서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아직 우리를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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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4살에 운영하던 홈페이지에 썼던 글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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