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꼬질꼬질 자전거 여행기 vol. 13
덕유산
학교를 떠나기 전 깍두기를 주신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배웅을 나오셨다.
그리고 도로를 따라가면 차는 빠를지 몰라도 자전거로 가면 훨씬 돌아가는 거라며 무주로 가는 지름길을 알려주셨다. 우리는 선생님이 알려주신 지름길을 따라 무주로 향했다.
덕유산이 가까워지면서 점점 산들이 많이 나왔고, 점심때가 되었을 때 어느 산을 넘어 작은 마을에 도착을 했다. 우리는 아침밥도 제대로 못 먹었고 특별히 점심은 가게에서 돈 내고 사 먹기로 했다. 작은 중화요릿집에 들어가서 볶음밥 4개를 주문하고 침을 삼키며 기다리고 앉아서 큰 기대를 했다. 이게 얼마 만에 먹어보는 남이 해주는 밥인가!
음식이 나왔는데 우리는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많이 달라고 특별히 얘기까지 했건만 애들이 먹는 것도 아니고 정말 양이 적었다. 맛도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돈을 내기가 아깝다던 진수는 할 수 없이 돈을 내더니 그 대신 테이블 위에 있던 두루마리 휴지 몇 개를 몰래 들고 나왔다.
우리는 표지판을 따라 무주로 가면서 여러 개의 산을 넘었다.
짐을 등에 짊어지고 자전거를 끌고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고, 내리막 길은 자전거를 타고 눈 깜짝할 새에 내려가 버리고, 또 언덕이 나오면 자전거를 끌고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고, 내리막 길은 자전거를 타고 눈 깜짝할 새에 내려가 버리고... 산을 넘고 또 넘었지만 산을 넘으면 또 산이 나왔고,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비슷하게 생긴 산을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귀신에 홀려서 계속 같은 곳을 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포도밭이 많은 산속의 작은 마을 앞에서 잠시 쉬어가려고 멈췄을 때 그 마을의 아저씨들이 우리에게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보셨다. 무주 구천동에 간다는 우리의 계획을 들으신 아저씨는 다른 사람들까지 불러서
"아이구~ 이 애들이 무주구천동까지 간대요."
이러시며 절대로 못 간다고 그러셨다.
우리가 보고 가는 표지판의 "무주 앞으로 10km" 이런 숫자는 무주라는 동네까지의 거리였고, 무주구천동은 그곳과는 상관없이 훨씬 더 먼 곳이라고 하셨다.
그런 얘기를 하다 우리 주변을 보니 어디선가 등장한 마을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어느새 꽤 많이 모여있었다. 어디서 이렇게 갑자기 스르륵 등장했는지 무서울 정도였다.
아저씨들은 마을에서 자고 다음날 출발하라고 그러시며 이장님 댁에 가면 빈방이 있을 거라고 하셨다.
아직 그렇게 날이 어두워진 것도 아니라 오늘 주행을 끝내긴 아까웠고, 서울에서 여기까지 온 것도 뭐 거의 못 갈 거라는 주위의 예상을 깨고 온 건데 설마 무주구천동 못 찾아가겠나. 우리는 갈 수 있다고 아저씨들에게 얘기하고 그 마을을 떠나 산을 넘었다.
외진 마을에서 그곳 주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 실종되어버리고, 알고 보니 마을 주민들이 모두 같은 패거리였다는... 어디서 본듯한 공포영화 스토리가 잠깐 생각났다.
산을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날은 금세 어두워지고 우리는 힘이 빠져가고 있었지만 아직도 무주 구천동은 나올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아까 그 마을에서 그냥 자고 내일 출발할 걸..'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고 낮은 언덕도 올라갈 힘이 없어 자전거를 끌고 터벅터벅 산속을 걸어가고 있었다. 날이 너무 어두워지면서 가로등도 없는 산길 국도라 점점 길도 안보이고 우리는 최후의 수단으로 지나가는 차를 잡아타고 산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길옆에서 자전거를 세워놓고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 트럭 하나가 오는 것이 보였다.
손을 흔들어 차를 세워놓고 보니 정말 난생처음 보는듯한 엄청나게 큰 트럭이었다. 트럭이 하두 크고 높아서 운전사 아저씨 창문이 2층 건물에 올라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신 아저씨는 어서 타라고 하셨고 그 소리를 듣고 나는 너무 기뻐서 우리 자전거 4대를 하나씩 번쩍 들어 올려 2층 높이에 있는 트럭 뒤 짐칸에 던져 올렸다.
소중히 다루어야 할 자전거인데 그 순간에는 빨리 차를 타지 않으면 바쁜 아저씨가 별로 안 좋아하실 것 같아서 부서지건 말건 막 집어던졌다. 옆에 있던 형들과 진수는 죽어가던 애가 갑자기 힘이 어디서 나서 자전거를 번쩍번쩍 들어 올리냐고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트럭 앞자리에 운전하시는 아저씨와 우리 4명까지 5명이 꼭꼭 끼어 앉아 30분 정도 꽤 빠른 속도로 가로등도 없는 어둠 속을 달리니 무주구천동 입구에 도착했다.
이렇게 깜깜하고 먼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왔으면 아마 산속에서 길을 잃었거나 산속의 야생 짐승들이나 귀신들 때문에 무서웠을 것이다.
우리는 그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작별 인사를 하고 정말 착하신 분이다, 정말 복 받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번호판을 적어놨다가 나중에 사업에 성공하여 엄청나게 돈 많은 사장님이 됐을 때, 그 아저씨를 찾아서 제일 비싼 트럭을 하나 선물해야지 하는 생각도 했으나, 그 생각하기 전에 아저씨가 떠나버려서 번호판을 적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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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4살에 운영하던 홈페이지에 썼던 글을 조금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