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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 Sep 26. 2016

18.
무주를 떠나다

스무 살 꼬질꼬질 자전거 여행기  vol. 18


무주를 떠나다 


아침에 일어나 어제 볶음밥을 만들려고 사놨던 재료들을 이용해 부대찌개를 만들었다. 결국 어제 저녁에는 모두들 쌀 씻는 걸 귀찮아서 누워있다가 그냥 잠이 들었나 보다. 

오늘은 이틀 동안 지내던 무주를 떠나서 광주로 가려고 계획을 잡았다. 광주에 가면 진수와 경백이형의 친척집이 있어서 광주에 있는 동안의 숙식 걱정은 일단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텐트를 철수하고 이틀 전 힘들게 올랐던 무주구천동 계곡 언덕길을 내려왔다. 
이곳을 떠나려면 커다란 덕유산을 넘어야 했다. 덕유산 언덕길을 자전거를 끌고 걸어 올라가고 있는데 이누무 언덕은 아무리 걸어 올라가도 끝도 안 보이고, 길 옆에는 도로 확장공사를 하는지 흙먼지를 계속 날리며 커다란 트럭들이 우리를 밟을 듯이 옆을 휙휙 지나가며 우리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러던 중 공사장의 어떤 아저씨가 우리를 보시더니 '태워줄까?'라고 물어봤다. 

우리는 조그만 트럭에 자전거 4대와 함께 올라타고 다른 인부들처럼 짐칸에 앉아 바람을 쐬며 덕유산 정상까지 편하고 시원하게 올라갔다. 짐칸에서 살살 일어서 보기도 했는데 트럭 뒤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이동하는 건 참 시원하고 좋다. 아마 타이타닉 영화에서 배 앞에서 양팔을 벌리고 있는 기분이 이럴 것 같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덕유산 정상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는 코스는 정말 태어나서 지금까지 최고였다고 말할 정도로 너무 재밌었다! 자전거 페달을 전혀 하나도 안 돌리고 계속 내리막이 이어지는데 도로도 꾸불꾸불하고 마치 오토바이 레이스를 펼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도로라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고, 자전거 바퀴가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한 번도 안 쉬고 내리막을 내려왔더니 어떤 마을이 나왔다. 골목길 어느 집 대문 앞에서 모두 자전거를 멈추고 내리막 길에서 받은 벅찬 감동을 서로 떠들다가 그 집주인 아주머니한테 물 좀 한잔 달라고 했다. 우리가 서울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왔다는 얘기를 들으신 아주머니는 대단한 총각들이라며 마당으로 들어오라고 하시더니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마음껏 먹게 해주셨다. 그래서 세수도 하고 물통에도 물을 가득 채우고 또 출발했다. 


산속을 지나다가 진수가 '이 근처가 엄마의 고향이라고 표지판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어야겠다.' 그래서 모두 멈춰 쉬면서 사진을 찍었다. 울창하고 높은 나무들이 있는 숲 속이었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는 법! 
이번에는 해발 510미터 높이의 안성재 고개를 넘어야 했다. (63 빌딩이 240미터) 걸어서... 걸어서... 자전거를 끌고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보니 산 밑에 마을과 멀리 지평선까지 멋진 풍경이 한눈에 다 보였고 멀리서 소나기가 오는 것도 눈으로 다 볼 수 있었다. 

구름 덩어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게 보이고 구름 아래의 지역은 커다란 그림자가 생기며 그곳엔 소나기가 내렸다. 비 내리는 지역이 점점 가까이 오더니 우리 있는 곳까지 비가 내리고 우리 있는 곳이 비가 내릴 때는 산 아래 동네에 해가 쨍쨍 비추고. 무슨 판타지 영화에서나 보는 특수효과 장면처럼 너무 신기했다. 

안성재 정상에 있는 휴게소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파라솔이 달린 테이블에 밑에서 앉아 비를 피하며 그 풍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머리 위로 소나기구름이 지나가고 맑은 구름이 지나가고 다시 소나기구름, 맑은 구름이 2번이나 지나갈 때까지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환상적인 장관을 구경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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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4살에 운영하던 홈페이지에 썼던 글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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