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팡물류센터 도전기 (5)
처음에 야간근무 허브를 지원했을때는 별다른 고민이 없었다.
군대시절 야간경계근무, 그리고 15년이 넘는 입시학원가 생활을 하면서 야간 혹은 심야시간대 일에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이리저리 정보를 찾아보니 허브일이 다른 일보다 약간 노동강도가 세다는 이야기가 나와 '내가 좀더 고생하면 되겠지' 했다. 그래도 나이제한에 걸리기 일보직전에 채용이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은 마음으로 고양센터에 들어섰다. 웰컴데이 때는 서툴렀던 쿠팡의 앱 '쿠펀치' 사용도 익숙해지도록 노력했다.
그런데 처음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게 '오후조'라는 명칭이었다.
아무리 봐도 거의 꼬박 밤을 새우는 심야시간 일인데 왜 '오후조'라고 했을까?
주간조와 오후조로 나눈다면 그렇다면 오후는 주간이 아니라는 걸까?
무언가 석연찮은 의도가 느껴지는 점이었다.
알바생들과 뒤섞여 추가 실내교육을 두시간 정도 받은 뒤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었다.
"요즘 물량이 장난이 아닙니다. 인천쪽을 맡으세요"
현장 중간 관리직원이 던진 말이었다.
중간 관리직원들은 조끼를 착용하고 있었다. 조끼 색깔로 직위를 구분하고 있었다.
현장에 들어서는 순간 더운 열기가 훅 하고 안면에 불어닥쳤다.
대형 선풍기가 곳곳에서 돌아가고 있었지만 소음만 요란할 뿐 한여름밤 실내온도에 영향을 줄 수는 없었다.
'쿠팡은 왜 에어컨도 없이 일할까?'
이 넓은 작업공간에 에어컨을 설치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것 이라는 생각이 들긴했다.
그때는 공간이 워낙 커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뉴스타파 보도를 보고나서 '메자닌'이라는 구조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원래부터 에어컨등은 염두에 두지않은 설계구조였던 것이다.
메자닌은 창고로 분류되는 공간이다.
에어컨 설치가 의무화되지 않은 곳이다.
그곳에서 사람이 작업을 해도 창고시설이기에 법적으로 저촉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대형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뒤에서 소형 마이크로 작업지시, 독려하는 소리
물건 내려오는 소리, 작업하는 소음 등으로 뒤범벅이 된채 메자닌 작업장은 뒤엉켜 있었다.
내가 투입된 인천방면 코너.
좌우로 안산 김포등 경기지역 팻말도 보였다.
상단에서 기차선로처럼 벨트라인이 달리고 그 중간중간에 T자형으로 가지가 뻗어나와 경사면을 타고 물건이 쏟아지는 (?) 구조였다. 그야말로 쉬임없이 쏟아지는 물량을 일단 뒤에 내려놓은뒤 다시 그뒤 팔레트 위에다 차곡차곡 쌓아야 했다. 성인 키정도 물건이 장방형 건물처럼 층층히 쌓이면 랩으로 그 주변을 돌아가며 돌돌 말아 고정시키고 그 안의 틈바구니에 지역이름을 써넣으면 뒤에서 대기하던 지게차 요원이 핸드자키로 운반해가는 구조였다.
라인에서 물건내려서 1차 임시쌓기, 뒤편 팔레트위에다 적재하기. 랩으로 돌돌말아가며 포장하기. 핸드자키로 빠져나가면 옆에가서 팔레트 가져와 다시 배치하고 라인에서 물건 내리는 작업하기...이 모든 것이 한사람이 맡아야 하는 일이었다. 2인 1조이긴 하지만 큰 의미가 없었다. 뒷편에서 누가 물건적재하는 일을 맡아준다면 한결 나을텐데..아니 팔레트 만이라도 누가 갖다준다면 그래도 나을텐데....
한 라인당 2인 1조가 되어 작업을 하는데 감당하는 양이 장난이 아니다.
다행히도 나와 조를 이룬 사람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친구였는데..석달째 일한다며 나에게 중간 중간 여러 조언을 해주었다.
제일먼저 가르쳐 준 것이 물건들고 내리는 방식이었다.
허리를 무리하게 쓰면 바로 몸에 이상이 생긴다며 양발에 힘을 주고 수평을 유지한채 짐을 들고 내리는 방식을 권유한다.
"이곳에서 몸을 다치면 누가 챙겨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작업이 늦어지면 뒤에서 지켜보다 누가 다가와서 지원을 해주니 그냥 자기속도를 유지하세요"
그 친구는 나를 형님으로 부르겠다며 틈날때마다 조언을 해주고 내가 작업속도가 더디면 자기가 그 분량을 채워주려 애썼다.
"밤 11시경에 식사시간이 한시간 정도 주어지는데 교대교대로 가다보니 식사시간이 일정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중간에 15분 정도 휴식시간이 있는데 그게 전부입니다. 화장실 가고 싶을때는 주변에 말씀드리고 살짝 다녀오세요"
"사원님. 오늘 저녁식사 시간은 언제로 예정돼 있나요?"
"글쎄요. 아까 언뜻 듣기로는 11시경이라고 했습니다."
한참 작업을 하고 있는데 바로 옆 라인에서 질문이 들어온다.
그런데 젊은 여성이다.충격이었다.
아! 여성이 허브일을?
주변을 둘러보니 몇사람이 더 보였다. 아무리 젋다지만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그 순간 웰컴데이때 관리직원이 한 여성에게 허브일 지원을 재고해보라고 권유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이야기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