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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ckkey Jan 06. 2023

아날로그 아웃보드 vs 디지털 플러그인

MIXING 101 Ep03

지금까지 말한 장비들을 좋은 퀄리티로 마련했다면 사실 소리의 본질을 좋게 만드는 장비 업그레이드는 이미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믹싱을 하고 하루지나서 들어보면 내가 만든 사운드는 못 들어줄 수준이고 며칠을 처음부터 반복해도 점점 더 소리는 이상해져 갈 뿐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어떻게하면 나도 믹스를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다보면 어느 순간 ‘나도 유명 엔지니어들이 쓰는 아웃보드 컴프레서를 쓰면 저 사람들과 같은 소리를 낼 수 있을꺼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이큐, 컴프레서, 리버브, 딜레이는 어차피 디지털이기 때문에 아날로그의 ‘따뜻함(Warmth)’를 낼 수 없는거야' 등의 생각에 사로잡혀 ‘1176 컴프레서 하드웨어 vs 플러그인’ 같은 제목의 유투브 동영상을 계속 보고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결국 아날로그 하드웨어 장비를 구입해서 사용해보면 마법처럼 좋아질 줄 알았던 사운드가 이미 자신이 사용하고 있던 플러그인과 그다지 유의미한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망을 하게될 것이다. 마법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주변에는 그 장비를 구입한다는 얘기를 한 상태이고 음악 작업하는 지인들이 물어오면 ‘역시 하드웨어가 최고야, 그거 하나만 걸면 다 해결되더라구’와 같은 커멘트를 남기게 될 확률이 높다. 그렇게 또 하나의 아날로그 myth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거금을 주고 산거니까 계속 써보자라는 생각으로 사용하다보면 플러그인으로 간단하게 모든 채널에 걸 수 있었던 걸 소스 하나하나에 라우팅해서 (심지어 스테레오 소스라면 하드웨어 모노 유닛 두 개가 필요하다) 매번 프린팅을 해야하고 수정이라도 하려고 하면 그 때 어떤 셋팅으로 했더라 고민하고, 다시 또 장비를 연결하고 프린팅을 반복하다보면 그 아날로그의 불편함에 결국엔 높은 확률로 작업실 한 켠을 장식하고 있는 하나의 피규어처럼 한 때 그렇게도 갖고싶었던 장비 위에는 먼지만 쌓여갈 것이다. 


정말로 아날로그 아웃보드 장비는 좋은 믹스를 하기위한 필수 요소인가?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날로그 장비는 플러그인처럼 디지털로 변환된 데이터를 프로그램 상에서 변경하는게 아닌, 실제 소리가 회로를 거치면서 변화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클래식한 방법이면서 좀 더 소리의 본질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 플러그인 보다 더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전에는 플러그인의 퀄리티 자체가 그렇게 좋지 않았기 때문에 탑 믹스 엔지니어들이 플러그인으로 작업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도 '하드웨어보다 플러그인이 더 좋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영향을 준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지금은 플러그인의 퀄리티가 정말 많이 좋아졌고 그걸 다루는 사람의 레벨이 높다면 장비가 하드웨어인지 플러그인 인지는 믹싱 퀄리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결국엔 믹싱 엔지니어의 역량이 좋은 사운드를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믹싱을 하고 여러 환경에서 들어보고 또 수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보고, 본인이 녹음한 곡이라면 다른 방식으로 녹음해서 다시 믹스해보기도 하고, 그렇게 수 많은 시도를 하면서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새 내가 한 믹스를 차에서 들었을 때도 이어폰으로 들었을 때도 ‘꽤 괜찮게 됐는데?’라고 생각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내가 2014년 뉴욕 일렉트릭레이디에서 일하고 있었을 때 두 분의 그래미 위닝 믹싱 엔지니어가 스튜디오B, 스튜디오C에 있었다. 그 중 한 분은 콜드플레이, 존메이어, 제임스 베이, 그 밖의 수많은 히트 레코드를 믹싱한 마이클 브라우어 였는데 그 분이 사용하던 스튜디오B 뒷 편에는 수십 개의 아날로그 하드웨어가 가득히 장착되어있는 랙들이 있었다. 이 전에 믹싱했던 곡의 수정때문에 몇 번 정도 리콜을 도와드린적이 있는데 리콜 기능이 있는 콘솔은 리콜 프로그램 상에 띄워주는 그래픽을 보며 셋팅을 맞추면 됐었지만 믹싱 때 사용한 그 수많은 아날로그 장비들은 하나하나 리콜 시트를 보면서 당시에 설정해놓은 값들을 그대로 세밀하게 맞추는 작업을 해야했다. 한 곡을 리콜하는데만도 2-3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는데 어떻게 이 작업을 매일 반복하면서 믹싱을 하는지 궁금했었고 그 고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아날로그 장비들이 꼭 필요할 정도로 좋은 사운드를 내주나보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얼마전 마이클 브라우어의 PureMix 인터뷰를 보니 코비드 판데믹 기간동안 Full 아날로그에서 하이브리드 셋업(콘솔은 디지털 컨트롤러, 장비는 하드웨어), 그리고 다시 Full ITB 셋업(디지털 컨트롤러, 장비는 플러그인)으로의 전환이 있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마이클 브라우어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리콜 방식이 지금의 음악 작업 방식과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고 좀 더 효율적인 ITB 방식으로의 전환을 하게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효율성을 추구한다고 해서 절대 사운드 퀄리티에 있어서의 타협은 하지 않았다. 지금 ITB 믹싱은 내가 예전에 하던 풀 아날로그보다 퀄리티가 낮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여러가지 시도들을 자유롭게 해볼 수 있어서 더 좋은 사운드를 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라고 그가 말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의 ITB 믹싱 템플릿을 보면 그가 아날로그 사운드를 ITB에서 구현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 전환을 이뤄냈는지가 보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이 전환을 퀄리티의 타협없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또 그걸 이뤄냈다는 점은 아날로그 하드웨어 장비 vs 디지털 플러그인에 대해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사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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