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XING 101 Ep08
뉴욕에 살고 있을 때 AES(Audio Engineering Society) Convention 에서 전설적인 마스터링 엔지니어, Bob Ludwig(밥 루드윅)을 만나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가 있었다. 그 때 나는 그에게 '좋은 엔지니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라는 질문을 했었는데 어떻게 보면 대답하기 까다로울 수 있는 이 넓은 범위의 질문에 잠깐 생각을 하시더니 이런 명쾌한 대답을 해주셨다. '좋은 취향(Taste)를 가지는게 제일 중요하다. 그러기위해서는 장르의 구분없이 다양한 음악들을 많이 들어야하고, 특히 뮤지션들이 실제로 어떤 소리를 내는지 라이브에 직접 가서 들어보는 경험을 많이 할 필요가 있다.'라고. 어떻게보면 굉장히 단순하게 들릴 수 있는 대답이지만 우리가 쉽게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자주 믹싱을 요리에 비유하곤 하는데 이 대답 역시도 그렇게 생각해보면 조금 더 이해하기가 쉬울 것 같다. 좋은 요리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요리사가 좋은 입맛(Taste)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음식이 맛있는지 알아야 본인이 맛있다고 생각하는 요리를 했을 때 사람들도 좋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요리사의 취향이 특이해서 본인 입맛에 맞춰 맛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요리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동떨어져있다면 그 요리사는 아마 성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취향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좋은 요리를 많이, 다양하게 먹어보고 다른 인기있는 레스토랑의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떤 맛을 내는지 알아가는 경험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혼자서 실력을 갈고 닦는 시간도 꼭 필요하지만 그냥 혼자 주방에 있으면서 본인이 만든 요리만 계속해서 먹어보기만해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취향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가면서 그 취향이 실제 요리에도 반영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습해나가는 것. 그게 바로 좋은 요리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흔히들 인터넷에 써있는 레시피를 보고 따라해서 그럴듯한 요리를 만들어내고,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인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만약 레시피 없이 처음부터 스스로 생각해서 요리를 해야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은 어떤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타고나는 능력에 따라서 그 정도는 다르겠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시간을 들여 연습을 거듭하는 노력을 하는 것만이 프로페셔널이 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믹싱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절대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죽이는 킥드럼 사운드 만드는 법', '이 플러그인 하나면 보컬 믹싱 끝'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들의 영상들을 보고 따라한다고 바로 프로들처럼 믹스할 수 있는게 아니다. 모든 킥 사운드는 다르고 보컬도 그렇다. 깎아야 하는 주파수 영역, 더해줘야 하는 주파수 영역, 걸어야 하는 컴프레서의 양, 리버브/딜레이의 공간계가 걸리는 양과 정도는 항상 달라진다. 그리고 어떤 한 곡에 어울리는 죽이는 킥 사운드를 만들었다고 해도 다른 곡에 그걸 그대로 쓰면 어울리지 않는 소스가 되기도 한다. 언제나 믹싱을 할 때에는 엔지니어가 듣고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판단을 내려서 사운드를 완성시켜가야하는데 그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기르려면 앞에서 말한 요리 실력을 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며 시간을 투자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그래서 믹싱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처음 믹싱을 해서 이어폰이나 차에서 들어보면 바로 꺼버리고 싶을 정도로 '이걸 지금 내가 한거라고? 왜 이렇게 구리지?' 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본인의 믹스가 끔찍하게 들리는 그 고통의 시간을 견디면서 어떻게하면 조금이라도 좋은 믹스를 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스스로 성장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옷을 자기가 골라서 입기 시작할 때 처음에는 다들 등원하는 유치원생들처럼 옷을 입게 된다. 심지어 자기 고집도 확실하게 있다. 어울리지 않는 색조합에 어울리지 않는 소재의 옷들의 믹스앤매치. 그러면서도 그게 이상하게 보일 거라는 생각을 못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고 옷을 잘 입는 것에 관심이 생기고, 패션 잡지도 찾아보고, 옷가게를 돌아다니면서 좋은 옷과 그렇지 못한 옷들을 구분할 수 있게되고, 여러가지 옷들을 입어보고, 실패도 해보고, 무엇보다 본인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찾아가는 긴 여정을 거쳐야 어느 정도 주변에서 옷 잘입는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믹싱을 잘하게 되는 것도 이와 비슷한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프로페셔널 믹싱 엔지니어는 여기서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패션에 조언도 할 수 있고 또 어울리게 옷을 입게 만들어주는 패션 스타일리스트 레벨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엔지니어에게 페이를 하고 소중한 음악의 믹싱을 맡기는 클라이언트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 언제나 작업할 때 그걸 빨리 끝내서 납품해야 하는 일로서 생각하지 말고 정성을 들여 클라이언트의 음악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생각을 해야한다. 믹싱을 다 끝냈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분명히 한두가지 정도는 그 방법들이 떠오를 것이다. '이거 더 한다고 누가 알기나 하겠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반드시 누군가는 그 조금의 차이를 알아볼 것이고 그 차이가 다른 엔지니어들보다 좋은 믹싱을 하게 만드는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