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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노 Jan 04. 2017

오리지널과는 TPO가 다른 이태원 할랄 가이즈

Halal Guys in Itaewon

여행하면서 먹었던 그 음식을 다시 먹으러 가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 여행 당시에는 단순히 그 음식만 먹었던 것이 아니라 그 도시의, 그 상황의 분위기와 감성까지 식사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또 그때는 배도 고팠을 테고 식사에는 함께 먹었던 동행과의 이야기도 들어있다. 맛있었던 그 음식은 여행에서 돌아와서 나중에 그리워하면서 추억까지 더해지기 때문에 다시 찾아간 그 곳에서 예전 그 맛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뉴욕에서 먹었던 할랄 가이즈(Halal Guys)가 12월 중순 드디어 이태원에 매장을 열었다고 했을 때, 그리고 직접 가게 되었을 때, 자칫 그때 그 맛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을 안고 갔다가 실망하지는 않을까 하고 조금은 긴장하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태원 할랄 가이즈는 꽤나 괜찮다. 단, 뉴욕에서 오리지널을 먹어본 사람에게는, 그 할랄 가이즈와 이태원의 할랄 가이즈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위치는 이태원 해밀턴 호텔에서 한남동 쪽으로 가는 길에 있다. 지하철 출구에서 그리 멀지 않다.

메뉴와 가격대. 뉴욕 사이즈가 뉴욕에서 판매하는 것과 같은 크기다. 원화로 계산하고 로열티, 그리고 매장 내에서 먹는다는 점들을 감안하면 가격이 그리 비싼 편은 아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7$짜리 식사면 저렴한 편에 속했는데 여기서는 훨씬 비싸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뉴욕에서는 없던, 후렌치후라이같은 사이드 메뉴도 있다. Hummus는 뭔지 모르겠다. 다음에 가면 먹어보기로.

주문 방식과 재료도 오리지널과는 확연히 다르다. 뉴욕에서는 샌드위치/플래터, 그리고 고기 종류만 선택하면 됐었는데, 이태원 할랄 가이즈는 사이즈부터 시작해서 야채와 추가 토핑까지 모두 고를 수 있다. 뉴욕에서는 야채가 양배추밖에 없었는데, 여기에는 토마토와 양배추가 기본으로 있고, 올리브나 할라피뇨 같은 추가 토핑도 있었다. 뉴욕에서는 1회용 화이트 소스/레드 소스를 줬지만, 이태원에서는 주문과 함께 원하는 만큼 달라고 하면 그만큼 소스를 뿌려준다. 음료수는 주문하면 컵을 주고 소다파운틴에서 원하는 만큼 마실 수 있는 방식이다.

앞 쪽이 콤보 레귤러 사이즈(화이트 소스 많이, 레드 소스 조금), 뒤쪽이 콤보 스몰 사이즈(화이트 소스 많이, 레드 소스 보통)다. 먹어보면 알겠지만, 그리고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뉴욕에서 먹던 할랄 가이즈와는 다른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옷을 입을 때는 TPO에 따라서 달라져야 한다고 한다. TPO는 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상황)의 약자로, 참석하는 자리의 성격에 맞춰서 의복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태원에 들어온 할랄 가이즈도 뉴욕의 오리지널과 TPO가 다르다. 다만 여기서의 TPO의 T는 Time보다는 Taste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겠다.

야채는 매장에서 바로바로 준비되기 때문에 훨씬 아삭하고 신선하지만, 빵(Protein이라고 하나?)은 이도 저도 아닌 맛이다. 뉴욕에서 먹었을 때는 쫄깃하고 훨씬 맛있었는데...
소스는 이전에 먹던 할랄 가이즈와 같은 맛이고, 고기의 경우 밑간이 더 강하게 되어 있다. 오리지널 할랄 가이즈에서는 느끼지 못했는데, 이태원에서는 소고기와 닭고기 모두 조금 짜다고 느껴졌다.

또 뉴욕의 할랄 가이즈는 기본적으로 길가에서 먹는 스트릿 푸드지만 이태원 할랄 가이즈는 매장 내에서 앉아서 먹는다. 물론 포장도 된다. 뉴욕에서 할랄 가이즈를 먹어본 사람들의 SNS 포스트를 보면 '포장해서 바깥 길거리에 앉아서 먹어야만 할 것 같다'라는 반응이 많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황 역시, 당시에는 여행 중이었고 대부분 할랄 가이즈를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겠지만 여기서는 그때의 기대감을 가지고 가는 상황이다.
그래서 분명히 뉴욕의 오리지널 할랄 가이즈의 맛은 아니다. 그 시간도, 상황도 아니다. 예전에 먹었던 할랄 가이즈를 똑같이 기대하고 가면 실망할 수 있겠지만, 선입견을 배제하고 가면 충분히 만족스럽다.

이제 알만한 사람은 모두 할랄 가이즈가 한국에도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주변의 평을 들어보면 다들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다. 이런 평가라면 적어도 그때 그 향수를 불러오는 데에는 성공했다는 것이 아닐까. 이태원에 놀러 가서 색다른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면, 할랄 가이즈는 괜찮은 선택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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