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권력과 결함 있는 리얼리즘|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호스티지>
*스포일러 있습니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호스티지>는 수많은 정치 스릴러 장르의 작품들 속에서 진보적이고 시의적절한 전제를 내세우며 등장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영국 총리와 프랑스 대통령이라는, 유럽 정치의 중심에 있는 두 강력한 ‘여성’을 내세워 지정학적 위기를 헤쳐나가는 과정을 그리죠.
<호스티지>는 슈란느 존스와 줄리 델피라는 두 주연 배우의 압도적인 연기력에 힘입어 ‘요동치고 추진력 있는 이야기’로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개연성이 심각하게 결여된 전개와 여성 리더십에 대한 환원주의적인 포스트 페미니즘적 관습에 의존함으로써 스스로 표방하는 ‘여성 역량 강화’라는 메시지를 약화시키는 모순을 드러냅니다.
페미니즘적이고 좌파적인 틀을 사용한 <호스티지>가 이를 성공적으로 활용하여 설득력 있는 서사를 구축했는지, 서사의 현실성과 인물 묘사의 결함으로 인해 그 정치적 메시지가 오히려 훼손되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호스티지>의 가장 큰 강점은 캐스팅과 제작진의 명확하고 진보적인 의도에서 비롯됩니다. 슈란느 존스와 줄리 델피의 연기는 매력적인 수준을 넘어, 때로는 각본의 한계를 초월하여 두 가지 상이한 리더십 스타일의 미묘한 초상을 그려내며 작품의 몰입도를 책임지죠.
<호스티지>의 이면에는 뚜렷한 창작 목표가 존재합니다.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영화 <스파이 브릿지>의 각본가 맷 차먼을 필두로, 여성 감독들이 의도적으로 기용되었으며, 주연 배우가 직접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하여 작품의 방향성을 설정했습니다.
각본가 맷 차먼: 차먼은 <스파이 브릿지>를 통해 개인이 거대한 정치적, 역사적 위기에 맞서는 서사를 다루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죠. 그는 <호스티지>를 통해 권력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특히 슈란느 존스라는 배우를 통해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총리 캐릭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또한, 시의성과 현실감을 갖춘 ‘5부작의 정주행용 한정 시리즈’를 목표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감독 이자벨 시브와 에이미 닐: 두 명의 여성 감독을 기용한 것은 제작의 핵심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총괄 프로듀서를 겸한 슈란느 존스는 드라마 <비질>에서 액션과 개인의 감정선을 균형감 있게 연출하는 능력을 입증한 이자벨 시브를 직접 지목했습니다. 이는 화면 안팎에서 ‘여성이 주도하는’ 비전을 실현하려는 제작진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시브의 필모그래피는 여성 중심 서사와 시각적으로 강렬한 스타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에이미 닐의 작품 역시 여성의 회복탄력성과 정체성을 탐구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총괄 프로듀서 슈란느 존스: 주연 배우이자 총괄 프로듀서로서 슈란느 존스는 작품에 상당한 창의적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권력을 가진 여성, 특히 일하는 어머니에게 가해지는 독특한 부담과,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대중의 인식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현실을 탐구하는 데 깊은 관심을 표했습니다. 이는 시리즈가 명백한 페미니즘적 야심을 품고 있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호스티지>의 서사를 이끄는 두 축은 단연 슈란느 존스와 줄리 델피의 연기입니다. 두 배우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권력의 무게를 짊어진 여성 지도자의 모습을 구현해 냅니다.
슈란느 존스가 연기한 애비게일 돌턴: 존스는 영국 총리 애비게일 돌턴을 “공감할 수 있고, 애국적이며, 최선을 다하는 리더”이자 “비범한 상황에 처한 평범한 여성”으로 묘사합니다. 그녀의 연기는 “경이롭고, 맹렬하며, 무자비하다”는 평을 받으며,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단호함과 절박함을 오가는 인물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습니다. 존스는 역할을 준비하며 여러 정당의 여성 정치인들을 직접 인터뷰했고, 이는 권력이 개인에게 미치는 ‘대가’를 연기하는 데 깊이를 더했습니다.
줄리 델피가 연기한 비비안 투생: 델피가 연기한 프랑스 대통령 비비안 투생은 돌턴과 대조적인 인물입니다. 그녀는 “얼음처럼 차갑고, 세상 물정에 밝으며, 타협에 능한 전략의 대가”로 그려집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극우적, 반이민적 수사를 차용하는 그녀의 모습은 현대 유럽의 정치적 불안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델피의 연기는 “날카로운 취약성”과 “헤아릴 수 없는 매력”으로 종종 극의 중심을 장악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슈란느 존스와 줄리 델피, 경쟁 관계에서 시작하여 불안한 동맹으로 나아가는 두 지도자의 관계는 시리즈의 긴장감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됩니다. 또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각본가, BAFTA 후보 감독, BAFTA 수상 배우 등 최고 수준의 제작진이 참여했다는 사실은 이 시리즈가 가진 역설을 더욱 부각합니다.
이처럼 유능한 전문가들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적인 수준의 설정 오류”라는 비판이 쏟아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제작 과정에서 서사의 논리적 일관성보다 페미니즘적 메시지나 배우의 연기력 같은 고차원적 요소가 우선시 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즉,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상과 스릴러 장르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서사 구축 사이의 괴리가 발생한 것이죠.
<호스티지>는 여성 권력에 대한 복잡하고 모순적인 묘사를 통해 핵심적인 논쟁을 촉발시킵니다. 이 시리즈는 여성 지도자를 유능한 주체로 그리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들의 가장 큰 위기와 취약점을 개인적, 가족적 관계로 한정 짓는 포스트페미니즘적 함정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는 급진적인 페미니즘적 비판의 가능성을 스스로 제한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표면적으로 <호스티지>는 여성 지도자 묘사에 있어 진일보한 측면을 보여줍니다. 두 명의 특정 연령대의 여성을 권력의 중심에 두고 그들을 ‘상징’이 아닌 ‘인물’로 다룬다는 점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그들의 여성성은 특별히 부각되지 않으며, 이는 장르적 관습에서 벗어난 신선한 시도입니다. 시리즈는 여성이 남성과는 다른 특별한 감성적 능력을 가졌다고 암시하기보다, 성별 내의 차이가 성별 간의 차이보다 크다는 미묘한 주장을 펼칩니다.
또한 서사는 돌턴과 투생이 유능하지만 끊임없이 폄하당하며 동료와 대중으로부터 여성혐오에 직면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돌턴은 납치범들이 자신을 목표로 삼은 이유가 “여성은 국가보다 가족을 택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라고 명확히 지적합니다. 이는 제작진이 여성 지도자가 겪는 젠더화된 압박을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주죠. 두 지도자는 엄청난 압박에도 불구하고 사임 요구를 거부하고, 협박에도 불구하고 결국 구조 작전을 성공시키는 등 주체성과 회복탄력성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 강화의 외피는 서사의 핵심 동력 앞에서 무너지고 맙니다. <호스티지>는 “유능한 여성 지도자를 곤경에 빠뜨리기”라는 장르적 관습에 충실합니다. 이 관습 속에서 여성 지도자의 능력은 정치적 위기이자 동시에 가족에 대한 위협이라는 개인적인 시련을 통해 시험받죠.
가족을 핵심 취약점으로 설정: 시리즈의 중심 사건은 돌턴 총리의 남편 납치이며, 투생 대통령을 무력화시키는 무기는 의붓아들과의 관계를 담은 협박 영상입니다. 평론가들은 이러한 설정이 여성 지도자의 고뇌를 모성애적 압박으로 축소시키고, 여성 리더십의 결함에 대한 원시적인 고정관념을 재생산한다고 비판합니다. 딸 실비는 어머니에게 감정적 압박을 가하기 위해 존재하는 플롯 장치로 기능할 뿐입니다.
포스트페미니즘적 감수성: 이처럼 정치적 문제를 개인적 위기로 치환하는 방식은 포스트페미니즘 미디어 문화의 핵심 특징과 일치합니다. 서사는 개인의 ‘불가능한 선택’을 강조하며, 구조적인 정치 문제를 ‘개인적 위기’라는 렌즈를 통해 조명합니다. 이는 가부장적 권력 구조에 대한 비판에서 벗어나, 개별 여성이 “모든 것을 균형 있게 해낼 수 있는가”라는, 포스트페미니즘의 핵심적인 질문으로 초점을 이동시킵니다. 즉, “이 시스템이 여성을 어떻게 억압하는가?”라는 질문 대신 “이 여성이 이 압박을 감당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죠.
<외교관>과의 비교: 넷플릭스의 또 다른 정치 스릴러 <외교관>과의 비교는 <호스티지>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외교관>의 주인공 케이트 와일러 역시 복잡한 결혼 생활과 고압적인 역할을 동시에 수행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캐릭터는 직업적 유능함, 외교 무대에서의 어색함, 전략적 탁월함으로 정의됩니다. 그녀의 결혼 문제는 그녀의 업무와 병행되는 갈등일 뿐, 적대 세력이 그녀를 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주요 수단이 아닙니다. 반면 <호스티지>에서는 가족이 명시적으로 ‘무기화’되어, 여성 지도자들의 감정적 삶이 그들의 가장 큰 정치적 부채가 되도록 만듭니다.
결론적으로, <호스티지>의 진보 정치는 실질적이기보다는 미학적인 차원에만 머무릅니다. 여성을 권력의 자리에 앉히면서도 그들에게 가해지는 위기를 전통적으로 ‘여성적인 것’으로 규정(가족 보호, 감정적 협박)함으로써, 이 시리즈는 진보주의의 외양을 띠면서도 젠더 역할에 대한 보수적인 관념을 오히려 강화합니다.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오르더라도 여성의 주된 관심사와 취약점은 여전히 ‘가정’에 있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는 ‘여성의 권력 획득’이라는 페미니즘적 성취를 수용하되, 개인의 선택과 사생활에 초점을 맞춰 이를 탈정치화하는 포스트페미니즘의 전략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호스티지>는 페미니즘적 텍스트라기보다는, 그 전제의 급진적 잠재력을 스스로 무력화시키는 포스트페미니즘적 텍스트로 읽힐 수 있습니다.
<호스티지>의 가장 심각한 결함은 서사의 논리적, 현실적 실패에 있습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설정 오류는 사소한 흠결을 넘어 스토리텔링의 근본적인 실패로 작용하죠. 이러한 실패는 시리즈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훼손하며, 정치적, 주제적 메시지가 전달되기 위해 필수적인 시청자의 ‘몰입’을 붕괴합니다.
<호스티지>의 서사는 현실 세계의 보안 프로토콜을 철저히 무시함으로써 성립됩니다. 이는 특히 시청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비판을 받은 지점이기도 합니다.
보호받지 못하는 총리의 배우자: 시리즈의 전제는 의사인 총리의 남편이 아무런 경호도 없이 분쟁 지역(프랑스령 기아나)에서 의료 봉사를 하다 납치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야기의 근간을 이루는 설정이지만, 가장 비현실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현실에서 영국 총리 등 정부 요인의 경호는 런던 경찰청 산하의 왕실 및 특수 경호대가 담당하며, 이들의 임무는 해외 작전을 포함한 광범위한 위협 평가와 사전 계획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시나리오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구멍 뚫린 다우닝가 10번지: 시청자들은 다우닝가 10번지의 허술한 보안에 대해 반복적으로 문제를 제기합니다. 총리의 딸 실비가 아무런 제지 없이 최고 보안 등급의 상황실에 들어간다거나, 프랑스 대통령의 의붓아들 마테오가 폭탄이 설치된 노트북을 들고 아무런 검색 절차 없이 다우닝가 10번지로 들어가는 상황들 말이죠.
현실과의 괴리: 현실의 다우닝가 10번지는 1980년대 이후 IRA의 위협에 대응하여 철저한 통제하에 놓여 있습니다. 무장 경찰이 상주하는 출입문, 방문객을 위한 공항 수준의 보안 검색, 지속적인 무장 순찰이 이루어지는, 영국에서 가장 삼엄하게 경비되는 건물 중 하나입니다. 시리즈의 묘사는 단순한 극적 과장을 넘어, 시청자의 상식을 무시하는 수준의 완전한 허구에 가깝습니다.
<보디가드>와의 비교: BBC 드라마 <보디가드> 역시 스릴러 장르지만, 내무장관 주변을 둘러싼 경호팀의 지속적이고 숨 막히는 존재감을 통해 절차적 현실성을 훨씬 더 충실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와 비교할 때, <호스티지>는 서사의 편의를 위해 현실성을 완전히 희생시켰음이 명백해집니다.
<호스티지>는 현실 정치의 복잡성을 스릴러의 단순한 플롯 장치로 환원시킵니다.
NHS 위기를 플롯 장치로 활용: 시리즈는 영국-프랑스 정상회담의 초기 동기로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암 치료제 부족 사태를 제시합니다. 이는 현실 세계의 복잡한 정치적 쟁점이지만, 시리즈는 이를 깊이 있게 탐구하기보다는 납치 사건의 배경으로만 소모하고 넘어갑니다. 즉, 진지하게 다루는 주제가 아닌, 이야기의 시작을 위한 맥거핀에 불과합니다.
만화적인 음모: 적대 세력은 해체된 부대 출신의 불만 군인들로, 리빙스턴 장군과 복수심에 불타는 존 셰이건이 이끕니다. 그들의 동기는 개인적인 복수(과거 돌턴이 내린 철수 명령으로 셰이건의 약혼자가 사망)와 군 예산 삭감의 어리석음을 증명하기 위해 국가를 불안정하게 만들려는 욕망이 뒤섞여 있죠. 평론가와 시청자들은 이러한 동기가 살인과 테러를 포함한 정교한 국제적 음모로 이어지기에는 “미약하고 모호하다”고 비판하며,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극우’라는 꼬리표: 시리즈는 국방부 장관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등 악당들을 ‘극우’, ‘애국’과 같은 현대 정치의 불안을 자극하는 용어와 연결 짓습니다. 하지만 이는 극단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 없이, 단순히 ‘나쁜 놈’이라는 손쉬운 딱지를 붙이는 데 그칩니다. 이는 정치적 스릴러 장르에서 흔히 나타나는 피상적인 접근 방식이죠.
이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현실적인 설정은 시리즈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적 울림을 무력화시키는 연쇄 반응을 일으킵니다. 이 시리즈는 시청자에게 “지도자는 국가를 위해 가족을 희생해야 하는가?”와 같은 심각한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질문이 제기되는 상황 자체가 총리 배우자에 대한 경호 부재나 다우닝가 10번지로 반입되는 폭탄 노트북과 같은 터무니없는 설정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시청자들은 주제적 ‘만약에(what if)’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how)’와 ‘왜(why)’라는 서사적 허점을 지적하는 데 인지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몰입’은 시청자와의 계약입니다. 제작진의 ‘게으른 글쓰기’로 이 계약을 반복적으로 파기함으로써 이 시리즈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권리를 스스로 포기합니다. 결국, 페미니즘적, 정치적 질문들은 내부 논리가 부재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서사 세계 속에서 공허한 메아리로 남게 됩니다. 스릴러적 요소가 정치적, 페미니즘적 요소를 잠식해 버리는 것이죠.
<호스티지>는 훌륭한 야심이 결함 있는 실행으로 인해 좌절된 사례입니다. 이 시리즈는 일회성으로 즐기기 좋은 빠른 속도의 정주행용 콘텐츠로는 성공했지만, 진지한 정치 드라마나 의미 있는 페미니즘 텍스트가 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평단과 대중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 현상은 이 시리즈의 핵심적인 역설을 최종적으로 증명합니다. 로튼 토마토에서 평론가 신선도 지수는 81-88%에 달했지만, 관객 점수는 44-48%에 불과했으며, 메타크리틱에서도 평론가 점수 62점 대비 유저 점수는 4.8점으로 큰 격차를 보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취향의 차이가 아닙니다. 평론가들은 배우들의 연기와 빠른 전개에 집중하며 서사의 허점을 장르적 관습으로 용인했지만, 대중은 비현실적인 전제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이는 작품에 대한 몰입을 가로막는 극복할 수 없는 장벽으로 작용했습니다.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이 시리즈는 여성 리더십에 대한 강력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여성이 권력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들의 서사는 여전히 개인적 관계와 가정 문제에 의해 규정된다는 포스트페미니즘적 비전을 보여줄 뿐입니다. 캐스팅에서는 진보를 이루었지만, 작품의 근본적인 개념에서는 진보하지 못한 것이죠.
정치 스릴러로서 <호스티지>는 재미있지만, 궁극적으로 공허하고, 기억에 남지 않는 작품입니다. 진부한 설정에 의존하고 현실성을 무시함으로써 <외교관>과 같은 지적으로 더 정교한 작품이나 절차적 현실성을 더 잘 구현한 <보디가드>보다 낮은 수준에 머무릅니다.
결국 <호스티지>는 스스로 내세운 장르적 관습의 인질이 되고 말았습니다. 빠르고 격렬한 스릴러가 되려는 노력 속에서, 정치적, 페미니즘적 메시지에 울림을 부여하는 데 필수적인 신뢰도를 희생시켰죠. 그 결과, 훌륭한 연기와 세련된 제작에도 불구하고, 내실은 텅 빈 공허한 껍데기만 남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