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에서 마주한 권태와 무기력
내가 삶에서 가장 불행했던 순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였다. 그 고요함은 평화가 아니라, 나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공허에 가까웠다. 프랑스의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일찍이 "인간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방 안에 조용히 머무를 수 없다는 데 있다"고 통찰했다.
버지니아 대학 연구팀의 실험은 그의 말을 현대적으로 증명한다. 아무런 외부 자극 없이 오직 자신의 생각과 15분간 마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참가자들은 극심한 불편함을 호소했고 심지어 '고통스러워 피하고 싶다'던 전기 충격을 스스로 가하는 쪽을 택했다. 고요를 견디느니 차라리 고통을 선택하는 현대인들. 지방 소도시의 숨 막히는 권태 속에서 파멸해 간 플로베르의 엠마 보바리처럼, 인간은 안락함 속의 텅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하도록 설계된 존재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잡지 마감 직후,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간 뒤 찾아오는 고요는 성취감보다 공포에 가까웠다. 치열했던 폭풍이 지나간 자리의 적막을 견디지 못해 나는 다음 호의 아이템을 억지로 쥐어짜거나 의미 없는 술자리로 나를 내던지며 그 텅 빈 공간을 어떻게든 메우려 발버둥 쳤다. 그저 방 안에서 혼자, 조용히 머무르지 못해서였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접해온 동화책, TV 드라마, 영화는 대부분 ‘Happily Ever After(그리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난다. 하지만 누구도 ‘그 후’에 닥쳐올 고요와 권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는 한국에서 잘 다니던 패션지 에디터 생활을 그만두고 태국의 외딴섬 꼬따오로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떠났다. 하루 서너 시간을 출퇴근에 쓰며 지하철에서 보내고, 맛있는 점심 한번 먹어 보겠다고 식당 앞에 길게 줄을 서고, 점심을 다 먹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며 다시 회사로 돌아가던 나는 늘 일상에서 권태에 허덕였다. 하루하루 다를 바 없는 직장인의 쳇바퀴 속에서 나는 점차 흔해 빠진 시니컬한 도시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교복만 안 입었지 고등학교의 연장선 같았던 서울을 나는 그렇게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주사위 게임을 잘하는 방법은 주사위를 아예 최대한 멀리 던져버리는 것이라는 영국 속담을 실행에 옮긴 셈이었다. ‘별은 별빛을 찾는 사람을 위해 빛난다’는 순수한 낭만을 마음에 품고 도착한 파라다이스. 눈 뜨면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 스쿠터로 5분이면 도착하는 직장. 하지만 이 아름다운 휴양지에서도 노동 없는 삶은 지속될 수 없었다.
파라다이스에서도 시스템을 벗어나 살아가기 위한 '티켓값'은 끝내 치러야 했다. 보스가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다국적 강사 과정 코스를 나 혼자 2주간 끙끙대며 끌고 갔던 적이 있다. 4대 보험도, 연차도 없는 곳에서 국적이 제각각인 사람들의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중압감도 컸다. 스태프 강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저마다 스트레스 레벨도, 가치관도, 문화를 다루는 방식도 전혀 다른 다섯 명의 예비 강사들을 2주간의 마라톤 같은 코스 동안 이끌어야 했다. 극한의 상황에서 어느새 나는 "더 배워서 더 나은 다이버, 더 나은 트레이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며 한국에서처럼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오른쪽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더, 더, 더'를 외치지 않으려 이곳에 왔건만, 나는 또다시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서울에서처럼 스스로 번아웃의 문을 열고 있었다.
그 번아웃의 틈새로 결정적인 균열이 찾아왔다. 세상과 나를 연결해 주던 유일한 통로, 3년 동안 쓴 내 노트북 모니터에 줄이 가더니 화면 전체가 나가버린 것이다. 서비스 센터 따위는 기대할 수 없는 작은 섬. 모니터를 고치기 위해 이웃에 있는 더 큰 섬으로 노트북을 보냈지만, 내가 지내던 섬의 우체국에서 보낸 소포는 페리를 타고 메인랜드를 거쳐 다시 이웃 섬으로 들어가는 비효율적이고 기나긴 여정을 거쳐야 했다. 그렇게 강제로 다이빙 예약을 멈추고 텅 빈 시간에 덩그러니 남겨진 한 달. 모든 게 정교하게 연결된 세상에서 마치 나만 빼고 자기들끼리 짠 시나리오로 '몰래카메라' 장난을 치는 것은 아닐까 피해의식에 시달렸다. 자유를 그토록 갈망했으면서, 막상 완벽한 자유와 아무것도 책임질 필요 없는 고요가 한꺼번에 주어지자 이를 주체하지 못하고 극심한 패닉과 무기력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한국 사회에서 어른들이 "넌 꿈이 뭐니?"라고 묻는 것은 사실 "이다음에 커서 너는 뭐가 되어 돈을 벌 거니?"라는 자본주의적 폭력과 다름없었다. 순수하게 좋아서 시작한 다이빙조차 타인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을 내 주머니에 넣을 생각을 시작하는 순간 낭만은 끝이 났다. 의미를 찾기 어려워진 노동, 그리고 팬데믹으로 인해 젊은 배낭여행자들의 순환이 멈추고 고인 물이 되어버린 섬. 90년대, 낭만을 좇아 들어왔던 이 섬으로 들어온 나이 든 유러피언 이방인들은 특유의 생기를 잃고 은근히 심술궂은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작고 외딴 섬은 자신의 부를 과시할 관객이 없기에 부자도 셀럽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대도시의 부자들과 힙스터들이 연휴를 맞아 각종 스포츠카를 끌고 섬에 들어왔다가 주차할 곳도, 달릴 길도 찾지 못해 웃음거리가 되고, 프라다든 샤넬이든 일 년 내내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에겐 의미가 없어 결국 부자들은 더 큰 휴양지 같은 도시화된 섬으로 떠나버린다. 자신이 가진 부와 물건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부러워할 타인의 시선이 없으면, 욕망으로 굴러가는 그들의 삶은 지루해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한때의 나 또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패션지 에디터라는 명함 뒤에서, 나는 내가 가진 취향과 물건들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끊임없이 의식하며 그 피드백을 동력 삼아 권태를 버텼다. 전시할 관객이 사라진 이곳에서 느낀 공허함은 결국 나 역시 내면의 단단한 중심이 아닌 타인의 시선이라는 파동 위에 위태롭게 서 있었음을 증명하는 통증이었다.
나는 동남아의 아마존 같은 '라자다' 온라인 쇼핑몰을 의미 없이 스크롤하며, 호루라기 불고 10초 세는 동안 짝을 찾는 의자 뺏기 게임에서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듯한 공허함을 느꼈다. 욕망의 상징이자 자본주의의 꽃인 패션지에서 일했던 과거가 무색하게도, 티셔츠 한 장과 플리플랍 하나면 충분한 이 섬에서 나는 더 이상 사고 싶은 것도, 필요한 것도 없었다. 이 세상에 없는 듯 조용히 살고 싶다가도 누군가 나를 알아봐 주길 바라는, 지독한 모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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