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종말이 와도 우리는 분리수거를 한다

사과나무 대신 종량제 봉투를 심는 사람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

by 조하나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 여파로 치솟은 유가와 인플레이션 우려로 전 세계가 요동치는 가운데 유독 한국 전역의 마트와 편의점에서 생필품이 아닌 '종량제 쓰레기 봉투'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다른 나라의 시민들이 텅 빈 진열대에서 식량과 생수를 쓸어 담고 주유소에 길게 줄을 서며 다가올 붕괴에 대비할 때 한국 사람들은 동네 마트를 돌며 비닐봉지 다발을 사 모은다. 생존을 담보할 식량도, 화장지도 아닌 쓰레기 봉투가 동이 나는 이 기막힌 현상을 뉴스는 건조한 어조로 타전하고 있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누군가 우아하게 선언했던가. 2026년 한국 사회는 이 숭고한 철학적 명언을 비틀어버린다. "내일 세상에 종말이 와도 나는 오늘 한 다발의 20리터짜리 종량제 쓰레기 봉투를 쟁여두겠다."



지구 반대편에서 수만 명의 목숨이 지워지는 물리적인 멸망이 다가오는 와중에도 내 집 쓰레기만큼은 동사무소 마크가 찍힌 규격 봉투에 담아 합법적으로 버리고야 말겠다는 이 지독한 강박. 인류 멸망의 전야에 사람들이 비축하는 것이 사과나무가 아니라 종량제 쓰레기 봉투라는 사실에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이 촌극을 곱씹다 보면, 우리는 어쩌면 가장 참혹하고 부조리한 블랙 코미디의 한가운데를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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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상품화와 침묵하는 요새



지금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짓은 어떤 수사로도 포장할 수 없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자 전쟁 범죄다. 미국의 이란 여자 초등학교 공습은 175명의 이란 어린이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후에도 미국과 이스라엘은 무차별적인 공습을 멈추지 않았다. 2026년 4월 현재, 이란의 민간인 사망자 수는 이미 수만 명 단위로 치솟았다.



피난민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는 임시 대피소와 구호 물품 보관소, 심지어 국제기구가 직접 지원하는 병원들마저 테러 세력의 은닉처라는 기만적인 명분 아래 매일같이 잿더미로 변하고 있다. 식수와 전기가 완전히 끊긴 폐허 속에서 건물 잔해에 깔려 생사조차 파악되지 않는 실종자들까지 포함하면 그 참혹한 피해 규모는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다.



그러나 이 세계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전혀 전범국으로 대하지 않는다.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폭격에 희생되는 참혹한 상황 속에서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란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과 조롱, 'CRAZY BASTARD'라는 욕설까지 쏟아내며 지금까지 몇 번이고 연장된 '데드라인'을 또다시 통보했다. 제발 누군가 이게 한여름 밤의 꿈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더 끔찍한 비극은 살육을 방관하는 국제사회의 묵인과 주류 매체의 기만적인 보도 태도에 있다. 외신 기자들과 국회, 주류 언론과 평론가들이 매일같이 쏟아지는 수천 구의 시신과 피 묻은 아이들의 신발 앞에서는 철저히 침묵하면서도, 지도자의 광기 어린 막말과 조롱을 두고는 마치 대단하고 진지한 외교적 쟁점인 양 분석하며 떠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포탄의 굉음과 짙은 피 냄새는 권력자의 천박한 막말 한마디에 너무나도 쉽게 덮여버린다. 진짜 다뤄야 할 민간인 학살의 본질은 지워지고, 권력자의 자극적인 텍스트 한 줄만이 세상의 이목을 독점하며 소비된다. 최소한의 인류애마저 자본과 권력의 논리 앞에 완벽하게 증발해 버린, 이성을 잃은 거대한 촌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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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날갯짓이 불러온 규격화된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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