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오늘 와서 내일 머무는 사람

나는 세상의 가장자리에 서도록 운명 지어졌다

by 조하나



I don't belong here


라디오헤드의 'Creep'은 내 인생의 배경음악 중 하나다. 톰 요크의 나른하고도 처절한 읊조림을 들을 때면 마음속 깊고 서늘한 방의 문이 열리는 기분이 든다.


'I don't belong here(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아)'라는 가사는 태어난 순간부터 내 등 뒤에 그림자처럼 들러붙어 있던, 내 삶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명제이자 내밀한 고백과도 같다. 수많은 인파가 어깨를 부딪치며 걷는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혹은 화려한 조명과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번잡한 공간 속에서도 나는 늘 투명한 유리벽 너머에 있는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들이마시는 그 뜨거운 소속감과 연대의 공기 속에서 나만 홀로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지독한 이방인의 감각은 내가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집요하게 나를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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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기원


이 감정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린 날의 나와 마주하게 된다. 내 삶의 외형은 이전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가족들은 여전히 내 곁에 있었고, 일상은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잘 굴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스위치를 내린 듯 꺼져버렸다. 주변의 어떤 것과도 감정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마치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장소를 그리워하고,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누군가를 애도하는 듯한 기이한 상실감이 오래도록 나를 잠식했다. 세상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종잇장처럼 얇게 느껴졌다. 이 비참하고 당혹스러운 감정은 아주 오랫동안 내 젊은 날을 옭아맸다.


웨일스어에는 '히라에스(Hiraeth)'라는 단어가 있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어쩌면 애초에 존재한 적조차 없는 시간과 장소에 대한 짙은 향수와 슬픔을 뜻한다. 타향살이의 물리적인 외로움을 뜻하는 '향수병'과는 다른 차원이다. '히라에스'는 수백 년간 강대국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으며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철저히 탄압당했던 켈트족의 후예들이 만들어낸 집단 무의식의 언어이다. 영원히 잃어버린 찬란한 과거와 영토를 애도하는 짙은 마음이 담겨 있다. 이는 한국인들이 숱한 외세의 침략과 분단을 겪으며 뼛속 깊이 새긴 '한(恨)'의 정서와도 맞닿아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내려와 평생 닿을 수 없는 북녘의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해야 했던 실향민의 짙은 망향의 설움처럼 결코 되찾을 수 없는 완벽한 세계에 대한 영혼의 앓음과 같은 것이다. 현재의 세상이나 사회에 도무지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이 완전히 다른 시대나 엉뚱한 행성에 태어났어야 했다고 느끼는 기묘하고도 근원적인 고향 상실감. 나는 내 삶이 누군가와 뒤바뀐 잘못된 삶이라는 느낌 속에서 어린 나이에 그 단어의 맹독을 온몸으로 앓아내고 있었다.


동시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비디오 게임 속 가상의 인조인간 같은 불가능한 대상에게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리머런스'를 겪기도 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리머런스는 특정 대상에게 병적으로 몰두하며, 그 대상이 내 곁에 없으면 내 삶 자체가 불완전하고 완전히 무의미해진다고 믿는 맹목적인 애착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말로 풀자면 '망상적 집착'이나 '맹목적 환상'에 가까울 것이다. 현실에서 채울 수 없는 소속감과 텅 빈 결핍을 나를 구원해 줄 가상의 존재에게 맹렬하게 투영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혼란은 '어딘가에 이 감정을 사라지게 할 무언가가 존재하며, 그것을 찾기만 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라는 지독한 강박이 만들어낸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살 자신이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할 자신이 없었다. 고장 난 영혼의 자조가 아니라 내 자아를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저항이었다. 칼 융은 인간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페르소나', 즉 사회적 가면을 쓴다고 했다. 무리에서 튀지 않고 타인과 무난하게 어울리기 위해 자신의 진짜 감정과 본성은 깊이 숨긴 채, 세상이 요구하는 '정상적인 학생', '평범한 직장인', '사교적인 어른'이라는 정해진 배역을 완벽하게 연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가면에 나를 욱여넣고 주류의 궤도에 맞춰 매끄럽게 연기하는 일에 극심한 거부감과 피로를 느꼈다.


세상이 요구하는 정답을 흉내 내는 대신 그 뼈아픈 불화의 감각을 껴안기로 한 것, 그것은 융이 말한 온전한 나를 찾아가는 '개성화'의 험난한 첫발이었다. 개성화란, 집단이 덧씌운 획일적인 가면들을 하나씩 벗어던지고, 내면 깊은 곳에 억눌려 있던 고유하고 독창적인 '진짜 자아'를 깨워 통합해 나가는 심리적 독립 과정이다. 나는 남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안온함을 포기하는 대신 고독하더라도 유일무이한 나 자신으로 존재하겠다는 치열한 결단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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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를 이탈한 경계인


물론 처음부터 이 결단이 매끄러웠던 것은 아니다. 나는 20대 홍대의 클럽에서 주류에서 밀려난 이들의 자유롭고 날 것 같은 언더그라운드와 아웃사이더들의 열기를 온몸으로 호흡했고, 이후 약 10년 동안 매거진의 피처 에디터로 일하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르고 화려하게 돌아가는 트렌드의 심장부인 서울 한복판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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