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

수십억짜리 허공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만큼 공허한 게 있을까

by 조하나


<응답하라 1988>과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 사람들의 삶은 다들 거기서 거기였다. 과하게 넘치지도 않았고 과하게 부족하지도 않았다. 골목을 공유하고 비슷한 형태의 집에서 비슷한 반찬 냄새를 풍기며 살아가는 풍경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위화감을 느낄 틈이 없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함께 골목 구석구석을 뛰어다니고 한 집에 몰려가 밥을 얻어먹고 다른 집에 몰려가 함께 잤다. 마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골목길 풍경처럼, 저녁때가 되면 골목 어귀에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찌개와 반찬을 담은 그릇들이 집집마다 바쁘게 오갔다.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를 빤히 알 만큼 물리적, 정서적 거리가 가까웠던 그 시절, 가난은 조금 불편할지언정 결코 수치스럽거나 삶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질병이 아니었다. 반에서 유독 잘 사는 티를 내는 아이들은 오히려 친구들 사이에서 은근한 배척을 당하곤 했다. 부를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촌스럽거나 예의 없는 행동으로 여겼고, 부자라고 해서 특별히 대우해 주지 않는 정서가 사회 기저에 암묵적으로 깔려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견고했던 공기마저 산산조각 낸 거대한 분기점이 있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였다. '평생직장'이라는 신화가 무너지고 어제까지 평범하게 인사를 나누던 이웃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는 참혹한 풍경을 목격하면서 대한민국 사람들의 뇌리에는 지독하고도 서늘한 '생존의 법칙'이 각인되었다. 국가는 나를 지켜주지 않으며, 오직 내 주머니 속의 돈만이 나와 내 가족의 생명줄이라는 벼랑 끝의 감각. 어제의 다정한 이웃이 오늘의 무한 경쟁자가 되어버린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골목 공동체가 주던 따뜻한 안전망은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텔레비전에서 당시 유명했던 여배우 김정은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 이 카드회사 광고는 카피를 넘어선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었다. 그전까지 속물적이라고 여겨지며 애써 감춰왔던 부에 대한 갈망이, 생존이라는 거대한 명분 아래 단숨에 가장 고결한 시대적 미덕으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노골적으로 돈을 욕망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면죄부였고, 대한민국은 그날 이후 완벽하게 '돈 있으면 가장 살기 편한 나라'로 맹렬하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물질을 향한 맹목적인 질주를 가장 기괴한 형태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한국의 부동산, 특히 아파트다. 콘크리트로 겹겹이 쌓아 올린, 흙 한 줌 밟을 수 없는 저 허공 위 닭장 같은 네모난 한 칸이 수십억 원을 호가한다. 평생 토목건축 일을 해오신 아빠에게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아빠, 저 하늘에 붕 떠 있는 공간에 어떻게 값을 매기고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거야?" 아빠는 늘 "사람은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태어나 성장하는 동안 우리 가족은 단 한순간도 아파트를 욕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한국 사회에서는 단단한 땅에 뿌리를 내리는 대신 누가 더 높고 화려한 허공을 선점하느냐가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척도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그 허공의 소유권을 얻기 위해 평생을 바쳐 빚을 갚는다.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는 단지 비바람을 피할 주거 공간을 사는 행위가 아니다. 한강 뷰, 역세권, 명문 학군이라는 타이틀을 통해 '나도 이 사회의 주류에 무사히 속해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타인의 부러움을 사는 그 무형의 욕망에 수십억의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주거 공간이 아니라, 물질 만능주의와 인간 욕망의 가장 완벽한 발현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수십억짜리 콘크리트 상자 안에서 어린 시절의 그 북적이던 골목을 영영 잃어버린 채 철저히 고립된 욕망의 섬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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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없는 섬의 람보르기니: 부(富)는 타인의 시선을 먹고 자란다


소유권이라는 개념의 허상에 대한 의문은 한국의 하늘 위에서만 멈추지 않았다. 2020년,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나는 멕시코에 머물고 있었다. 하늘길이 끊기고 국경이 봉쇄되면서 꼼짝없이 6개월을 그곳에 갇혀 지내야 했다. 짙은 불안과 고립 속에서 시간을 견뎌낸 후 잠시 한국에 돌아왔지만, 전염병의 기세가 여전하던 때 나는 다시 짐을 꾸려 내가 오래 살았던 태국의 작고 외딴섬으로 향했다. 바이러스의 공포와 겹겹이 통제된 도시의 삶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오직 자연의 시간표대로 굴러가는 그곳으로 도망치듯 돌아간 것이다.


문명과 적당히 단절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그 섬에서 나는 문득 한 친구에게 물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 작고 외딴섬의 땅에 사람들이 소유권을 가지게 된 걸까?" 원래 자연의 것이었던 땅에 선을 긋고, 종이 쪼가리 하나로 내 것이라 우기는 이 우스꽝스러운 합의는 과연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수천 년 동안 누구의 것도 아니었던 모래사장과 야자수 숲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조각조각 분할되었다고 생각하니, 소유라는 것 자체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얄팍한 시스템의 발명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섬의 파도 소리 사이로 명확해졌다.


그 외딴섬에서 나는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여주는 기막힌 블랙 코미디를 목격했다. 당시 태국은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겨 경제적인 직격탄을 맞은 상태였다. 궁여지책으로 자국민의 국내 여행을 진흥하는 정책을 펼쳤고, 그 덕에 방콕 대도시에 사는 젊은 신흥 부자들이 내가 살던 이 조용한 섬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들이 방콕의 화려한 아스팔트 위에서나 어울릴 법한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카를 배에 싣고 섬까지 들어왔다는 것이다. 마치 이 섬이 자신들의 부를 전시할 거대한 야외 쇼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살던 그 섬에는 신호등이 없었다. 섬 전체 제한 속도는 40km였다. 섬에 사는 사람들은 걷거나 낡은 스쿠터를 타고 다녔다. 지면이 고르지 않은 좁은 골목과 흙먼지 날리는 길에서 바닥에 바짝 붙어 달리는 슈퍼카는 다닐 수 있는 도로도, 번듯하게 세워둘 주차장도 없었다. 움푹 파인 웅덩이를 피하려 쩔쩔매며 거북이걸음을 하는 수억 원짜리 스포츠카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주차장을 찾지 못해 좁은 도로를 막고 있다 섬사람들에게 따끔한 눈총을 받는 운전자들은 무엇이 잘못인지 전혀 모르는 듯했다. 엔진의 굉음을 내며 섬의 고요를 깨는 슈퍼카는 현지인들에게 그저 거추장스러운 민폐 덩어리였고, 그 차를 몰고 온 부자들은 어딜 가든 사람들의 눈총과 욕을 먹어야 했다.


섬사람들 중 그 누구도 그들이 걸친 샤넬 명품백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루 종일 늘어난 티셔츠 한 장에 맨발, 혹은 플립플랍 하나면 완벽하게 행복할 수 있는 생태계에서 값비싼 명품은 오히려 움직임을 제약하고 섬에서의 아름다운 하루를 망치는 거추장스러운 도구일 뿐이었다. 해변에 화려한 명품을 두르고 나타났던 사람들은 결국 바닷물 소금기에 비싼 가죽 가방이 망가졌다며 얼굴을 붉히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들은 섬의 찬란한 자연을 온전히 누리는 대신, 자신들이 짊어지고 온 '비싼 짐'을 모시느라 전전긍긍했다.


그 촌극을 가만히 지켜보며 나는 아주 서늘한 진리를 깨달았다. 우리가 그토록 좇는 '부(富)'라는 것의 가치는, 결국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봐 주고 부러워해 주어야만 비로소 가치를 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부는 결코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아니다. 타인의 시선과 인정이라는 관객이 존재하지 않는 무대 위에서, 부가 가진 권력은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증발해 버린다. 아무도 우러러보지 않는 무대 위에서, 무거운 금관을 쓰고 서 있는 일은 그저 거추장스러운 노동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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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전시되는 욕망과 시스템에 장악당한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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