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각자도생을 넘어, 연대의 바위로
조용하고 평온한 시골 마을에 온전히 몸을 누이고 창밖을 바라볼 때면 쫓기듯 도망쳤던 십여 년의 이방인 생활이 아득한 꿈처럼 느껴진다. 바깥에서 유빙처럼 떠돌며 밖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나의 조국은 늘 위태롭고도 찬란했다. 낯선 이국의 땅에 머무는 동안 텔레비전과 매체 너머로 비치는 한국은 세계가 열광하는 매혹적인 문화 강국이자 경이로운 경제 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화려한 쇼윈도 너머에 어떤 지독한 희생과 피로가 웅크리고 있는지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불과 반세기라는 짧은 시간 안에 세계가 경악할 만한 압축 성장을 이뤄냈지만, 그 눈부신 영광의 이면에는 짙고 어두운 흉터가 길게 패어 있다.
모든 것이 숫자와 꼬리표로 매겨지는 사회. 물질만능주의와 외모 지상주의는 단단한 껍질처럼 사람들의 내면을 옭아맸고, 숨 막히는 무한 경쟁과 얄팍한 성과주의는 어느새 일상의 당연한 문법이 되어버렸다. 과정의 정당성이나 삶의 다채로운 가치보다는 오직 결과의 화려함만이 칭송받는 기형적인 토양 속에서 평범한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착취해야만 했다. 부의 양극화가 낳은 극심한 사회적 압박은 결국 청춘들의 영혼을 갉아먹었고,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불빛 아래서 우울증과 자살률, 저출생 1위 국가라는 참혹하고도 서글픈 성적표를 받아 들어야만 했다. 숨을 쉬기 위해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가라앉는 모래늪 같았던 그 억압적인 공기가 두려워 나는 기어코 짐을 싸서 고국을 등졌던 것이다.
끔찍하게 싫고 숨이 막혀 영영 도망치고 싶었던 부조리투성이의 사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여 년의 긴 우회를 거쳐 다시 돌아온 나는 이 나라를 온전히 미워할 수가 없다. 그 깊은 상처와 진물 나는 고통 위에서도 기어이 삶을 건져 올리고, 무너지지 않은 채 지금까지 꿋꿋하게 버텨온 이 공동체가 돌이켜볼수록 너무나도 장하고 기특하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빈곤을 벗어나 자식들에게만큼은 풍요를 유산으로 물려주기 위해 자신의 청춘과 존엄을 기꺼이 갈아 넣었던 기성세대의 굽은 등, 그들이 흘린 피와 땀, 눈물겨운 희생의 무게를 이제는 온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폐허에서부터 무자비한 자본의 폭풍, 그리고 수많은 사회적 참사와 국가적 위기 앞에서도 끝내 주저앉지 않고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일어선 그 억척스러운 저력을 알기에 나는 결국 이 척박한 사회를 다시 껴안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흠결이 많아서 상처투성이인 채로 쉼 없이 내달리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 왈칵 눈물이 나는 곳. 한국은 나에게 그 무엇으로도 끊어낼 수 없는 지독한 애증이자,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엽고 강인한' 내 나라다.
나의 정치적 기억의 시작점은 봄바람이 불던 어느 날, 아빠의 따뜻한 손을 잡고 향했던 투표소의 들뜬 풍경에 머물러 있다. 생애 첫 투표권을 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기표 도장을 찍었을 때 아빠와 나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공유하고 있었다. 기득권을 타파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내일을 향한 희망이 있었고, 우리의 한 표가 사회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순정한 믿음의 증명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우리의 시선은 서서히, 그러나 결정적으로 엇갈리기 시작했다. 아빠는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MB에게 표를 던지며 "우리는 아직, 파이를 더 키워야 해"라고 말씀하셨다. 가난을 이겨내고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기성세대의 눈에는 여전히 물질적 성장이 시대의 절대적 과제이자 선(善)이었고, 파이가 커지면 언젠가 그 부스러기라도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88만 원 세대'라는 서글픈 이름표를 달고 비정규직과 무한 스펙 경쟁의 세상에 내던져진 내가 마주한 현실은 전혀 달랐다. 나라에 돈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넘쳐나는 국부는 철저히 주류 기득권 세력에게 편향되어 있었고, 청년들의 노동력을 값싸게 쥐어짜며 견고하게 굳어진 독식 시스템과 망가진 분배 구조가 모든 고통의 근원이었다. 파이가 아무리 커진들, 우리의 몫으로 돌아올 접시는 애초에 치워져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차마 보수당에 표를 줄 수 없었다. 맹목적인 성장 논리에 밀려 희생되는 청춘들을 보며,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민주당에 투표했다. 적어도 그들은 약자의 편에 서서 이 잔인하게 무너진 구조를 바로잡아 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독재와 싸워 민주화를 이뤄낸 그들의 대의명분을 믿었다.
하지만 가장 깊은 환멸은 가장 믿었던 곳에서 찾아왔다. '민주 세력'을 자처하던 이들은 기득권이 되어버린 자신들의 위치를 망각한 채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젠더, 세대, 빈부의 갈등을 더욱 깊고 교묘하게 파고들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다. 선의의 가면을 쓴 채 뒤로는 자신들의 자녀에게 막대한 부동산과 주식을 증여했고, 그들만의 은밀한 정보와 네트워크로 최상위권 대학을 졸업시켜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그리고 돌아온 자녀들은 이 땅에서 너무나도 손쉽게 높은 자리를 꿰찼다.
'진보'라는 이름표를 달고도 부와 학벌을 세습하는 그들의 도덕적 불감증과 내로남불, 선의를 가장한 위선과 진짜 문제를 회피하는 무능에 짓눌려 우리 세대의 심장은 차갑게 식어갔다. 정의를 부르짖던 자들의 민낯을 목도하는 일은 노골적인 악을 마주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켜켜이 쌓여가던 절망이 임계점을 넘은 것은 2014년 봄, 세월호 참사라는 거대한 비극 앞이었다.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배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도 아무도 구하지 못했던 그 무능력하고 기괴한 시스템을 보며,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최소한으로도 지켜주지 못했다는 참담함 속에서 나는 이 부조리한 나라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출국을 앞둔 나에게 노란 리본 배지를 쥐여주며 아빠는 말씀하셨다. "미안하다. 우리가 망쳤다." 그 짧은 사과 속에는 파이를 키우느라 앞만 보고 달려왔건만, 정작 자식 세대의 안전과 미래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기성세대의 뼈아픈 참회와 무력감이 담겨 있었다. 성장의 논리가 생명의 존엄을 압도해 버린 괴물 같은 사회를 만들어버렸다는 쓰라린 인정이었다. 나는 그 무거운 리본을 짐가방 깊숙한 곳이 아닌 가슴에 품고, 마치 붕괴하는 세계에서 탈출하듯 쫓기듯 나의 조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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