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스피커의 추락과 맑아진 시민들

'뉴이재명'이 본 유시민의 궤변

by 조하나



생존의 시대, 한가한 '가치' 타령의 기만


2026년, 전 세계는 거대한 생존의 위기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평범한 이들의 식탁을 위협하고, 이민자 문제와 양극화로 인한 혐오 범죄가 국경을 넘어 번져나가는 시대다. 현재 세계 3차 대전으로 언제 어떻게 번질지 모를 미국/이스라엘 - 이란 전쟁이 진행 중이다. 이재명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UAE로부터 최우선 원유 공급을 약속받았고, 신속하고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바야흐로 하루하루의 '생존' 자체가 가장 치열한 시대정신이 된 이 시점에, 최근 유시민 작가가 <매불쇼>에 출연해 내놓은 이른바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ABC 분류' 발언은 지독한 위화감을 안겼다.


그는 기존의 핵심 지지층을 '가치'를 좇는 A그룹으로, 이재명 정부의 성공과 실용을 보고 유입된 세력을 '이익'을 좇는 B그룹으로 규정하며 후자를 강도 높게 맹폭했다. 이 얄팍한 이분법 앞에서는 실소가 터져 나온다. "밥 먹여주는 게 정치다"라는, 정치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가장 원초적이고 숭고한 본질이 철저히 거세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민들이 내 가족을 건사하고 팍팍한 삶의 질을 호전시키고자 하는 절박함은 천박한 '이익'으로 매도하고, 정작 현장에서 흙먼지 한 번 뒤집어쓰며 밥을 지어본 적 없는 자신들의 관념적이고 공허한 명분만을 고상한 '가치'로 포장하는 태도. 이것은 80년대 운동권 출신 엘리트 선비들이 수십 년간 고수해 온 낡은 특권 의식이자 대중을 향한 기만이다. 가치와 이익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 평범한 시민 모두의 이익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국가가 증명해야 할 가장 거대한 가치다.


나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해외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소속이나 계급장 없이 오직 나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는 훈련을 거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로 글을 쓸 때면 알게 모르게 자기 검열의 순간을 마주하곤 했다. 한 사람이 의견을 내면 그 메시지의 타당성을 살피기보다 "너 뭐 돼?"라며 학벌과 지위, 영향력부터 따져 묻는 한국 사회의 억압적인 공기 때문이다. 유시민이 <매불쇼>에 나와 '재래식 언론'이라는 조롱 섞인 신조어를 던진 바로 다음 날, 너도나도 자신이 대단한 지성인이라도 된 양 그 단어를 앵무새처럼 복제하며 으쓱거리는 빈곤한 담론의 풍경은 경악스럽다. 우리는 늘 "누구의 말에 따르면"이라는 거대한 권위자의 인용구 뒤에 숨어야만 안전감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견고하고 폭력적인 틀 안에 머물지 않으려 한다. 그 어떤 유명인의 이름표나 낡은 확성기를 빌리지 않고, 온전히 벼려낸 나만의 언어로 지금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하는 스피커 권력의 민낯을 해부할 것이다.





불안을 먹고 비대해진 신흥 종교, 그리고 '쇼핑몰' 비즈니스


우리 사회는 아주 오랫동안 극단적인 '디바이드 앤 룰(분할 통치)'의 희생양이었다. 문재인과 윤석열이라는 상징적 체제가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양 진영의 사람들은 중간 지대를 상실한 채 서로를 철저히 고립시켰다. 우리가 광화문을 가득 메웠던 '전광훈 극우 집회'의 폭력성과 맹목성을 보며 참담해했듯, 반대편의 시선에서는 과거의 '조국 수호 집회' 역시 한 치의 다름없는 거울 속의 데칼코마니였을 것이다. 이 기형적인 분열의 판을 완성한 것은 김어준, 최욱, 고성국, 전광훈, 전한길 같은 거대 스피커들이었다.





특히 12.3 내란 사태라는 헌정 초유의 공포와 불안을 통과하며, 대중은 정서적으로 기대고 뭉칠 피난처를 간절히 원했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강력한 누군가가 자기를 리드해 주기를 바란다니까." 영화 <서울의 봄> 속 전두광의 이 소름 돋는 대사는 지금 자칭 대안 언론이라 불리는 매체들의 소비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김어준 등 거대 스피커들이 남의 말을 함부로 끊고, 여성 앵커를 훈계하며 가르치려 드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데도, 지지자들은 이를 비판하기는커녕 통쾌한 '카리스마'로 소비하며 대리만족을 느꼈다. 권위주의를 타파하겠다며 모인 사람들이 뿜어내는 이 권위주의적 열망은 한국 정치 팬덤의 가장 비극적인 모순이다. 이들이 과연 한국의 '진보'를 대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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