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냄새와 땀방울로 빚어낸 생존의 미학
한국은 자본주의를 뜨겁게 열망하는 동시에 끔찍하게 혐오하는 나라다. 한국인들은 부동산 시세와 주식 창 앞에서 밤을 새우며 부를 향한 지독한 갈증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거대 자본의 횡포와 냉혹한 시장 논리를 향해 세상 그 어느 곳보다 격렬한 분노를 쏟아낸다. 자본이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유일한 방패로 작동하는 사회에서, 그 경쟁에서 밀려난 자들이 겪어야 하는 모멸감의 층위가 지독하게 깊기 때문이다. 이 모순적이고 펄펄 끓는 에너지가 바로 전 세계를 매혹시킨 한국 영상 콘텐츠의 심장이다.
자본주의를 탄생시키고 완성한 종주국은 물론 미국이다. 할리우드는 월스트리트의 마천루를 유려한 카메라 워크로 훑으며 금융가들의 도덕적 타락과 거대 기업의 시스템적 오류를 차갑게 조망하는 데 익숙하다. 서구의 창작자들에게 자본주의의 병폐란 합리적인 토론과 제도 개선을 통해 수리해야 할 거대한 기계 장치의 고장에 가깝다. 무기질적이고 이성적인 접근 방식이다.
하지만 한국의 카메라는 전혀 다른 냄새와 온도를 품는다. 비가 오면 변기 물이 역류하는 반지하의 곰팡내, 벼랑 끝에 몰려 살의를 품은 가장의 충혈된 눈,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어제까지 이웃이었던 이들의 목줄을 물어뜯는 아비규환의 진흙탕을 비춘다.
우리에게 체제의 모순은 거시적인 경제 지표로 남지 않고, 해체되는 가족의 식탁과 가장 밑바닥에서 핏빛으로 얼룩지는 생존 투쟁의 현장으로 곧장 곤두박질친다.
왜 한국은 자본주의의 맹독성을 이토록 기괴하고 끈적끈적하게 조형해 내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전의 한국 사회를 지탱하던 '발전국가' 체제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당시 한국은 서구의 보편적인 자유 시장과 확연히 달랐다. 한 번 입사하면 큰 이변이 없는 한 정년이 보장되는 '평생직장'의 굳건한 신화 아래, 기업은 직원의 주택 대출과 자녀 학자금까지 책임지는 일종의 거대한 가부장적 가족으로 군림했다. '재벌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의 맹신 속에서, 군부 독재의 억압적인 노동 환경조차 매년 7~10%를 오르내리는 폭발적인 고도성장의 낙관론으로 덮여 있었다. 개인은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착취당하면서도, '내일을 위해 오늘을 기꺼이 바친다'는 종교에 가까운 믿음으로 그 폭력성을 내면화했다.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개인이 단일한 운명 공동체로 묶여 있던 지극히 한국적인 성장 서사였다.
사회학자 장경섭이 주창한 '압축적 근대성'이라는 개념은 이 기형적인 시차를 명확히 해명한다. 서구 사회가 수백 년의 투쟁과 타협을 거쳐 안착시킨 근대 자본주의를, 한국은 전쟁의 폐허 위에서 불과 삼사십 년 만에 속성으로 이식받았다. 그 결과 경제적 외피는 최첨단을 걷고 있지만, 사람들의 내면과 사회적 관계망은 여전히 전통적인 가족주의에 결박되어 있는 모순을 잉태하게 되었다. 도시의 풍경과 빌딩 숲은 뉴욕이나 런던을 완벽하게 닮아갔지만, 그 안에서 경쟁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기저는 여전히 수백 년 전의 농경 사회에 머물러 있었다. 물질적 풍요는 빛의 속도로 달성했으나, 타인을 독립적이고 평등한 주체로 대우하는 근대적 합리성은 텅 비어 있는 위험한 진공 상태가 도래했다.
1997년 국가 부도 사태가 터졌을 때 351만 명의 국민이 227톤의 금을 모았던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헌신은 다 함께 잘살아보자는 집단적 열망의 결정체였다. 그러나 이 뜨거운 헌신 뒤에 찾아온 것은 철저한 배신감이었다.
IMF의 구제금융 조건으로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강제 이식되면서, 대기업이 낸 막대한 빚을 평범한 국민의 희생과 대규모 정리해고로 무마하는 끔찍한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평생직장과 국가를 가족처럼 믿었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각자도생의 지옥도로 내몰린 경험은 한국인들에게 실체적인 공포로 각인되었다. 탐욕스러운 거대 자본이 저지른 실패를 가장 성실했던 소시민들의 피땀으로 닦아낸 기만적인 회복 과정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연대 의식을 산산조각 냈다. 나를 지켜줄 것이라 굳게 믿었던 거대한 울타리가 가장 치명적인 흉기로 돌변해 등 뒤를 찌른 집단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한 세대의 영혼을 영구적으로 훼손시켰다.
미국 영화의 자본주의 비판이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는 데 집중한다면, 한국의 스릴러나 생존 게임에서 느끼는 가장 끔찍한 공포는 살인마의 등장이 아니라 굳게 믿었던 공동체(국가, 회사, 이웃)가 나를 버리고 이기적인 선택을 할 때 발생한다. 우리의 기저에는 여전히 남의 일에 참견하고 밥 한 끼를 나누려는 끈끈한 습성이 요동치는데, 현실의 시스템은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만 내가 생존하는 잔혹한 의자 뺏기 게임을 강요한다. 극복 불가능한 인지 부조화가 극도의 긴장감을 직조해 내는 것이다.
서구의 자본주의가 건조한 숫자의 거래라면, 한국의 자본주의는 피가 섞인 식탁에서 벌어지는 핏빛 생존극에 가깝다. 거대 체제의 폭력성을 추상적인 담론으로 두지 않고, 가장 살갑던 이웃이 서로의 숨통을 끊어놓는 내밀한 비극으로 끌어내리는 것. 여기서 전 세계 관객을 경악하게 만드는 한국 콘텐츠만의 파괴력이 폭발한다.
이러한 텍스트를 주도하는 이들은 1980년대와 90년대 군부 독재와 이데올로기 대립을 온몸으로 겪으며 사회 비판적 담론에 가장 뜨겁게 참여했던 8090 세대 감독들이다. 봉준호, 박찬욱, 황동혁 등으로 대표되는 이 창작자 집단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격렬한 변곡점을 통과하며 권력의 폭력성과 구조적 모순을 꿰뚫어 보는 비판적 시선을 단련했다. 거리에서 최루탄을 마시며 권력의 작동 방식을 탐구했던 이들의 저항 의식은, 2000년대 이후 거대 자본과 무한 경쟁 시스템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과거 광장에 흩뿌려지던 정치적 구호가 스크린 속으로 들어와 자본주의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메스로 진화했다.
이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거운 사회 비판 메시지를 스릴러, 호러, 블랙 코미디 등 대중적인 '장르 문법' 안에 세련되게 녹여낸다는 점이다. 계급 투쟁을 건조한 다큐멘터리로 풀지 않고 피 튀기는 생존 게임의 외피를 두르며,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개인을 극단적인 상황에 몰아넣어 체제의 민낯을 폭로한다. 서구의 지식인들이 강단에서 점잖게 불평등을 논할 때, 한국의 감독들은 반지하의 수해와 목숨을 건 줄다리기를 화면에 전시하며 관객의 신경줄을 자극한다. 거시적인 체제의 비극을 극강의 오락적 쾌감으로 치환하는 이 영리한 방식은 대중의 심리적 방어벽을 허물고 끔찍한 현실을 가장 직관적으로 체감하게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 영화 산업 자체가 극단적인 상업주의와 치열한 경쟁 시스템으로 굴러간다는 사실이다. 거대 투자 배급사가 제작부터 극장까지 독점하는 수직 계열화 구조 속에서, 관객의 즉각적인 선택을 받지 못한 작품은 단 며칠 만에 가차 없이 폐기 처분된다.
이 지독한 생태계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은 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고 예민한 한국의 관객들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전 세계 최초 개봉 일정을 한국으로 잡으며 테스트베드로 삼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에서 성공하면 세계에서 성공한다'는 명제는 이미 영화계의 불문율이 되었다. 봉준호, 박찬욱, 황동혁은 물론이고 이창동, 나홍진, 홍상수 같은 거장들이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전, 그들의 예술성을 가장 먼저 검증하고 단련시킨 이들이 바로 한국 관객이었다. 엄청난 문화적 감수성으로 무장한 이들은 얄팍한 오락물에 만족하지 않으며, 현실의 모순과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풍자하는 텍스트에 기민하게 반응한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예민한 후각과 수준 높은 관객의 매서운 눈초리를 통과하기 위해 창작자들은 서사의 밀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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