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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u Apr 12. 2024

완벽하게 이상하고 아름다운 영화 <가여운 것들>

두려움 없는 엠마 스톤의 이 연기를 보라!

    

*이 글은 영화 <가여운 것들>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 <가여운 것들> ⓒ 월트디즈니 코리아



작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을 시작으로 골든 글로브, 크리틱스 초이스, 런던 비평가 협회상, 영국과 미국 아카데미의 모든 여우주연상을 석권한 영화 <가여운 것들, Poor Things>은 엠마 스톤을 비롯해 마크 러팔로, 윌렘 대포, 라미 유세프 등이 출연하고, <송곳니>로 주목받으며 <킬링 디어>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해 온 그리스 출신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지휘했습니다.      

1992년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가여운 것들>은 신랄하면서도 기괴한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를 펑키하게 재해석해 여성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는다는 심오한 페미니즘 판타지로 재탄생시켰습니다. 블랙 코미디로 시작해 여성의 자유에 대한 파격적인 성찰로 발전하는 장르 파괴적 영화죠. 그레타 거윅의 <바비>보다 엉망이고 이상하고 무례하고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어느 시대, 어딘지 모를 유럽의 우아한 카페에서 클래식을 배경으로 ‘여성’이라는 생명체와 존재의 당위성을 논하는, 하지만 따분하고 뻔하기는커녕 지적인 탐구와 품격 있는 유머가 넘쳐나는, 우아한 대화의 희열을 느꼈습니다.        

 



지금 가장 ‘핫’한 스타일러, 요르고스 란티모스
     
영화 <가여운 것들> ⓒ 월트디즈니 코리아


<가여운 것들>엔 무례한 즐거움과 재치 넘치는 위트급진적인 판타지숨 막히게 아름다운 미술로 가득합니다. 엠마 스톤은 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대부분의 배우들이 꿈꿔온 역할을 두려움 없이 소화해 냅니다. 배우의 연기뿐 아니라 촬영의상음악비주얼프로덕션모든 것은 놀랍도록 기괴합니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것들을 영화라는 큰 그림 안에 모아 놓으면 오히려 ‘투 머치’가 되지만, 이 영화는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연출로 정점을 찍습니다. 바로, 감독의 놀라운 감각과 연출력의 마법이죠.      


<가여운 것들>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 이은 요르고스 감독과 엠마 스톤과의 두 번째 협업입니다. 2015년 처음 이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고, 처음엔 엠마 스톤에게 제작을 제안했다고 해요. 올해 6월 공개를 앞둔 요르고스 감독의 차기작인 <친절의 종류>에도 엠마 스톤이 출연합니다. <가여운 것들>에서 벨라의 다음 실험체로 출연한 마가렛 퀄리도 나오고요. 엠마 스톤과의 협업 3부작을 통해 요르고스 감독은 자신만의 시네마 스타일을 확고히 구축하며 발칙하고 기괴한 버전의 웨스 앤더슨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배우 일생일대의 연기를 목격한다는 건

영화 <가여운 것들> ⓒ 월트디즈니 코리아


특히 벨라를 연기한 엠마 스톤은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죠. 엠마 스톤의 연기는 깊이와 다재다능함, 역할에 맞는 신체적 특성으로 비평가와 관객 모두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풍부하고, 흥미롭고, 완전히 두려움이 없는 연기는 영화가 품고 있는 메시지와 에너지를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또한, 영화 자체만으로 감독과 배우 간의 신뢰와 케미스트리가 얼마나 높았는지 느낄 수 있죠.      


엠마 스톤은 엄청난 난이도를 지닌 역할에서 일생일대의 연기를 펼칩니다순진하고 어린아이 같은 상태에서 심오한 지성과 자율성을 지닌 여성으로 진화하는 벨라를 놀랍게 그려내죠. 특히 벨라의 어린 시절을 연기할 때는 기술적으로 정교한 코믹 연기를 선보이지만, 결국 성적으로 해방된 여성으로서 완전히 주도권을 잡을 때는 형용할 수 없이 매혹적입니다. 호기심, 기쁨, 혼란, 결단력 등 다양한 감정과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그녀의 능력은 캐릭터에 풍부함을 더해 벨라의 여정을 설득력 있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듭니다. 영화 시작부터 엄청난 호감도를 쌓으며 관객과 신뢰 관계를 쌓은 그녀는 관객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아무리 그녀가 뻔뻔스럽게 굴어도 우리는 금세 그녀의 편이 되고, 가부장적 억압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계속 그녀를 응원하게 됩니다.      


고드윈 박사를 연기한 윌렘 대포는 광기에 가까운 천재성을 지닌 남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기이하면서도 냉철한 연기를 선보입니다. 하지만 따뜻하죠. 자신 역시 아버지의 실험체로 쓰였으나 과학자로서의 경험에 매료되어 같은 일을 벨라에게 합니다. 다포의 연기는 창조, 윤리, 삶과 죽음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 대한 주제를 탐구하며 영화에 비판적 층위를 더합니다.     


던컨 웨더번 역의 마크 러팔로는 벨라의 연인이자 자신의 불안감과 통제에 대한 욕망으로 고군분투하는 적대자로서의 캐릭터의 진화를 담아내며 매력과 위협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연기를 선보입니다. 러팔로의 연기는 성별 역학 관계와 권력에 대한 영화의 탐구에 깊이를 더합니다. 한편, 러팔로는 이제껏 본 적 없는 방식으로 히스테릭하게 웃깁니다.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마초이자 허세 가득한 바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의외로 섹시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한심해지기도, 안쓰러워지기도 합니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스팀펑크 세계
     
영화 <가여운 것들> ⓒ 월트디즈니 코리아


요르고스 감독의 영화 대부분이 그렇듯 <가여운 것들>의 핵심은 진정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어색함에 관한 것이죠. 우리는 서로를 알고 싶어 하고, 또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합니다. 벨라는 깨달음을 얻고 진정한 자아로 거듭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자신을 통제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과 풍요로운 관계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한 젊은 여성이 탐험의 오디세이를 떠나면서 자신의 정체성이 원래부터 내면에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너무 뻔한 성장 드라마 스토리라고요? 허나 그 실행의 과정은 끊임없는 놀라움으로 가득합니다.      


기술 혁신의 정점으로 꼽히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AI 기술 혁신을 이뤄내고 있는 2024년에 만나는 건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대담한 상상력을 통해 벨라라는 독특한 여성이 기괴한 과학자 고드윈 백스터와 함께 사는 빅토리아 시대를 기이한 대체 세계(스팀펑크)로 창조해 냅니다.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영화의 주제와 등장인물들은 현대의 문제와 공명합니다. 화풍으로 말하자면 초현실주의에 가깝죠과학적 호기심의 대상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개인으로 거듭나는 벨라의 여정은 여성의 권리와 자기 결정권을 위한 페미니스트의 투쟁을 반영합니다. 벨라의 경험을 통해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성 규범과 도덕규범을 풍자하며, 성 평등, 신체의 자율성, 전통적인 성 역할의 해체를 위한 지속적인 투쟁을 촉구합니다.      


기괴한 과학 실험에 뿌리를 둔 이 영화의 전제는 과학적 탐구의 윤리적 경계를 비판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백스터 박사는 벨라를 부활시킴으로써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인간이 신을 연기하는 것의 도덕적 의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죠.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아니, 이미 우리가 마주한 미래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모든 것에 대한 반항
     
영화 <가여운 것들> ⓒ 월트디즈니 코리아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고도로 연극화된 배경에서 고드윈 박사의 수술대 위에서 다시 살아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벨라는 메리 셸리를 전복적으로 변형해 말 그대로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프랑켄슈타인 실험에서 섹스와 모험을 갈망하는 호기심 많은 소녀로, 그리고 마침내 격렬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진화해 갑니다. 성인의 몸과 신생아의 뇌를 가진 벨라는 모든 사회적 규범과 예의를 뒤집습니다그 어떤 자기 검열도죄책감도자발적인 행동 규제도 없죠자유분방한 변호사 던컨의 도움으로 세상을 보게 된 벨라는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게 되고, 자아실현을 향한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자신의 욕망과 몸그리고 남성에 의해 정복되는 영역이기를 거부하는완전한 자유사상가로서 벨라는 스스로 정체성을 책임집니다     


베니스 영화제 프리미어 이후 많은 평론가와 관객들은 엠마 스톤과 마크 러팔로의 육감적인 섹스 장면에 집중했습니다. 특히 엠마 스톤의 노출에 관심을 뒀죠. 여전히 여성 배우를 향한 시대와 사회의 시선은 남성 배우를 향하는 그것에 비하면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한 흥분 이상의 것을 추구하며, 영화의 대부분에서 섹스의 황홀함보다는 부조리함을 강조합니다.     


어떤 이들은 <가여운 것들>에서 벨라의 성 묘사 및 캐릭터와 관련해 영화의 노골적인 섹스 장면과 매춘 장면이 오히려 여성의 역할을 고정관념화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비판합니다하지만 벨라의 매춘 참여는 자아 발견과 자율성을 향한 그녀의 여정에서 중요한 지점으로 작용합니다. 벨라의 인생에서 이 시기는 영화에 묘사된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제약으로 여성들의 선택지가 제한적이었던 상황을 반영합니다. 벨라의 결정은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세상에서 생존과 주체성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행동입니다.      


<가여운 것들>에서 벨라를 연기는 엠마 스톤은 영화 속 벨라의 성적 경험 묘사는 캐릭터의 성장과 발견의 필수적이었다라며 배우로서의 확고한 의견을 드러냈습니다. 벨라를 자유롭고 자신의 몸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는 인물로 묘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하며, 이러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장면을 일부러 생략하는 건 캐릭터의 여정에 정직하지 못하다라고 했죠.    

  

영화 <가여운 것들> ⓒ 월트디즈니 코리아





모든 건 성장을 자극하고 이끄는 경험과 자극일 뿐
     
영화 <가여운 것들> ⓒ 월트디즈니 코리아


성적 욕망에 눈을 뜬 벨라는 이내 인간의 일차적 욕망에 지루함과 환멸을 느낍니다. 그녀는 인간은 대부분 끔찍하고, 세상은 고통과 가난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목격하게 되죠. 그녀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에머슨을 읽으며, 마음의 양식을 쌓기 시작합니다. 유럽 유람선 크루즈 여행 중이던 던컨은 벨라가 새 친구들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며 지적 토론을 벌인다고 질투하고 비난합니다. 던컨은 벨라의 자의식이 성장하는 게 싫습니다그저 자신이 시키는 대로 딱 세 마디만 따라 하면 되는 존재로 남길 바랄 뿐이죠.    

   

<가여운 것들>은 벨라가 매춘 업소에서 겪은 경험과 빈곤과 불공정에 대한 관찰을 통해 사회 계급과 착취의 문제를 다룹니다. 이러한 요소는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계층과 경제적 격차에 대한 비판을 암시하며 권력자의 약자에 대한 착취를 강조합니다.   

  

이 영화는 또한 벨라의 불우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참여를 통해 사회적 불의빈곤행동주의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영화의 비판과 사회의 불의에 대한 행동 촉구를 상징합니다. 사회적, 경제적 격차가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는 현대 사회에서 <가여운 것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공감사회적 인식행동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영화 <가여운 것들> ⓒ 월트디즈니 코리아





화려하고 기묘한 초현실주의
    
영화 <가여운 것들> ⓒ 월트디즈니 코리아


거친 흑백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벨라의 캐릭터가 발전하고 확장함에 따라 화려한 컬러로 전환됩니다. 그것도 단순한 컬러가 아닌, 각 프레임이 마치 손으로 색을 직접 칠한 빅토리아 시대의 엽서처럼 보이는, 기묘하고 초현실적인 이미지로요. 벨라의 시야가 넓어짐에 따라 영화의 모습도 그녀의 경험을 아우르도록 변화합니다. 또한, 벨라가 지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일관성 있는 각본과 재치 있는 내러티브로 진화합니다.      


재능 있는 촬영감독 로비 라이언이 어안 렌즈로 촬영한 빅토리아 시대의 스팀펑크 판타지 비주얼은 벨라의 눈에 세상이 얼마나 급진적으로 이상하게 보였을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저스킨 펜드릭스의 불협화음과 불규칙한 음악은 마치 벨라의 무의식에서 직접 흘러나오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의상은 또 어떻고요. <가여운 것들>의 의상은 단순한 복장이 아닌, 영화의 주제적 깊이와 캐릭터 전개에 크게 기여하는 내러티브 도구로 활약합니다. 영화 속 의상은 벨라의 변화를 반영하고소녀 시절 심플한 흰색 잠옷은 벨라의 여정의 다양한 단계를 통해 벨라의 심리적정서적 성장과 주변 세계에 대한 이해의 진화를 반영하며 소매가 부풀어 오른 정교하고 폭발적인 의상으로 진화합니다. 특히 영화에서 목부터 발끝까지 문신을 새기고, 새틴 바스트를 입은 파리의 사창가 주인 캐서린 헌터는 빅토리아 시대의 에이미 와인 하우스가 있었다면 저런 모습이었겠다, 했어요. 이 영화에서 의상 디자인은 정체성과 자율성, 재생에 대한 영화의 주제 탐구를 아름답고 우아하게 강조합니다.   

   

쇼나 히스와 제임스 프라이스의 미술 역시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고드윈 박사의 약간은 엉뚱한 집에서부터 고급스러운 리스본의 호텔, 비좁은 파리 매춘 업소에 이르기까지, 영화 속 각각의 배경은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역사적 이미지를 상상력으로 재창조해냅니다.       


영화 <가여운 것들> ⓒ 월트디즈니 코리아




         

스스로 기른 힘을 발휘하는 이야기

영화 <가여운 것들> ⓒ 월트디즈니 코리아


아무리 정교한 기술적 요소들을 모두 모았다 해도 그 중심에 있는 여성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벨라는 외부 세계의 썩어빠진 진실을 깨달아 가면서도 친절하고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하지만, 무지하고 순진한 상태에서 시작해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자율성을 얻어 가는 벨라의 여정을 통해 필요할 때는 새로 발견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배웠습니다


벨라는 고드윈 박사, 던컨, 맥스 등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남성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갑니다. 남성들은 그녀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만결국 벨라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진정한 자신을 찾습니다이 영화는 바로, 스스로 기른 힘을 발휘하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여운 것들>은 벨라의 신체적 재생과 정서적 성장을 통해 과거의 트라우마와 한계를 극복하고 초월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며,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차원 모두에서 재생과 부활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또한, 우리에게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고, 고민하며, 행동하고, 쇄신할 것을 촉구합니다.        

   

유머와 지적 탐험시각적 화려함이 어우러진 완벽한 경험완전히 두려움이 없는 영화 <가여운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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