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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u Apr 23. 2024

다이빙하는데 수영을 못 한다고?

좋아한다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디스커버 스쿠버 다이빙'이라는 PADI의 체험 다이빙 프로그램으로 바닷속 세상을 경험한 저는 한국으로 돌아가 말 그대로 앓아누웠습니다. 회사로 가는 지하철에서도, 인터뷰하면서도, 글을 쓰면서도 눈앞에 바닷속만 아른거리더라고요. 그때부터였습니다. 고층 빌딩과 무표정한 사람들 속에서 파란 바닷속과 고요함을 꿈꾸기 시작한 건. 벌써 10년도 훨씬 넘은 일이네요.


곧바로 저는 그 꿈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어요. 일본 이시가키섬에서 제가 처음 다이빙했을 때 체험 다이빙 프로그램을 진행해 준 프렌치 강사 Ben에게 물었죠. "나, 너처럼 다이빙 강사가 되어 해외에서 일을 하며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해?" 베테랑 강사가 된 지금 생각하면 참 막연하고 귀여운 질문이었지만, Ben은 내색 않고 얘기해 줬어요. "스쿠버 다이빙의 입문 과정인 오픈워터 코스부터 해야 해. 그러고 나서 어드밴스드, 레스큐, 다이브마스터 등등. 지금 얘기하면 머리만 복잡해질 테니 일단 오픈워터부터!" 저는 기어코 휴가를 만들어 이시가키섬으로 돌아가 만타레이와 함께 PADI 오픈워터 코스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프로페셔널 다이버가 되기 위한 여정의 시작인 입문 레벨의 유자격 다이버, 오픈워터 다이버가 되었어요.


오픈워터 코스는 생각보다 할 게 많았어요. 비디오 시청과 이론 수업, 풀장 교육, 바다 교육이 4일 동안 이어졌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어요. 특히 바다 교육할 땐 부력 조절을 잘 못해서 걸핏하면 수면으로 올라갈 뻔했죠. 지금이야 10년 차 다이빙 강사로 그때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 어떻게 준비했어야 했는지 보이지만, 그땐 몰랐어요. 그래서 강사가 된 이후, 다이버들이 기본기부터 단단하게 쌓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방법에 시간과 노력을 쏟았답니다. 


부력 조절은 스쿠버 다이빙에서 가장 중요한 스킬이자 테크닉이자 태도이지만, 이에 앞서 제 가장 큰 문제는 수영이었어요. 다이빙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새침한 시티 걸이었던 저는 끽해봐야 동남아의 팬시한 리조트나 호텔 수영장, 설 수 있는 수심에서 폼 잡고 몇 번 '어푸어푸' 하다 얼른 발 딛고 일어서는 게 다였죠. 발이 닿지 않는 수심에선 불안감이 몰려오고 그러다 보니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 가라앉았어요. 그래도 저는 그게 수영을 할 줄 아는 거라고 생각했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 자만심과 안일함이 부끄러워요. 




좋아하면 잘하고 싶어

오픈워터 코스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수영 강습 등록이었어요. 체계적으로 수영을 배우면서 물에서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호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인드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 기초를 다잡을 수 있었죠. 그러고 나서 오픈워터 다음 단계인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 결국 다이빙 강사가 되어 전 세계 다이버들이 모이는 태국 꼬따오에서 마스터 강사까지 될 수 있었답니다. 좋아하면 잘하고 싶고, 잘하려면 그만큼 시간과 정성과 노력을 쏟아야 하니까요.



ⓒ HARU



수영할 줄 아세요?


저는 강사 생활을 하면서 늘 이야기해요. 다이빙은 절대 모두를 위한 게 아니라고, 다이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다이빙 예약 상담에서도 제일 먼저 묻는 질문은 “수영할 줄 아세요?”입니다.


다이빙을 업으로 먹고사는 강사로서 사실 ‘수영 못 해도 OK!’ ‘물 무서워도 OK!’라고 해야 교육생이 더 많이 생기고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이건 강사에게도, 교육생에게도, 다이빙 센터에도 무척 위험한 생각입니다. 특히 한국은 기본적으로 수영을 잘하는 분들이 많지 않지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수영은 안 가르치고 영어 수학만 가르쳐서 그렇죠, 뭐. 그래서 한국 바다에서 다이빙 사고 케이스를 들여다보면 대부분 다이버들이 물에서 편하지 않아 심리적/신체적 문제가 생기고, 이후 대응이 안 되어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태국 꼬따오에서 주로 유럽, 미국에서 온 서구권 친구들을 가르쳐왔는데, 이 친구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무조건 수영을 배워요. 그래서 대부분 물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또 물과 친하죠.


예를 들어볼게요. 러닝이나 자전거는 한 번 해보고 잘 맞는 사람은 취미나 전문 과정으로 이어갈 수 있겠죠. 잘 안 맞거나 흥미가 없으면 마는 거고요. 하지만 다이빙은 ‘물속’에서 하는 거잖아요. 물이라는 특수한 환경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은 다이빙을 시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평생의 트라우마가 될 수 있어요. 해보고 아니면 물 밖으로 나오면 되잖아, 할 수도 있겠지만, 물속에서 패닉이 된 다이버가 강사조차 컨트롤할 수없이 급상승해서 수면에서 이를 못 본 보트에 치이거나 익사, 또는 유사익사로 사망한 사고가 국내외에 많이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만하지 않고, 조심 또 조심해야 안전한 다이빙을 오래 즐길 수 있다는 사실, 잊지 마세요.


제가 수년간, 국적도 문화도 언어도 다른 수백 명의 교육생들을 가르친 경험에서 깨달은 건 절대 사람들에게 ‘누구나 다이빙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지 말 것, 내가 좋아하는 다이빙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 모두 좋아할 거라 착각하지 말 것, 내가 물속에서 못 느끼는 편안함이 어떤 이에겐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할 것입니다. 그래서 햇수로 10년을 채워가는 시간 동안 수천 명의 다이버를 트레이닝시키면서, 저 역시 수천 번의 다이빙을 하면서 다행히도 단 한 번의 사고도 겪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다른 강사들에게 일어난 사고는 심심치 않게 보고 들었어요. 그럴수록 저는 더 마음을 다잡습니다. 저는 정말 다이빙을 오래, 안전하게 하고 싶거든요.  


스쿠버 다이빙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면, 일단 수영장에 꾸준히 다녀보세요. 이미 수영을 잘하고 물을 좋아한다면 굳이 안 하셔도 되지만, 혹여 내가 수영을 못 하고 물도 무섭지만 다이빙에 호기심이 있다, 하는 분들은 수영장에서 물과 친해지며 제대로 배워보세요. 다이빙을 안 하더라도 수영을 배워 놓으면 인생의 귀중한 서바이벌 스킬이 하나 느는 거예요. 물이 기도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테크닉이나 물의 저항을 최소화하고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는 몸의 움직임과 자세, 부력에 대한 이해 등을 수영을 통해 배워 놓으면, 다이빙도 훨씬 쉽고 재밌고 안전하게 배울 수 있어요.





수영 못 해도 다이빙할 수 있다고 하던데?


수영 못 해도 다이빙할 수 있다고 광고하는 일부 다이빙 센터들은 일단 거르세요. 오랫동안 PADI 강사로 활동해 왔기에 PADI를 예로 들게요. 각 다이빙 단체에는 ‘강사 매뉴얼’이라고 하는, 강사들이 코스를 가르칠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교육 규정집이 있어요. PADI의 최신 강사 매뉴얼에서 오픈워터 코스를 들여다보면, 교육생은 오픈워터 코스 자격증을 받기 위해 200미터 수영을 쉬지 않고 할 수 있어야 하고, 10분간 설 수 없는 깊은 물에서 맨몸으로 떠있는 테스트를 통과해야 해요. 수영을 꽤 잘해야 통과할 수 있는 테스트예요. 특히 10분간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물에서 맨몸으로 떠 있는 거, 생각보다 정말 힘들어요. 수영 테스트가 얼마나 엄격하냐면, 풀장 수온이 낮아 교육생의 체온 보호를 위해 웻슈트를 입을 경우, 부력이 생긴 만큼 웨이트를 착용해야 해요. 


만약 여러분의 강사가 오픈워터 코스에서 10분 떠있기와 200미터 수영 테스트를 하지 않거나 대충 넘어갔다면 PADI 교육 규정을 어긴 겁니다. 이건 심각한 위반이고 강사 결격 사유예요. PADI는 교육 규정을 어기는 강사를 단체에서 퇴출시킵니다. 


PADI 강사 매뉴얼, 오픈워터 코스 '워터 스킬 평가' 내용 ⓒ PADI


이미 유자격 오픈워터 레벨 다이버가 되어 저를 찾아온 분들에게 물으면, 대부분 오픈워터 코스 때 수영 테스트를 안 했다고 하더라고요. 여기서 문제가 아주 크게 생겨요. 여러분의 강사가 교육 규정을 어기고 자격증을 발급한 거예요. 이미 여러분은 자격증을 받았기 때문에 그 강사는 여러분의 다이빙 활동에 더 이상 책임이 없어요.  여러분은 그 자격증으로 전 세계 어딜 가든 ‘독립적으로’ 다이빙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코스든, 펀 다이빙이든 다이빙 전에 항상 서류 작성하고 사인하잖아요? “나는 유자격 다이버이기 때문에 어떤 위험이나 사고 발생에도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라는 서약이에요. 다이빙 사고에서 다이빙 센터나 다이빙 강사가 책임질 확률이 낮은 건 대부분 이 책임 면책 조항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이빙 코스 교육에는 다이빙 센터와 강사의 안전 의식, PADI 교육 규정 준수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나쁜 상황을 생각해 볼까요? 여러분이 오픈워터 다이버로 펀 다이빙을 갔어요. 그날따라 바다 상황이 안 좋아요. 다이빙 센터가 다이빙을 나가기로 결정했고, 여러분도 동의했어요. 그리고 다이빙을 갔는데 하강하자마자 시야도 안 좋고 조류도 세서 다이브마스터, 혹은 강사와 떨어졌어요. 버디와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계시죠? 오픈워터 코스에서 배웠듯이 여러분이 결국 혼자 수면으로 올라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분의 다이빙 보트가 몇 백 미터 저 멀리 떨어져 있어요. 아, 이때 하필 탱크에 공기가 거의 다 떨어졌네요. 물속에서 일행과 떨어지니 불안한 마음에 호흡이 가빠져 공기 소모율이 엄청나게 높아졌나 봐요. 그래서 수면에서 BCD에 공기를 채우질 못 해요.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오픈워터 코스에서 배웠듯 웨이트를 버리고 힘껏 킥을 차며 입으로 BCD에 공기를 불어넣었어요. 아, 그런데 다이빙 센터에서 제대로 관리 안 한 BCD를 줘서 미세한 구멍이 나 있던 걸 몰랐네요. 입수 전 안전 점검도 제대로 안 한 탓이에요 하지만 이제 와 후회해도 늦었어요. 아무리 킥을 차며 BCD를 입으로 힘껏 불어도 공기가 계속 빠져요. 더 이상 수면에 떠 있기가 힘들어요. 다리에 쥐가 나고, 힘도 빠지고, 결국 패닉에 빠집니다. 스쿠버 장비를 모두 벗어버리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수면에 떠 있으려 하지만 수영을 할 줄도 떠 있을 줄도 몰라요.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에요. 실제로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고요. 왜 다이버가 수영을 할 수 있어야 하는지, 왜 다이빙 단체가 스쿠버 다이빙 입문 레벨 코스에서 수영 테스트를 반드시 하도록 하는지 이 예시로 설명이 되었으면 해요. “BCD에 공기 넣어 양성 부력 만들면 수면에 늘 떠 있을 수 있으니까 수영 못 해도 괜찮아요!” 어떤 다이빙 강사들은 이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교육 경험이 많이 없거나, 교육하는 대신 다이버들 손잡고 이것저것 직접 다 해주는 스타일인 경우가 많아요. 그게 더 편하니까요. ‘유자격 다이버’ 다이빙 자격증이 있다는 의미는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 어느 누구도 안 해줘요. 위 상황에서 BCD에 구멍이 나서 공기가 조금씩 세는 걸 입수 전 왜 몰랐을까요? 강사나 다이브마스터가 다이빙 장비 세팅 다 해주고, 장비 입혀주고, 바로 입수시켜 버리는 다이빙 센터가 은근히 많아요. 누구는 이걸 '황제 다이빙'이라고 편하다고 좋아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입수 전 안전 점검, 버디 체크, 장비 체크, 모두 유자격 다이버의 본인의 책임이에요. 그 방법은 모두 오픈워터 코스 과정에서 배우고요. 


다이빙할 때 버디와 헤어지고, 보트나 해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장비까지 문제가 생긴 최악의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세요. 거기서 대응 매뉴얼이 바로 떠오른다면 여러분은 좋은 다이버입니다. 아니라면, 다이빙을 제대로 다시 배워야 해요. 수영 테스트 없이 오픈워터 자격증을 땄는데 수영, 사실 자신이 없다, 하지만 다이빙에 진심이다, 하는 분들은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수영 실력을 키워야 해요. 바다는 한없이 아름답지만 그만큼 위험합니다. 바다가 가진 수많은 얼굴들 중 어떤 얼굴을 보여줄지 인간은 알 수 없어요.




다이빙을 배우려면 제대로 된 수영 실력을 갖추세요


네, 다이빙을 배우려면 제대로 된 수영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다이빙 코스 상담 시 예약받을 때 수영 못 하는 분들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그럼 대부분 이렇게 되물어요. “다른 데선 수영 못 해도 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럼 저는 PADI 강사 매뉴얼의 수영 테스트 규정을 보여줘요. 그리고 이야기해요. 진정 당신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수영부터 배우면서 물과 친해지는 시간을 갖고 다이빙 시작하셔도 늦지 않다고. 바다는 어디 안 가고, 늘 거기에 있다고. 


저는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인터내셔널 다이빙 센터에서 일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걸 지도 몰라요.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예요. 사고는 늘 기본을 무시하다 일어납니다. 스쿠버 다이빙에선 작은 사고가 심각한 상해나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다이빙 단체의 교육 규정을 잘 지키면서 안전하고 책임감 있게 가르치는 강사를 찾으세요. 절대 자신의 목숨과 안전을 수영 못 해도 괜찮다는 다이빙 센터나 강사에 맡기지 마세요. 부디 제대로 된 교육 철학과 마인드를 가진 강사와 그런 강사의 마인드를 잘 서포트하는 다이빙 센터에서 안전하게 다이빙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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