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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Jul 18. 2024

내 목숨값은 여권에 쓰여 있다


한국 사회가 부대꼈던 나는 스스로 탓을 돌리며 바닷속으로 떠났다. 햇수로 10년에 가까운 해외살이를 하면서 외국인 노동자가 되었다. 이따금 한국에 들어와 만나는 친구들이 “세상에서 네가 가장 부러워”라고 말하면 “그래봐야 나는 여기서나 거기서나 영원한 이방인”이라고 답하곤 했다.    

  

태국 현지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작은 외딴섬에서 다이빙을 가르치며 산다고 하면 꽤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한국인에 호감도와 친밀감이 높은 태국에 사는데도 불구하고 ‘내 나라’가 아닌 ‘외국’에서 ‘노동자’로 사는 건 살얼음판 같은 현실이다. 적법한 비자를 받고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도 매년 비자 연장으로 이민국에 갈 때마다 심장이 콩닥거린다. 한때 한국인의 태국 입국이 이유 없이 막혀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이유가 태국 부유층 자제의 한국 입국 거절과 무례한 태도에 대한 보복이었다는 걸 알았다. 한국이 싫어 한국을 떠나놓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한국의 안녕을 빌었다. 그래야 해외에서 한국 여권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불똥이 튀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 나가 살면 애국자가 된다는 게 괜한 말이 아니었다.    

  

몸이라도 아프면 혼자 끙끙 앓으면서 ‘이러다 정말 큰 일이라도 나면 어쩌나’하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혼자 몇 번이고 썼다가 지운다. 병원은 가도 문제고 안 가도 문제다. 물론 가까운 친구들이 있지만 혹시라도 만에 하나 내가 다이빙하다 사고를 당하면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연락이라도 제때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군번줄 같은 걸 만들어 지니고 다녀야 하나, 하기도 했다. 그래도 운이 좋았던 나는 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나는 여전히 이방인으로서, 외국인 노동자로서 타국에 살며 긴장감 얹은 눈칫밥에 만성 소화불량을 앓았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 나는 태국 현지인보다 유러피안 여행자가 더 많은 섬에서 아시안 반, 웨스턴 반에 둘러싸여 ‘미투(Me Too)’와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그리고 COVID-19 팬데믹을 겪었다. 나 역시 아시안으로서,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해외 생활을 한 시간만큼 인종차별에 노출됐다. 백인들은 아시아 국가인 태국에 살면서도 아시안을 무시했고, 아시안 사이에서도 한국인은 중국인을, 태국인은 미얀마 사람들을 혐오했다. 그 작은 섬에도 인종의 계급이 존재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크게 드러내는 혐오 발언이나 행동은 맞서 따질 수나 있지, 은근히 일상에 스며드는 차별과 혐오엔 당해낼 도리가 없다. 한국에서와 달리 나는 의지와 관계없이 ‘소수자’가 되었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소수자’가 되어보고 나서야 소수자의 권리는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고 지나칠 정도로 중요치 않다는 걸 알았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TV 간판 프로그램에 두 코미디언이 얼굴을 까맣게 칠하고 입술을 두텁게 만들고 곱슬머리 가발을 쓰고 “시커먼~스” 하며 매주 우스꽝스러운 춤을 췄다. 그게 아주 인기가 많았다. 가수 이정은 한때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어눌한 한국말로 “싸장니임~ 마싸아아아~지” 하며 태국인을 흉내 내곤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기억이 생생한 걸 보니 미디어 컨텐츠의 힘이 참 강력하다. 물론 홍대 클럽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함께 일했던 화교 친구에게 연남동(근처에 화교가 운영하는 음식점이 많아) 관련된 비하와 조롱을 퍼부은 건 푸른 눈 외국인들이 아닌 한국인들이었다는 것도 기억한다. 조용하고 힘없는 친구는 화교라고 잘도 놀리면서 홍대 길바닥에서 한국 여자들만 골라 추행하고 희롱하는 백인 미군들에겐 아무 말도 못 했단 것도.

     

그리고 태국에 놀러 온 (일부) 한국인들이 서유럽, 미국, 캐나다에서 여행 온 외국인과 태국인을 비롯해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친구들을 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고 경악했다. 내가 살던 곳을 찾은 한국인 손님 중 몇몇은 태국에 와놓고도 태국인을 대놓고 무시했다. 얼마 안 되는 휴가 기간에 물가 싸고 만만한 게 동남아라 와놓고선 태국인은 게으르고 지저분하다는 비하와 조롱을 (물론) 한국어로 늘어놨다.

     

나 역시 그들에겐 ‘일개’ 스쿠버 다이빙 강사였다. 그들에게 스쿠버 다이빙 강사는 제대로 못 배우고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하는,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었다. 물론 내가 한국에서 어느 대학을 나왔고, 어느 잡지사에서 일했던 기자였다고 말하면 그들의 태도는 금세 바뀌었다. 그리고 영어를 쓰는 푸른 눈의 백인 친구들 앞에서 그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선한 미소를 억지로 만들어 보였다.    

  

한국에선 혼혈도 급이 있다. 백인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면 ‘글로벌 가족’이라고 하고, 백인이 아닌 인종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면 ‘다문화 가족’이라고 부른다. 외국인들이 출연하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북아메리카, 서유럽권 국가 출신이 아닌 이들을 보는 건 쉽지 않다. 정치인들은 이제 대놓고 동남아 사람들을 싼값에 가사 노동자로 들일 수 있게 한다고 홍보한다. 정부는 불법 이민자 단속 과정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위상이 무색할 만큼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비인권적인 방법을 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슬람 사원 건립을 막겠다고 돼지 40마리를 잡아 바비큐 파티를 연다.              

           






“푸바오의 처우와 권리를 따지듯 한국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인권도 따져보라.”   

  

화성 아리셀 공장 참사와 관련해 중국의 한 매체의 헤드라인이다.

     

이번에도 대한민국은 영정과 위패가 없는 희한한 분향소를 만들었, 오랜 시간 내내 같은 공간에 살아왔지만 보이지 않는 선으로 구분되어 만날 일이 없었던 외국인 노동자의 유족들이 서툰 한국어로 꾹꾹 눌러쓴 피켓을 들고 제대로 된 사과와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참사에 1차적인 책임이 있는 아리셀 측은 최근 희생자의 국적과 비자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외국인 노동자의 목숨값은 여권 어딘가 보이지 않게 쓰여있는 것일까.      


한국에서 일하다 억울하게 희생된 중국인 노동자의 목숨값과 하루 4명 꼴로 일하다 죽는 한국인 노동자의 그것, 가자 지구에서 인종 학살을 당하는 팔레스타인의 그것과 목숨을 걸고 손바닥만 한 고무보트에 올라 바다 한가운데 주검으로 떠오르는 난민의 그것, 그리고 트럼프의 목숨값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오히려 정치적으로 선동해 극과 극의 대립과 갈등 속에 총격으로 사망한 이름 모를 지지자의 그것, 그리고 한 나라의 재난 상황에 투입되어 실종자를 수색하다 무리한 상관의 지시로 희생한 한 군인의 목숨값과 이를 지시한 사단장의 그것. 모든 인간의 목숨값은 같은 것일까? 과연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모든 인간의 가치는 평등한 것일까?

     

대한민국은 점점 무식하게 힘자랑만 하는 양아치 깡패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내 나라가 돈 많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나라가 아니라 실수가 없도록 최대한 노력하되 잘못을 했으면 제발 부끄러움을 알고 사과하고 반성할 줄 아는 당당한 나라가 되길 바란다. 학교에선 ‘모든 인간의 가치가 평등하다’라고 가르치지만 정작 반대의 현실에 일조하는 어른들이 스스로 부끄러움이라도 알게 되길, ‘나만 아니면 돼’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내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라고 여기며 시스템의 무도함과 무관심을 깨우쳐 나가길.


나는 대한민국이 진정한 품격을 가진 나라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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