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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Oct 26. 2024

우리는 저마다의 지옥에 산다

당신은 왜 지옥에 가나요?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시즌2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시즌2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두 번째 시즌 6편의 에피소드가 공개되었습니다. <습지 생태보고서> <송곳>의 최규석 작가와 함께 인간의 원죄와 구원에 관한 탐구를 시작한 <지옥> 첫 번째 시즌에 이어 3년 만이네요.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시즌 2 공식 예고편




유아인의 짙은 그림자


먼저 첫 번째 시즌에서 새진리회 초대 의장 정진수 역할을 맡았던 유아인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큽니다. 배우 김성철이 그 자리를 메우려 고군분투하는 게 보이지만 이미 유아인이 완고하게 다잡아 놓은 캐릭터에 잡아먹히고 맙니다. 김성철은 눈에 빛이 켜지는 배우고 유아인은 눈에 빛이 꺼진 배우입니다. 이건 연기의 테크닉이나 모방으로 절대 가능하지 않은 영역이에요. 김성철이 등장할 때마다 ‘유아인이었다면 저 씬을 어떻게 연기했을까?’ 하는 생각에 보는 이의 마음은 산만해집니다. 그러니 배우와 캐릭터에 집중이 안 되고 자연스럽게 극에도 몰입하기 힘듭니다. 새삼 유아인이라는 배우가 가진 재능이 얼마나 컸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에피소드 3편까지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유아인의 그늘이 짙고 깊게 드리워진 가운데 스토리 전개는 느리고 답답하며 전체적으로 군더더기가 많습니다. 6개의 에피소드 중 세 번째, 네 번째 에피소드까지 견디기가 참 힘듭니다. 이 정도면 알맹이 꽉 찬 3편의 에피소드로만 만들어도 충분할 것 같아요. 이건 <지옥>뿐 아니라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힘든 고비를 어떻게든 버티게 만드는 오지원(문근영)과 그의 남편 천세형(임성재), 박정자(김신록)의 연기가 있고, 결국 마지막이자 여섯 번째 에피소드에선 ‘견디길 잘했구나’ 하는 카타르시스가 있습니다. 이에 가장 크게 일조한 건 민혜진(김현주)의 폐차장 액션 씬입니다. 김현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재평가받아야 하는 좋은 배우입니다.                     















<지옥> 시즌1이 초자연적 현상의 공포를 다뤘다면, 시즌2는 현실 세계의 공포를 선보입니다. 민혜진은 시연에서 살아남은 아이를 데리고 탈출하고, 정진수 의장은 사라지고, 박정자는 부활한 지난 시즌 이후, 고지가 계속되면서 사회는 더욱 혼란에 빠지고 회의주의가 독처럼 퍼져나가며 사람들의 공포심을 극대화합니다. 새진리회와 더불어 화살촉 같은 무장 단체가 권력을 얻어 신이 지정한 죄인의 죄를 벌한다는 명분으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단죄하는 또 다른 죄를 지으며 모순된 혼돈의 굴레 속에서 왜곡된 믿음을 강요하고 더 많은 추종자를 끌어들입니다. 여기에 교활하고 교묘하며 도덕적으로 부패한 정부가 권력 싸움에 끼어듭니다. 그 와중에 정진수가 부활하고, 박정자를 새로운 메시아로 세우기 위한 쇼를 위해 모두 달려갑니다. 민혜진은 살아남은 아이를 지키고, 부활한 박정자를 가족에 돌려주기 위해 애쓰죠. 민혜진은 마치 세상에 딱 하나 남은 마지막 희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지옥> 두 번째 시즌이 전 시즌에서 구현된 설득력 있는 전제를 장점으로 잘 활용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첫 번째 시즌의 흐름이 워낙 좋았고, 시청자를 빨아들일 완벽한 디스토피아 세계를 잘 구축했지만, 두 번째 시즌은 6편의 에피소드 내내 고지와 지옥의 개념에 대한 힌트와 함께 형벌을 집행하는 괴물의 정체에 대한 단서가 암시되긴 하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아무런 정보가 없습니다. 연상호 감독은 이에 대해 “답을 주는 시즌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시즌”이라 말했죠. 이는 시청자에게 흥미를 유발하기보다 실망감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더 큽니다. 느린 전개와 중복되는 서사, 여기에 유아인의 빈자리를 견디며 시즌 끝까지 달려온 시청자들에게 깊은 철학적 고찰만으로 만족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원죄, 심판, 그리고 부활: 인간의 죄와 심판은 누가 정의하는가?     


<지옥> 시즌2는 ‘부활’이라는 개념과 그로 인해 사회에 초래되는 도덕적, 철학적 혼란에 깊은 초점을 둡니다. 고지를 받고 시연의 대상이 된 죄인은 사회적 죄책감이나 두려움에 의해 규정된 죄의 개념을 상징하고, 이는 현세적이고 종교적인 심판에 관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신의 단죄가 아닌 사회에서 인간에 의해 서로 자행되는 왜곡된 단죄입니다.      


이 가운데 부활자들이 나타나면서 사람들은 신이 뜻하는 바와 부활의 이유에 대해 고찰하게 됩니다. 현상은 하나지만 ‘진실’을 외치며 자신의 이익과 입맛에 맞게 그 의도를 왜곡하는 모습은 지금 현실 세상의 우리와 많이 닮아있습니다. 신과 믿음, 죄, 구원, 결국 모두 인간 각자가 부여하는 의미가 발생하는 갈등의 근원이 됩니다. 


어쩌면 부활자는 이 심판이 절대적이지 않으며 인류에게 구원과 재상의 가능성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부활’은 인간 스스로 정의한 ‘죄’의 무게와 심판의 본질을 다시금 돌아보라는 신의 의도가 아닐까요?     








신의 의도가 뭔지 알았다.
아무 의미도 없는 거에 의미를 부여해서 
서로 죽이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거야.
거기가 어딘지 알아?
지옥이야.
신은 지금 지옥을 이 세상으로 옮기려고 한다.
이제 알았다!    

<지옥> 시즌2 천세형이 죽기 전 남긴 말
 


아니, 어쩌면 그렇게 인간이 알고 싶어 하는 ‘신의 의도’라는 건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지옥과 나의 지옥이 다른가 보네요.
     

정진수는 박정자도 자신처럼 괴물이 보이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라고 말하죠. 그리고 지옥에서도 자신은 항상 두 아이의 엄마였음을 확신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괴물을 보는 이유는 그것이 내면에 있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정진수는 ‘심판’이라는 개념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데 앞장선 인물로 시연을 당한 후, 지옥을 겪다가, 부활하며 괴물에 쫓기는 고통 속에 결국 괴물/사형 집행자로 변합니다. 20년 동안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편집증적으로 세상을 저주해 온 그는 결국 그 공포에 스스로 잡아먹히고 만 것입니다. 이는 종교적 심판을 극단적으로 추종하다가 오히려 그 정의에서 벗어난 파괴적인 존재로 전락한 인간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박정자는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죠. 그녀의 부활은 구원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심판이 반드시 종결이 아닌, 재생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세상은 곧 멸망하니. 당신이 하고 싶은 걸 하세요!     


부활자 박정자는 지옥에서마저 그리워하는 두 아이의 품으로 돌아가며 민혜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민혜진이 지금 하고 싶은 일은 시연에서 살아남은 아이 재현의 엄마가 되어 세상 끝까지 아이를 보호하며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박정자가 그녀에게 한 “코끼리 장난감이 보이는 곳에서 죽을 것”이라는 예언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일 겁니다. 민혜진은 결국 아집과 신념을 고집하며 도덕적 우위를 자랑하는 세속적 인간이 아닌 절대적 심판에 무너지지 않고 사랑과 연대를 통해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요.




           

아무도 죄인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인가?     


태어나자마자 고지를 받은 갓난아기를 통해 사람들은 “인간은 원래 죄를 갖고 태어난다”라고 신의 의도를 왜곡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만든 지옥에 빠져 가족과 사회, 세상 모두를 지옥에 빠트립니다. 부모의 자식을 향한 사랑이 아이의 시연을 막은 거라 해석해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죄를 씻겠다며 누군가의 시연에 뛰어들어 목숨을 버리죠.      


시즌2에서 사람들이 제멋대로 받아들이고 왜곡해 믿던 진실이 드러납니다. 아이는 시연을 받고 부모와 함께 죽었습니다. 직후, 부모의 품에서 부활하죠. 이는 죄와 구원의 정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지옥>의 메시지를 상징합니다. 


연상호 감독은 <지옥>을 통해 인간의 죄와 구원을 단순한 흑백 논리가 아닌 복잡하고 다층적인 개념으로 풀어내고자 했다고 밝혔습니다. 아이의 부활은 ‘절대적인 심판’의 틀을 깨고 ‘희망과 재생’의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인간의 본질은 단순히 ‘죄인’으로 규정지어선 안 된다고 말하죠. 


만약 민혜진이 그 아이를 구하지 않았자면 그 아이도 훗날 정진수처럼 되지 않았을까요? 혜진의 선택이 그 아이의 운명을 영원히 바꾸었듯 인간의 선택은 세상의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지옥> 시즌2는 세상의 끝, 극한의 상황 속에서 당신은 인간으로서 무엇을 추구하며,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묻습니다. 인간에겐 그런 의지가 있으니까요.




당신은 지옥에서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당신은 어떤 지옥을 만들겠습니까?
당신은 지옥을 만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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