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설탕사건
3.설탕사건
웅변대회는 이제 다음 주 월요일 이제 일주일이 남았다.
하교 후 열심히 방에서 열심히 원고를 외우고 있는 연희에게 현수 삼촌은
“연희야, 설탕물 좀 타와.”
“싫어, 삼촌이 타 먹어.”
“ 좀 타 달라고 얼음 넣어서 시원하게” 발로 연희를 건드리며 말한다.
“하지 마”
연희는 삼촌의 부탁을 거절하며 짜증을 낸다.
“야, 됐다 됐어, 치사 하다, 내가 타 먹는다.”
연희의 오른쪽 어깨를 주먹으로 살짝 툭 치고 방에서 나간다.
“아파”
연희는 소리를 한번 질러본다. 지금은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모두 외출하시고 안 계신다. 이럴 때 연희는 매일 연희만 부려먹는 현수 삼촌에게 반항을 한번 해본다.
연희도 화장실에 가려고 방을 나와 보니 현수삼촌은 마루바닥에 주저앉아 장식장에 있던 유리병 설탕단지를 끌어안고 쇠 수저가 현수 삼촌의 입 속과 유리단지로 왔다 갔다 하는 거였다.
“삼촌, 그러다 할머니한테 혼나.”
연희의 말에 아랑 곳 없이 열심히 떠먹더니 빨강 뚜껑을 제대로 닫지고 않고 단지를 들다가 하얀 가루의 설탕 들을 바닥에 쏟고 말았다. 다행히 항아리가 깨지지는 않았지만 단지 안의 설탕이 많이 줄어 버렸다. 현수 삼촌은 당황하며 흘린 설탕을 손으로 쓸어 담고 뚜껑을 덮어 장식장 안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넣었다. 그리고 나무마루 바닥에 흘린 설탕을 걸레로 닦고 방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외출 하셨던 할머니께서 돌아 오셨다. 할머니가 설탕사건을 모르고 지나가셨으면 좋겠다는 기대로 연희와 현수 삼촌은 방 책상 앞에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펴고 앉아 있었다.
연희와 현수는 방문을 열고
“다녀오셨어요?”
이렇게 짧은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온 연희와 현수의 심장은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밖에서 할머니의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게 뭐야? 누가 이랬어? 현수야 연희야 나와 봐라.”
큰일 났다 걸렸다.
연희와 현수는 서로 떨리는 눈을 마주쳤다.
연희는 마음으로 자신을 안정 시켰다. ‘내가 한 게 아니다. 삼촌이 그런 거다.’
안방과 작은방 사이의 마루로 나가보니 나무마루 결 사이 틈에 하얗게 설탕 가루들이 끼어 있었다.
현수 삼촌도 연희도 전혀 생각도 못하고 발견하지 못한 마루 모습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연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이때 삼촌이 빨리 자기가 그런 거라고 말해야 한다.’
현수 삼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할머니는 설탕 항아리를 꺼내 열어 보시더니 하얀 설탕 속에 거뭇거뭇한 알갱이들을 보시고 정말 화가 나셨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시고
“누가 그랬냐고?” 큰소리를 치셨다.
“아까 연희가 설탕물 타 먹는다고 했는데.”
그때 연희의 몸에 전기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연희는 아무 말도 못하고 동그란 눈으로 삼촌을 바라봤다. 현수 삼촌은 너무도 태연한 얼굴로 연희를 한번 처다 보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할머니는 무서운 눈초리로
“이 놈의 게집애가 이게 뭐야? 집구석에서 쓸때없는 짓이나 하고 저게 커서 뭐가 데려고 저래, 왜 그러고 서있어? 어서 가서 걸레 가져와.”
연희는 나오는 눈물을 꾹 참고 마루 끝 바구니에 있는 걸레를 가져다 드렸다.
“아니, 이게 뭐야? 끈적이잖아. 얼른 빨아와.”
연희는 끈적이는 걸레를 다시 받아들고 한쪽 수돗가에서 물을 떠 대야에 붙고 손 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걸레를 조몰락 조몰락 빨아 할머니를 가져다 드렸다.
참으려 해도 연희의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흘렀다.
할머니가 그 걸레를 받아들고 마루 끝에 서서 두 손으로 걸레를 꽉 비트니 그 안에서 물이 줄줄 나왔다.
“이 게집에 뭘 잘했다고 울어? 뭐하나 제대로 하는게 없어. 걸레가 이게 뭐야. 꽉 짜가지고 와야지.”
연희는 더욱 눈물이 났다.
연희는 속으로만
‘내가 한거 아니에요, 삼촌이 그런 거라구요’ 하고속삭였다.
큰 소리로 말 하고 싶었지만 말이 목구멍에서 걸려 아무 말도 할 수 가없었다. 이런 억울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현수 삼촌이 부엌에 들어가 그릇을 꺼내다 유리문에 금이 간적이 있었다. 그때도 삼촌은 전혀 모르는 일처럼 잠자는 척을 했다. 부엌 심부름을 더 많이 하는 연희가 억울한 누명을 썻다. 또한 연희와 현수 에게는 그 어떤 과자보다 맛있게 즐겨먹는 생 라면. 할아버지의 새벽출근에 아침 식사용으로 한 박스를 사 놓으셨다. 현수와 연희가 생으로 많이 먹게 되자 할머니가 생으로 먹지 말라 명을 내리셨다. 하지만 현수삼촌은 학교에 가져가려고 밤에 몰래 벽장에 있는 라면을 책가방에 넣어 두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하루는 늦은 저녁 할머니의 목소리가 방에 있는 연희와 삼촌의 귀에 들려왔다.
“아니, 왜 이리 라면이 줄었어? 요즘 잘 먹지도 않는데.”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할머니가 안방에서 중간 마루를 지나 건너 방으로 들어오시려는 발소리가 들렸다.
현수 삼촌은 얼른 자기 가방 속에 있는 라면을 꺼내 연희 책상 아래로 던지는 순발력을 보였다. 숨 가쁜 그 순간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너희 또 생 라면 먹는 거 아니지?”
“아니에요.”
현수 삼촌은 숨도 안 쉬고 태연히 대답 했다.
연희는 속으로
‘거짓말도 잘 한다.’
그 순간 할머니의 눈에 연희 책상 밑에서 주황색 라면 봉지 모서리가 들어왔다. 그 라면 봉지를 꺼내시더니
“이건 뭐야?”
“연희야, 너, 라면 갔다 놨어?”
한술 더 떠 현수 삼촌은 연희를 보면서 이런 질문까지 하는 거였다. 할머니와 삼촌의 시선이 연희를 향해 있다. 왜 이럴 때 연희는 말문이 막히는지 모르겠다.
“아니. 왜 먹을 거면 말을 하고 먹지 이렇게 도둑고양이 마냥 몰래 숨겨놓고 먹어? 남들이 보면 뭐라 하겠어? 먹을 것도 제대로 안주는지 알거 아니야?”
할머니는 약간의 언성을 높이시고 말씀하셨다.
연희의 눈은 주책이다. 이때 왜 또 눈물이 나는지
“왜 무슨 말만하고 울고 지랄이야? 내가 틀린 말 했어? 이년이 이렇게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그냥.”
그렇게 노여움을 내고 나가셨다.
연희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고 이를 지켜보던 현수삼촌은 아주 조그만 소리로
“라면 너 먹어”.
“됐어. 싫어.”
현수삼촌은 아무 소리 없이 그냥 자리에 누워버렸다.
연희는 억울하다. 왜 번번 히 이렇게 당하는지 현수삼촌이 너무 얄밉다. 그리고 아무 말도 못하는 연희 자신이 답답다.
늘 아들이나 조카 손주딸 이나 차별 없이 똑같이 키운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가 참 야속하게 느껴질 뿐이다. 이럴 때 일수록 연희는 엄마가 더욱 보고 싶어진다.
‘엄마만 와 봐라’
연희는 현수 삼촌을 째려보며 속으로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