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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Nov 13. 2024

하늘 끝 어딘가엔.

연을 쫓는 아이(2010). 현대문학

하늘 끝 어딘가엔 끊긴 연들이 날리고 있을 것 같다. 영원히. 연 날리는 모든 이들의 소망이 모이는 곳. 그곳엔 누군가의 신이 거처하는 곳 같아, 그곳에 닿고 싶다. 끊겨도 한 번 날아봤으면. 바람에 실려 이리저리 하늘 끝 어딘가에 이르렀으면.


갑자기 연에 대한 추억을 이리저리 뒤져봐도 마땅하지 않다. 그러다 걸린 건 수원 화성에 갔던 날이다. 어느 날 그곳에 간 건 남는 시간 어떻게든 집적거려 시간이 귀찮다고 휑하니 달려갈 것 같아서였다. 그날이 봄날인 지 가을날이지 감이 없지만 굳이 지난 메모를 들쳐보기 싫은 건 지났기 때문이다. 그때 좋았던 감정이야 바래고 바래서 마음 한구석 처박혔지만. 그 감정이 굳이 이렇게 소환된 건 전적으로 이 소설 때문이었다.


연 나는 날. 바람 좋은 날. 많은 사람들이 화성 성안에서 연을 날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연을 끊기 위해 경쟁한 건 아니었고. 이건 우리 풍습과 다른 것 같기도.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연날리기 좋은 날이었으니. 알다시피 수원 화성은 계곡에 위치하지 않다. 거의 평지에 놓인 그곳이 연 날리는 성지인지는 모르겠지만 구속 없이 하늘로 오를 수 있던 건 전적으로 주변에 높은 건물도 없어 거칠 것이 없다. 텅 빈 듯 공간을 채워주는 알록달록 연들이라니.


연을 날리는데 그곳이 아프가니스탄이라면? 그곳 높은 계곡에서 연을 날린다면. 분명 지금 그곳엔 사람들이 살고 있을 텐데 들려오는 소식이 없다. 뉴스와 미디어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만큼 누구도 관심 갖기 어려운 곳. 역사적으로도 사회문화적으로도 갇힌, 그저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하고 전국을 통치하는 나라라는 것 외에 사람들 시선에서 갑자기 사라진 것 같은 그곳에, 그곳에 관한 소설이 읽다 보니 그곳도 아름다웠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형제처럼 자란 두 아이가 있다. 하나는 아미르. 다른 하나는 하산. 그 둘의 차이는 출신성분. 전자는 타지크 후자는 하자라 족. 이건 하나는 계급이 높고 하나는 하인인 관계. 나이는 한 살 차이로 형제처럼 친구처럼 어린 시절을 보낸다. 일찍 어머니를 보낸 아미르는 항상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 간구하지만 웬일이지 아버지의 사랑은 주로 하산에게 가 있는 것 같아, 아미르는 가슴 한편 질투와 원망으로 하산을 대한다. 그런 어느 날 두 사람은 연날리기 대회에 나가고. 결국 우승을 하지만 끊긴 연을 찾아 갖는 전통 따라 하산은 연을 찾다, 아세프 일당에게 몹쓸 짓을 당한다. 이걸 그냥 지켜보는 아미르.


"하산, 연을 꼭 잡아와."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요."


이런 하산을 나중에 도둑놈으로 몰아 집에서 쫓겨나게 만든 아미르는 아버지 바바가 하산과 그의 아버지 알리에게 보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떠나는 걸 바바가 눈물로 막으려 했지만. 그들과의 인연은 이렇게 끊긴다. 급변한 정치변동 속에 바바와 아미르는 삶터를 미국으로 옮겨 그곳에 정착하는데. 비록 바바는 암으로 죽지만, 생은 지속되어야 하기에 아미르는 아내 소라야와 함께 이민자로서의 삶을 소박하게 꿈꾸던 어느 날 라힘 칸의 연락을 받는다. 라힘 칸은 아미르를 끝까지 믿고 돌보는 스승이자 아빠 동료. 단지 아미르가 몰랐던 건 라힘 칸이 자기와 하산에게 벌어진 모든 일을 알고 있었다는 것.  


라힘 칸의 요청은 하산의 아들 소랍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이걸 이행하는 건 죽음과도 바꿀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일. 아미르가 이를 받아들인 건 하산을 배반했던 과거를 살아오면서 그가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 어떻게든 속죄를 하고 싶다는 것.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기반, 인간이면 가져야 할 품성을 거부한 체 살아가는 건, 어떤 안정적이고 물질적인 대가도 아미르의 고통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선을 스스로 넘어 탈레반에 의해 사라진 하산의 분신을 찾아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간다. 그건 귀향이기도 하지만 속죄를 위한 여정이기도.


파키스탄에서 만난 라힘 칸은 아미르에게 하산이 아미르의 이복형제임을, 그제야 아버지 바바가 보인 행동을 라힘 칸이 자기를 부른 이유를 완전히 이해한다. 아버지 바바도 자기가 벌인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사죄하고 싶어 발버둥 쳤다는 것을. 그 후 소랍 아프가니스탄 구출작전. 상대는 악동에서 악마 탈레반으로 변신한 아셰프. 그와의 결투는 죽음을 겨우 넘어서서 소랍과 함께 파키스탄에 도착한다. 그렇게 순탄하게 넘어갈 줄 알았는데. 소랍이 스스로 생을 끊으려 했다. 어렵게 미국으로 같이 가기로 했는데, 소랍이 고아라는 걸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며, 소랍은 또다시 고아원에 가야 한다는 절망감 때문인데.


둘 다 겨우 부지한 목숨을 걸고 미국에 도착하지만 여전히 소랍은 벙어리처럼 말을 끊어버린다. 자기가 목격한 부모의 학살과 천애 고아라는 상처가 꽁꽁 세상과 담을 쌓는 모습으로 세상과 맞서는 걸 알면서도 지켜보는 아미르와 소라야에겐 고통이다. 아미르에겐 완전히 속죄할 나날들이 자꾸만 늦어지던 어느 날. 아미르는 작은 연날리기 행사를 발견한다. 26년 동안 연을 날리지 않은 아미르가 12살로 돌아가 하산과 함께한 연 날리던 날들을 떠오르며 하산의 분신 소랍과 함께 연을 날리는데. 마침 녹색 연과 마지막까지 승부를 가리게 된다. 그때 아미르와 하산처럼. 1975년 겨울에 하산과 함께 대회에 나가 싸우던 그날처럼 그들은 승리를 거며 쥐며 아미르가 내뱉는다.


"저 연을 잡아다 줄까?"  말 없는 소랍이 마치 네라고 응답한 듯이 아미르는 달라간다.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라고 외치며 달리는 아미르가 나 자신이었으면 좋겠다는 건. 그랬으면 좋겠다는 건. 정말 어쩌면 우리가 우리에게, 내가 나에게 천 번만큼이나 속죄를 한다면 정말 그렇게 한다면 어느 순간 하늘 끝 어딘가에 도달할 것 같다는 믿음이 생길 것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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