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습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문 Dec 07. 2024

상처

아침에 세수를 할 때마다 눈에 거슬렸다. 왼쪽 쇄골 바로 밑 3cm 정도의 가로로 난 상처. 시간이 가면 뭘 기억을 했는지 조차 사라지는데 이건 흔적으로 남아 지난날을 자꾸만 환기시켰다. 벌써 삼 년 전의 일이다. 그날 119를 부르긴 뭐해서 혼자 차를 몰고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처치하고 회사로 출근했었다. 숨이 막혔다. 진통제로 통증을 줄여도 심리적으로 조여 오는 이 긴장을 풀어 줄 유일한 약이 시간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방법은 어떻게든 집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는 거지만 두려웠었다. 같이 있는 것도 고통스러웠고 이를 피해 벗어나자니 그녀를 혼자 남겨두었을 때 후사가 예측되지 않았었다. 미안함이 얼마나 커질지 어쩜 이것이 나를 망설이게 한 가장 큰 이유였지만. 그때.


알면서 시작한 일이었다. 아내가 결혼 전 남자가 있었다는 것까지만. 그 남자가 자살을 했다는 건 같이 살면서 무던히 애를 가지려던 노력이 번번이 허사로 돌아간 뒤 마지막으로 시도를 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들었었다. 저주를 받은 것 같다는.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말이라서 말 같이 들리지 않았다. 같이 사는 아내의 말이라도 동의할 수 없었다. 그건 그녀를 위한 위로가 아니라 나를 위한 방어막이었다.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난 내가 선택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군대를 갔다 온 후 노력했던 대기업은 일찍 포기했다. 삼수를 해서 들어간 대학에서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속되지 않는 수업을 지속시키는 건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물러설 수 없게 태어난 건 자의가 아니었다. 중학교를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난 엄마가 있었다. 내게 가난은 흐린 날에도 명확하게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거였다. 다행인 건 이런 환경을 내가 너무도 익숙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남들은 이를 체념이라고 부르는 것 같지만 내겐 그냥 생존이었다. 그 불행이란 실체를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거였다. 이것이 나의 큰 장점 아닌 장점이었다. 같은 해 취업준비생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많은 난 그저 지방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다.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라도 굳이 서울을 바랐던 건 더 이상 밀려나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었다. 자꾸만 3차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지면서 이건 틀림없이 내가 보육원 출신이란 것과 이로 인해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을 것이란 면접관들의 선입견 때문이라고 생각할 다른 어떤 이유를 찾지 못했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를 찾아 취업보도실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박 교수를 만난 날. 박태웅 교수가 나를 알아봐서 당황스러웠었다. 문창과에 개설된 필수과목인 소설작법을 들었다는 걸 순간적으로 기억해 냈다. 그 과목은 졸업을 위해 남는 학점을 대강 때우려고 든 과목이었다. 수업시간 첫날 학기말 시험은 소설을 써서 제출하면 시험으로 대체하겠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성적이 좋았다는 것만 기억해서 다 잊고 있었다. 그런데 차 한 잔 하자는. 그렇게 시작된 취업이었다. 나눈 대화라곤 기억나길 소설을 계속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해서 목에 풀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던 것 같은데, 교수의 다 알 것 같다는 표정만 기억하고 교수연구실을 나왔었다. 그러다 며칠 후 걸려온 전화. 출판사에서 영업을 담당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주로 상법이나 재무회계론, 경영전략과 같은 수업을 들어온 내가 제안을 받아들인 건 더 이상 이력서를 제출할 열의가 사그라진 후였지만, 그때는 내게 어떤 형태의 제안이 들어와도 사람 목을 따는 것만 아니라면 다 받아들일 용의가 되어있던 때였다. 그렇게 시작된 출판사 생활은 재미가 있었다. 몰랐던 걸 하나 둘 배우면서 지난 시간들을 잊을 수가 있었다. 비록 작은 규모지만 뭔가 희망이란 단어를 떠올릴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딱히 내 업무범위가 명확하게 정해진 건 아니었지만 그때 막 회사에서 판권을 사들여 번역했던 책이 10쇄까지 인쇄되었고, 문학상 등단 신인이 무슨 연고인지 첫 단편집을 회사에서 냈는데 이 책이 1년도 되지 않아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경사를 맞은 상태였다. 유통망을 뚫지 못해 고전했던 두 책이 소리 없이 사람들 입에 오르더니 급기야 대형 서점에서 먼저 연락이 온 것이다. 회사가 만들어진지 5년도 되지 않은 회사에서 수익이라야 어린이 학습지와 교양만화로 근근이 이어가던 회사가 상전벽해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본격적인 영업과 고객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던 때 박 교수가 생명줄을 이어준 것이다.


주로 대형서점들을 돌아다니고 고객 불만 사항을 해결하는 일이라서 출판의 꽃인 기획과 편집은 어깨너머 눈여겨보는 정도였는데, 그러다 보니 사무실에서 벽을 마주 보는 자리에 항상 정자세로 교정과 교열을 보는 정세민이 눈에 들어왔다. 첫날 회사에 나가 전체 회식을 할 때까지 단 한마디도 말을 나누지 않던, 그 후로도 아는 체를 하지 않던 그녀가 내게 말을 건건 의외였다. 항상 창백한 얼굴로 두꺼운 안경을 쓰고 빨간 플러스 펜으로 집중을 하는 모습이 싫지는 않았어도 그렇다고 매력을 느낀 건 아니었다. 입사를 하면서 간단히 인사했을 때 그녀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눈이 꽤 나쁜가 보다 정도로 기억하는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밥을 사달라는. 오늘은 내 생일인데 혼자 집에 들어가 밥을 먹기 싫다는 그녀가 예뻐 보여 같이 저녁을 먹은 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나 자신을 들여다보이는 걸 극도로 경계했기에 아주 좁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왔는데, 이렇게 맺은 작은 영역 안에 낯선 이들의 시선이 머무는 것  자체가 달갑지 않았었다. 그날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마침 그날이 내가 보육원을 떠나 세상에 독립이라는 이름으로 걸어 나온 날이었기에 나 또한 혼자 망원동 옥탑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싶지 않았다. 같이 밥을 먹자고 했으면서 서로 처음 보는 사람인 냥 어색하게 앉아 서로 묵묵히 저녁을 먹다 헤어질 때 겨우 던진 그녀의 한마디. 외로워 보였다는. 그렇게 시작된 연애였다.


남들은 이를 사내연애니까 재미가 쏠쏠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의 만남이 남들과 얼마나 다른지 체감하지 못했다. 확실한 건 그녀가 연애경험이 많지 않아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는 정도는 느꼈지만. 그렇게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덧 난 많지 않은 내 짐을 그녀의 집에 욱여넣고 있었다. 15평짜리 반 지하 방이라도 둘이 사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좁은 공간이 비좁게 느껴지지 않은 건 집에서도 그녀의 행동반경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상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며 뭔가 생각하는 모습이 익숙해지면서 이런 것이 행복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난한 시간이 흘러갔다. 처음에 두 명이 시작한 회사가 내가 들어갔을 때 다섯 명이 되고 5년이 지난 후 12명 정도로 커져 제법 중견 출판사가 되었다. 여전히 회사 주력은 어린이 동화책과 학습만화였지만 간간히 번역서와 단행본 소설이 수익이란 단어가 낯설었던 출판사를 제법 자리에 올려놔 회사도 강북에 있는 출판단지로 옮길 수 있었다. 그사이 내 명함은 담당에서 부장이란 직함으로 바뀌었고 집도 회사 근처로 옮겨 하나의 방에서 두 개로 새로 생길 아이를 위한 방까지 마련한 상태였다. 그런데 애가 생기지 않았다. 다니던 산부인과 병원을 이사 간 집 근처 종합병원으로 바꿔 가능하면 둘이 같이 병원에 다니기도 했었는데 병원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애를 가져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한 상태였다. 노력해도 안 되면 애를 입양하자고 말을 해보기는 했지만 이건 내 진심이 아니었다. 지난날 자제하지 못한 열정을 유산과 연결시키는 연민 어린 아내의 말에 나 또한 익숙해져서인지 그때 아내의 심리상태를 그저 흘려버렸다. 살다 보면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깨닫게 되는데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시간이기에 아내도 지난날에 대한 미련을 강하게 느끼는 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나를 완전히 비켜간 것으로 알았던 불행이 슬며시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지금까지와 다른 얼굴을 하고 말이다.


서로 잠자리가 예민해서 같은 방에 싱글침대 두 개를 그녀는 창가 쪽에 난 입구 쪽에 놓고 생활했었다. 그렇기에 관계를 가지는 날 외에는 그녀의 상태를 파악하는 건 쉽지 않았다. 따로 또 같이 정도. 그날은 뭔가 좀 달랐던 것 같았다. 평소와 다른 자세로 자는 그녀를 보니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흔들어 깨우니 반응이 시원찮았다. 감기 몸살이 온 것 인듯해서 난 무심히 방을 나와 밥을 안치고 회사로 출근할 준비를 서둘렀다. 아내 대신 연차를 내면 되고. 회사에 뭐라 말할까 잠시 생각하다 지금까지 지각 한번 안 하고 연차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회사입장에선 가장 바람직한 사원인 그녀가 하루 쉰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대충 식사를 끝내고 밥으로 죽을 만들어 그녀에게 직접 먹일 생각이었다. 침실로 들어가 그녀를 깨우려던 찰나 뭔가 그녀가 쇠붙이로 내 얼굴을 향해 확 휘둘렀다. 순간 통증을 느낀 충격보다 지금 벌어지는 일이 이해가 되지 않아 잠시 암전이 왔다. 어떻게 된 것이지?


피하느라 들고 간 쟁반이 엎어지는 바람에 죽은 사방으로 날렸고, 거기엔 내 피까지 함께 뿌려졌다. 상황을 추스른다기보다 본능적으로 흐르는 피를 막기 위해 아내의 화장대를 뒤졌다.  서랍 안에서는 약병이 쓰러져있고 약들이 서랍 안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급한 대로 손에 잡힌 손수건으로 지혈을 하고 잠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때서야 눈에 들어온 금속물질은 작은 가위였다. 가위가 왜 그녀 손에. 아내가 자다 악몽을 꾼 것인지 가위를 휘둘렀고 난 그녀를 깨워 죽을 먹이려다 봉변을 당한 것이다. 얼마간 지혈을 하다 수건이 젖어 서랍을 뒤져보다 흩어져 있던 약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 와중에 프로작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피는 어느 정도 지혈된 것 같아 화장실에서 손에 묻은 피를 닦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니, 무슨 일인지 아내는 약을 과다복용하고 비몽사몽 중에 손에 왜 들려있었는지 모를 가위를 내게 휘두른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런 생각이 미치자 내 안에 분노게이지가 빠르게 올라갔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화를 풀러 그녀한테 가니 그녀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호흡이 약간 규칙적이지 않은 정도 외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아 내 머릿속은 이미 어떻게 다음 행동을 할지 정리했다. 병원에 가서 상처를 처치한 후 회사에 출근해서 아내가 하루 쉬어야 함을 통지하고 예정된 오늘 일정을 소화하는 것. 이건 앞서 정리한 생각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보다 앞으로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 생각하니 숨이 턱턱 막혔다. 평소에도 거의 말이 없는 그녀와 앞으로 보낼 시간들이 가늠되지 않았다. 그녀를 그냥 두고 나온 건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고 내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한 화가 가라앉지 않아 그냥 될 대로 돼라라고 집을 나섰다. 죽기야 할까라는 생각이 가장 앞섰지만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았기도 했다.


그렇게 특별한 그날을 보낸 이후 일상은 지난날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건 아주 당연한 수순 같았다. 그 일로 인해 틈이 생긴 것인지, 드러나 있지 않던 틈이 이번 일을 계기로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주로 내가 묻고 그녀는 침묵하는 날들이 반복되는 어느 날 저녁을 같이 먹다 난 아내의 뺨을 강하게 갈긴 후 상황이 더 꼬여갔다. 집에서 대화를 나눠도 웬만해서 한 문장 이상 서로 말을 끌어갈 수 없었다. 회사에서 마주치는 불편함은 영업을 핑계 대고 늦게 들어갈 수 있어 어느 정도 해결되었지만 회사보다 집에서 그것도 같은 영역을 공유해야 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당신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화장대 서랍에 있던 약이 뭔 약인지 몇 번 물어도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사이 여덟 바늘을 꿴 상처는 어느덧 아물었지만 아내와의 관계는 봉합되지 않았다. 아내는 여전히 묵비권을 행사하듯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그것도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관계라는 것이 거의 피를 말릴 정도가 되어 오히려 내가 우울증 약을 먹고 싶을 정도였다. 얘를 갖지 못해도 난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도 그냥 그러 저런 수사가 되는 것 같았다. 높은 도수의 안경 너머 그녀의 검은 눈동자를 들여다보면 무슨 깊은 수렁 같아서 아내에게 약이 어떻게 된 것인지 몇 번 물어보다 말았다. 지쳤다. 그 불편함을 이겨내기 힘들었다. 아내가 먼저 말을 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말을 할지 두려웠다. 이것이 애를 갖지 못한 원인이 결과로 나타난 것인지 애초 아내는 처음부터 애를 원하지 않은 것인지 난 좀처럼 감을 잡지 못했다. 그저 그날 우울증을 알던 아내가 평소와는 다르게 약을 과다 복용했다는 정도로 추측할 뿐이었다. 세상과 연을 끊으려 했다는 생각까지는 아니었다. 이것이 그녀 스스로 생명을 거둬들이려고 한 것인지 아닌지 이런 그녀가 애를 갖으려는 노력조차 나에게 그저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온갖 생각이 머리를 도통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아내 모르게 집안을 뒤져 약국 처방전을 찾았는데, 그녀의 처방약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요즘 약봉지를 보면 처방내역이 상세히 적혀있어서 읽어보더라도 명확하게 알 수 있는데 우울증 약을 여러 개 복용하고 있다는 정도로 내가 파악한 건 거기까지였다.


시간이 지나도 관계는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집에서 같이 밥을 먹지도 않았고 회사에서 조차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피를 말린다는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들자 더 답답해졌다. 집보다 회사가 나은 건 영업이 내 업무라 난 가급적 회사에 머물지 않아서 좋았다. 아니, 집에 들어가는 것조차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아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회사 끝나고 밥을 같이 먹자는. 심장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지만 당혹감을 애써 감추고 덤덤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한 말은 같이 밥을 먹자는 것인데, 같이 앉아 밥을 먹는다는 불편함이 미리 떠올라서인지, 그녀의 시그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감히 잡히지 않았다. 처음 관계를 시작한 것도 밥이었는데, 어쩐지 밥을 통해서 관계가 끊어질 것 같아 두려웠다. 서로 화해를 하자는 건지 서로 관계를 끝내자는 건지. 그녀가 지금까지 보인 침묵 넘어 실제 그 침묵의 깊이,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이 있는지 그녀가 그것을 드러냈을 때 과연 내가 이를 감당해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아내가 내게 말을 하지 않은 것처럼 난 사실 그 일이 벌어진 후 나 또한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당연히 아내 모르게 말이다. 아내가 내게 말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나도 그녀에게 비밀을 하나 만든 것이다. 아내의 행동과 묵언.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업무를 핑계 삼아 외근할 때마다 병원을 찾았었다. 그렇게 알게 된 내용 중 하나는 아내가 복용하는 약이 의사의 처방 범위를 넘어 사용하면 아주 위험하다는 것과 아내의 상태가 아주 특이하다고 의사는 내게 말했었다. 그건 내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꺼낸 말들을 듣고 의사가 한 말이었다. 그런 와중에 아내가 먼저 내게 말을 건 것이다.


회사에서 아내와 나의 관계는 많은 말들이 애초 오가지 않아 관계가 주는 위태위태함을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린 서로 마음을 내비치지 않는 고수의 면모를 보여 왔다. 그러던 그날. 우리는 회사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떨어진 중화음식점 빠진 에서 만났다. 방을 예약하려니 예약이 끝났다고 해서 홀 한편 구석에 앉았고 아내는 내가 좋아하는 팔보채를 시켰는데 난 떪은 감을 씹는 모양처럼 이를 깨작거리고 있었다. 평소 영업 외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 내가 연태고량주를 달라고 한 건 더 이상 그녀의 얘기를 정상적인 상태에서 들을 수 없어서였던 것 같다. 거의 충격이라서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결혼 첫날밤 그녀가 자기가 좋아하던 남자가 있었다는 고백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그녀와 관계를 가질 기대감에 그녀가 얼마나 진중히 고백했었는지 당시에는 흘려들었었다. 그녀의 말을 요약하면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같은 과 선후배로 만나 같이 잠을 자면서 애를 갖은 후 낙태를 두 번이나 했다고. 그 후 서로 맺는 관계를 어떻게 할지 의견이 맞지 않아 헤어지다 다시 만나기를 반복했다는. 밤인지 낮인지 뜨겁던 정열이 어느덧 푹 식어 남들이 얘기하는 권태기인지 아닌지 의심이 들 때 결혼 얘기가 나왔지만. 선배는 떠난 애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부모님께 말해 같이 살자고 했었다는. 그렇지만 남자 집에서는 군대도 갔다 오지 않은 외동아들이 뭔가에 홀려 결혼하는 것 같아 결사반대를 했다고. 아내는 당시 선배가 그저 즐기는 관계로 만난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정말 선배가 자기 부모한테 결혼하겠다는 말을 했는지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는데. 사실 난 아내가 이 말을 했다는 것조차 믿기지 않았다. 아내의 성정으로 그러긴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 지난 일이었다. 그 후 선배와 관계를 끊고 출판사에 취업을 해서 다니기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생긴 우울증 약을 장기간 복용하게 되었고, 약에 대한 부작용인지 누구와도 관계를 이어가기 힘들었기 때문인지 불면증까지 겪게 되면서 먹은 정신과 약이 점차 늘어났다는 얘기가 전부였던 것 같았다. 그 후 나를 만난 이후 생활이 점차 안정되면서 복용약도 줄였지만 애를 가지려는 노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다시 약을 늘렸다는 얘기로 기억했었다. 그것도 최대한 몽롱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기억해 낸 얘기의 전부였다. 두 번째로 시킨 고량주 때문인지 대략 아내와의 대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대략 감을 잡아놓고도 예상대로 그녀의 말들이 기대했던 말들과 다르지 않은 충격 때문인지 난 기억 줄을 점차 놓고 있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고 속이 뒤집힐 것 같아 변기에 얼굴을 박고 다 토해내니 속은 좀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어딘가 익숙한 곳 같아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집 화장실이었다. 난 화장실 바닥에서 정신없이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이라서 어기적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남향으로 난 베란다를 통해 해가 거실 중간까지 밀려들어와 있었다. 시간이 가도 한참 지난 것 같았다. 습관적으로 냉장고 문을 열어 물을 마시면서 집 안이 너무 고요해서 순간 의아했지만, 평소 집에서도 말이 별로 없는 아내라서 그런가 보다 했다. 어제 어떻게 된 것인지 물어보려 아내 이름을 부르면서 안방을 열어보니 아내가 없었다. 침대는 평소처럼 정갈한 상태였지만. 느낌이 이상해서 아내의 화장대를 열어보니 약통들이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몸 안의 모든 세포들이 바짝 일어섰다. 아직 개운하지 않은 정신 줄을 부여잡으려는 와중에 희미하게 세민이가 애를 가져도 들어서지 않아 낙담했을 때 했던 말이 기억났다. 전 남자친구의 저주! 아. 이런. 빌어먹을. 난 서둘러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며칠 전에 새로 산 구두를 구겨 신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

상처는 상처(傷處)이기도 하지만 상처(喪妻)이기도 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