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음으로 시끄러운 세상에서
당신을, 생각합니다.
밖은 흰 눈 날리는 어느 한낮.
누군가를 통해 만난 당신은 살갑지도,
차갑지도,
애초 온기라곤 없었기에 기대하지 않습니다.
덤덤히 세상을 보라는 듯 자기 자신도 보라는 듯,
다소곳이 웃는 듯 보이는 건
아마 흰, 눈 때문입니다.
당신 때문이 아니지요.
당신을 만난 건 이번만이 아닙니다.
기억을 못 한 건 아니지요.
옆에 서서 언제나 온전히 함께해도
늦게 알게 되지요.
방법이 없을까요?
잊고 싶어도 나타나는,
아픔은 항상 다수의 몫.
벌여놓고 후회하지 않는 누군가,
그렇군요. 힘없는 누군가만 당신을 기억했으니.
눈 오는, 오늘
당신을 생각합니다.
잊을 수 없으니.
어떻게 할까요?
후회는 그들 몫이 되게 기도 하겠습니다,
연약한 당신을 위해.
달라질 세상
그땐.
당신을 잊을 것 같습니다.
어느덧 눈이 수북이 쌓여있습니다.
줄리안 반스(2017)가 쓴 《시대의 소음》을 읽고 제목에 푹 빠졌었다. 시대의 소음이라니. 어수선한 세상. 그렇지 않았던 날들이 있었던가. 다시 제목이 생각이 났다.
* 쿠이 보노(cui bono = who stands to gain?)는 라틴어로 그 범행으로 누가 이익을 얻는가를 의미한다. 범인을 찾을 때 쓰이는 의미. 지금 벌어지는 소음으로 누가 이익을 볼까? 확실한 건 '평범이'들은 아니란 것.
cf. 샤덴프로이데 schadenfreu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