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새삼 놀라운 것은, 인생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이다. 불혹의 나이가 되면 삶이 좀 안정적으로 되는 것 인 줄로만 알았다. 신경 쓸 식구들이 많아지고, 책임질 아이가 둘이나 생겨서도 그렇겠지만. 늘 고민과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고달프다.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 '늘 고민이 있고, 가끔 즐거운 일이 있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공감한다.
수많은 걱정과 고민을 뒤로하고, 기쁜 일에 집중해본다. 나의 가장 큰 기쁨.
첫째 아이가 낯선 아이들과 이야기를 안 해서 선택적 함구증의 기질을 물려받은 것 같아서 많이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학교 입학 날부터 말을 조금 한단다. 처음 있는 일이다. 기특하다고 칭찬을 수십 번 해주었다. 주변에서는 별 걸 다 걱정한다는 얘기를 했지만, 선택적 함구증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 남들과 말을 못 하는 채 학교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두 번째 기쁨. 작년 하반기부터 틈틈이 글 읽고 쓰기에 빠져있었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애들 키우면서 일하는 것도 정신이 없는데, 능력도 없이 무슨 글이냐 하며 포기하기를 여러 번이었다. 특히 몇 년 전 선택적 함구증에 대해 쓴 글 중 하나가 카카오에 노출되었다가 몇천 명의 사람들에게 읽히면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댓글을 보고 충격받았다. 브런치팀에게 내 글을 노출시키지 말아 달라는 부탁도 했다. 보이기 싫은 글을 나는 왜 쓰는가?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글들에 공감의 댓글이 없는 것 또한 퍽 신경 쓰였다. 시간이 흘러 작년 여름부터 천천히 나에게 글은 무엇인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가를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다.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고수리 작가님과 연이 닿았던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결국 나는 글을 쓰고 싶었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있으니 행복하다. 브런치에 올리지 않는 글들일 지라도 자식들을 만드는 기분으로 쓰는 중이다. 잘난 자식도, 조금 모자란 자식도 있겠지만. 내가 내 배로 직접 낳은 나의 새끼들 말고 이렇게 많은 자식들이 있다는 것은 주변인들에게는 비밀이다.그 비밀을 보여줄 기회가 있을런지. 부디...
세 번째 기쁨. 글쎄, 이것부터는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바로 생각나지 않지만, 골똘히 머리를 굴리다 보면 바로 코 앞에 놓여있던 고민이 잊히기도 한다. 미국 SF계의 일인자라고 불렸던 아이직 아시모프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삶은 즐겁다. 죽음은 평화롭다. 골칫거리는 바로 그 중간과정이다.
Life is pleasant. Death is peaceful. It's the transition that's troublesome.
골칫거리는 누구나 있다. 남은 인생 동안 수많은 골칫거리를 더 만나겠지만 그 안에 파묻혀만 있지 말고, 종종 하늘을 올려다봐야겠다. 그리고 나의 시간들 그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행복을 자주 들여다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