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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Aug 14. 2021

엄지소년(브런치X저작권위원회)

여덟 살 아들과 함께 만든 안데르센 동화

옛날 무지개나라에 아기를 간절히 원하는 가난한 노부부가 살았습니다. 할머니의 꿈속에서 날개를 단 요정이 나타나 작은 씨앗을 하나 주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씨앗을 앞마당에 심고 물을 주었어요.

"할멈! 할멈! 일어나 보시구려."

할아버지가 깨우는 소리에 할머니는 눈을 떴어요.

"좋은 꿈 꾸고 있는데 왜 깨 그러슈."

할아버지는 창가에서 할머니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어요.

"저기 못 보던 꽃이 피었소. 저게 무슨 꽃이지......"

할머니는 마당으로 나가서 꽃밭을 보고 깜짝 놀랐지요. 꿈속에서 할머니가 정성껏 씨앗을 심은 그  자리에, 무지개색 장미가 피어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장미는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일곱 가지 색의 꽃잎을 갖고 있었어요. 할머니는 깜짝 놀랐어요. 장미에 물을 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마당에 나가 에게 말을 걸었어요.

"예쁘기도 하지. 이렇게 귀한 꽃을 갖게 되다니 나는 참 복 받은 할매로구나."


어느 날, 꽃잎이 활짝 피더니 작고 작은 한 소년이 나왔어요. 할머니는 엄지손톱만 한 소년에게 '엄지'라고 이름을 붙여주었죠. 소년은 쑥쑥 자라 엄지손톱보다는 커졌지만 여전히 엄지손가락보다 커지기는 힘들었어요. 소년에게는 단짝 친구 같은 개구리가 늘 함께였어요. 소년은 개구리의 등을 타고 이곳저곳을 누비면서 하루를 보냈어요.


주변 사람들은 엄지를 보고 비웃었어요.

"사내가 저렇게 작은 몸으로 무얼 한담."

"너 그렇게 개구리타고 다니다가 어느 날 개구리한테 잡아먹히면 어쩌려고 그러니?"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엄지는 우울해졌지만, 노부부는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에게 대꾸했어요.

"걱정말거라. 우리 엄지는 몸집은 작지만, 그 누구보다도 지혜롭고 용감하단다."

엄지는 부모님이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마음이 강해졌어요.


한편, 무지개나라에는 한 공주가 살고 있었답니다. 공주에게는 가장 아끼는 무지개 반지가 있었어요. 그 어떤 보석들을 가져와도 공주에게는 무지개 반지보다 맘에 드는 것은 없었죠. 어느 날, 공주는 무지개 반지를 잃어버리고 상심하여 밥을 먹지도 않고 울기만 했어요. 왕과 왕비는 그런 공주가 걱정되어 무지개나라 전역에 <공주의 무지개 반지를 찾는 이에게 큰 포상을 해주겠다>는 벽보를 붙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무지개 반지를 찾아 나섰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반지는 찾을 수가 없었어요. 어느 날, 엄지는 개구리와 산책을 하다가 빗방울을 맞았어요.

"마른 하늘에 갑자기 비가 오나?"

위를 올려다보니 궁전에서 울고 있는 공주가 보였어요. '빗방울이 아니고 공주님의 눈물이었구나.'

공주의 핼쑥한 얼굴을 보니 엄지는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무지개 반지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죠.


엄지는 개구리를 타고 궁전의 벽을 따라가다가 작은 구멍을 발견했어요.

"이 구멍은 뭘까? 개구리야, 기다려."

개구리 등에서 내려온 엄지는 구멍 안으로 들어가 봤어요.

"찍, 찍."

어두운 구멍 안에는 쥐 소리가 들렸어요. 어둠 속에는 세 마리의 쥐들이 있었고, 바닥에는 버터, 초콜릿, 빵조각들이 흩어져 있었어요. 구석에서 무언가 반짝 빛이 났어요. 알록달록 번쩍이는 그것이 무지개 반지라는 것은, 그 반지를 처음 보는 엄지도 알 수 있을 정도였지요. 그때였어요.

"누구냐? 누군가 침입했다!"

쥐들은 우왕좌왕 대기 시작했어요. 엄지는 버터 조각을 바닥에 문질렀어요. 그리고는 치즈를 가운데 놓고 기다란 초콜릿으로 시소를 만들었지요. 시소 끝에 빵조각들을 쌓아놨어요.

"저기 있다! 침입자다!"

우두머리 쥐가 엄지를 가리키자 나머지 쥐들이 엄지를 공격하러 달려오기 시작했어요.

어이쿠, 쿵!

버터가 녹아있는 곳에서 쥐들이 넘어지기 시작했어요. 엄지는 재빨리 시소에 올라탔어요.

툭 툭 툭.

빵조각들이 넘어져 있는 쥐들에게 날아갔어요.

세 마리의 쥐들이 나자빠져있는 동안, 엄지는 잽싸게 무지개 반지를 목에 걸었어요. 엄지에게는 무척 무거웠지만 있는 힘을 다해 구멍을 겨우 빠져나왔답니다.


엄지는 개구리를 타고 궁전으로 갔어요. 엄지는 공주 몰래 반지를 두고 나올 생각이었습니다. 엄지는 보상을 바라고 반지를 찾은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너무 작은 자신의 모습이 공주에게 부끄러웠거든요. 마침 공주가 식사를 하러 방을 비웠습니다. 개구리의 도움을 받아 화장대로 올라가기를 성공한 찰나, 갑자기 공주가 방으로 들어왔어요.

"꺄악! 개구리다!"

공주는 개구리를 보고 놀라서 소리쳤지만 이내 무지개 반지가 눈에 들어왔어요.

"엇? 이건...... 내 반지?"

엄지는 어쩔 줄 몰라 목에서 반지를 빼며 이야기했어요.

"공주님, 안녕하세요. 저는 엄지라고 합니다. 쥐구멍에서 공주님의 무지개 반지를 찾았습니다. 포상은 안 해주셔도 됩니다. 저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반지만 드리고 소인 물러나겠습니다."

공주는 뛸 듯이 기뻐하며 무지개 반지를 손가락에 꼈어요. 공주는 엄지의 착하고 겸손한 마음씨에 반했어요. 엄지 소년은 공주와 두런두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행복을 느꼈어요.


그 후 어떻게 됐냐고요?

엄지네 부모님은 금은보화를 받아 남은 여생을 편히 살았고, 누구보다 작지만 누구보다 용감한 엄지는 무지개나라의 왕자가 되었답니다.






여덟 살 아들과 함께 만들어본 안데르센 동화입니다. 원래 엄지공주 이야기에서는 공주가 두꺼비에게 납치당하고, 강제결혼을 당할 위기에 처해지고, 풍뎅이들은 엄지공주를 괴물처럼 여기죠. 두더지 아저씨는 엄지 공주에게 한눈에 반하여 또 강제결혼을 하려 하고, 결국 제비의 도움으로 꽃나라 왕자님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삽니다. 누구나 아는 유명한 명작동화이긴 하지만 여자아이가 내내 수동적인 약자로 그려진 이야기를 아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와 아들이 만든 이야기 속에서는 소녀 대신 소년으로, 작지만 누구보다 용감하고 자발적인 아이를 주인공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주는 부모의 이야기를 함께 그렸습니다. 자식에게 들려주고 싶은 동화를 자식과 함께 만들면서 저도 잠시 동심의 세계에 퐁당 빠져있었습니다.  

아들이 그려본 엄지소년과 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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